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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무너짐의 기술

— 부서져야 다시 구조를 볼 수 있다

by 불멍


1) 무너짐은 부끄럽지 않다

무너짐은 실패의 증거가 아니다.

오히려 그동안 버텨왔다는 증거다.

겉으론 멀쩡해 보이지만 안쪽이 서서히 갈라질 때,

우리는 대체로 그 균열을 외면한다.

“조금만 더 버티면 괜찮아지겠지.”

그 말이 반복될수록 마음의 지반은 조금씩 내려앉는다.


무너짐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폭발이 아니라,

오랫동안 쌓여온 침묵의 결과다.

그 침묵 속에서 우리는 자기 자신을 점점 잃어간다.

성과로 자신을 증명해야 하는 삶,

타인의 시선으로 유지되는 자존감,

멈출 수 없는 속도 위에서

결국 자신을 잃어버리는 일.


하지만 무너진다는 것은,

이제라도 다시 쌓을 수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무너짐 속에서야 비로소

내가 무엇으로 이루어진 사람인지 보이기 시작한다.

재구성의 시작이다.



2) 균열은 신호다

무너짐은 갑자기 일어나지 않는다.

언제나 그 전에 균열이 있다.

그건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고,

처음엔 스스로도 잘 모른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별일 아닌 일에도 마음이 무겁게 내려앉는다.

평소엔 웃어넘기던 말이 괜히 가시처럼 박힌다.

사소한 일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혼자 있을 땐 괜히 눈물이 난다.


균열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더는 감당할 수 없는 무게가 쌓였을 때,

내 안의 시스템이 일시 정지를 걸어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신호를 잘 무시한다.

“지금 멈출 수 없어.”

“조금만 더 참으면 나아질 거야.”

그렇게 밀어붙이는 사이,

균열은 서서히 깊어지고,

결국엔 돌이킬 수 없는 파열로 번진다.


내가 내면의 균열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건

늘 ‘해야 하는 일’이 ‘되고 싶은 나’보다 앞섰기 때문이다.

지쳐도 괜찮은 척,

아파도 아무렇지 않은 척,

그 ‘척’들의 층위 아래서 마음은 이미 무너지고 있었다.


균열은 실패의 전조가 아니라 살아 있으려는 신호다.

“나를 좀 봐달라”고, “이제 그만 쉬어가자”고

몸과 마음이 조용히 요청하는 순간이었다.


그 신호를 무시하지 않는 일.

그게 바로 나를 지키는 첫 번째 기술이다.

세상은 늘 더 빨리, 더 높이, 더 오래를 강요하지만

삶은 우리에게 가끔

“지금은 잠시 멈춰도 괜찮다”고 말하고 있다.


균열이 생긴 자리를 들여다보면

그동안 외면해온 내 진짜 마음이 숨어 있다.

억눌린 슬픔, 외로움, 미뤄둔 감정들.

그 틈을 직면하는 일은 아프지만,

그게 바로 다시 나를 회복시키는 시작점이다.



3) 완벽함의 붕괴, 진짜 나의 등장

꽤 오랫동안 완벽하려고 애쓰며 살아왔다.

흠이 없고, 흔들리지 않고, 늘 강한 사람으로 보이길 원했다.

그게 살아남는 길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완벽함은 오래 유지되지 않는다.

사람이란 본래 불완전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무너짐은 그 불완전함이 제자리를 찾는 과정이었다.

완벽해지려는 욕망이 부서질 때,

비로소 나의 진짜 얼굴이 드러났다.


완벽함은 나를 지켜주는 갑옷이 아니라

숨을 막히게 하는 굴레였다.

‘이 정도는 해야 한다’는 말 속에는

언제나 ‘지금의 나는 부족하다’는 전제가 숨어 있었다.

그 믿음이 나를 끊임없이 몰아붙였다.


완벽함의 붕괴는

결함을 드러내는 일이 아니라,

진짜 나를 복원하는 일이었다.

내가 가진 결점, 모순, 미완의 부분들이

비로소 나의 일부로 수용될 때

그제야 마음이 조금씩 편안해졌다.


완벽해야 사랑받을 거라 믿었지만,

사람들은 완벽한 내가 아니라

솔직한 나를 보고 안심했다.

힘든 날의 표정, 실수한 순간의 한숨,

그 모든 인간적인 틈새가 오히려 관계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불완전함을 드러낸다는 건

용기의 다른 이름이다.

그건 자기 해체가 아니라 자기 회복이다.

진짜 나는 늘 그 안에 있었지만,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이 그 얼굴을 가리고 있었을 뿐이다.


무너짐의 끝에서 내가 발견한 건,

더 나은 내가 아니라 더 진짜인 나였다.

타인의 기대를 벗고,

성과의 기준을 내려놓고,

비로소 나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완벽함이 무너져야

비로소 삶이 숨을 쉰다.

그리고 그 숨결 속에서

나는 다시, 나로 살아간다.


4) 무너져야 보이는 뿌리

모든 것이 무너진 자리에서야

비로소 나를 지탱해온 뿌리가 보인다.

성취도, 역할도, 명함도 다 내려놓고 나면

남는 건 아주 단순한 것들뿐이다.


내가 진짜로 좋아하던 일,

그저 하루에 한 번이라도 숨을 고르게 해주는 시간,

나를 믿어주는 단 한 사람의 눈빛.

그런 것들이 나를 지탱하고 있었다.

거창하지도, 대단하지도 않은 뿌리들.

그런데 그게 전부였다.


무너짐은 모든 것을 잃는 일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들이 떨어져 나가는 과정이었다.

겉껍질이 벗겨지고 나서야

내가 정말 중요하게 붙잡아야 할 것들이 남는다.

그건 대단한 목표나 성과가 아니라

내 삶의 중심을 이루는 확신들이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 많은 것 위에 서 있었는지도 모른다.

성과, 관계, 인정, 타인의 시선,

그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잡느라

뿌리를 돌볼 겨를이 없었다.

하지만 한 번 크게 무너지고 나면

그 모든 게 사라져도 여전히 남는 것이 무엇인지 보인다.


그때 깨닫는다.

내가 서 있는 힘은 ‘나 자신’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누가 나를 인정하지 않아도,

무엇을 이루지 못해도,

내 안의 뿌리가 단단하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이 뿌리는 화려하지 않다.

그저 꾸준히 나를 살게 하는

습관과 마음, 작고 사적인 기도 같은 것들이다.

아침의 햇살, 한 잔의 차,

누군가의 안부를 진심으로 묻는 마음.

그런 사소한 것들이 나를 다시 이어 붙인다.


무너져야 비로소

삶의 구조가 아니라,

삶의 근원을 보게 된다.

그건 누구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나만이 느낄 수 있는 깊은 자리다.


무너짐은 끝이 아니라 귀환이다.

흔들리던 가지 끝에서

내가 어디에서부터 왔는지를 돌아보는 시간이다.

그 뿌리를 확인한 사람만이

다시 세상을 향해 일어설 수 있다.


1부를 마치며

— 다시 세우기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던

부모님 두 분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난 후,

삶의 이유가 근본적으로 흔들렸다.

매일의 바쁨이 내 삶을 떠받치던 시절에는

잃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 두 사람을 잃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내 삶의 기둥이 함께 무너져 내리는 소리를 들었다.


무너짐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그 시간은 나를 무너뜨린 게 아니라, 나를 비워냈다.

비워진 자리에서야 비로소

새로운 숨과 방향이 들어올 수 있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마음,

버티지 않아도 괜찮다는 용기.

그 두 가지가 내 안을 천천히 다시 채웠다.

무너짐의 잔해 속에서

나는 다시 ‘나로 서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이제는 안다.

삶은 무너지지 않으려 애쓰는 일이 아니라,

무너질 때마다 다시 세워보는 일이라는 것을.

그게 어쩌면 우리 모두의 인생 설계일지도 모른다.


한 조각의 오늘이 쌓여

다시 내일의 기둥이 된다.

이제 나는 완벽하지 않은 채로,

그러나 단단하게,

다시 나를 세워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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