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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인가, 낭만인가

사랑을 계산하는 시대에 대하여

by 불멍

전공의를 마치고 곧 병원을 떠나는 젊은 친구들과 저녁을 먹었다. 그동안의 이야기를 나누고, 앞으로 어디로 갈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갔다. 그중에서도 자연스럽게 흘러간 화제는 결혼이었다.

사람들은 말한다. 사랑만으로 살기 어렵다고. 현실을 봐야 하고, 조건을 따져야 하며,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감정만 믿고 선택하는 건 너무 위험하다고. 사실 틀린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여전히 낭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90년대에 청춘을 보낸 나와 2020년대에 청춘을 보내고 있는 지금의 20대들 사이에는 어림잡아 삼십 년의 간극이 있다. 시간만큼 세상은 달라졌고, 우리는 흔히 그 차이를 세대의 문제로 설명한다. 90년대의 우리는 X세대라 불렸다. 자유롭고 개성적이며, 기존 질서에 순응하지 않는 세대. 그리고 지금의 20대는 MZ세대라는 이름으로 묶인다. 현실적이고 계산적이며, 낭만을 모르는 세대처럼 이야기되기도 한다. 하지만 과연 우리는 정말 그렇게 달라졌을까.

모든 시대에는 늘 “요즘 아이들”이라는 말이 존재했다. 우리가 젊었을 때도 기성세대는 같은 말을 했다. 요즘 아이들은 참을성이 없다고, 현실만 본다고, 낭만이 없다고. 이 말은 세대가 바뀔 때마다 형태만 달라졌을 뿐 사라진 적이 없다. 분명 시대는 변했다. 집값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올랐고, 직업은 불안정해졌으며, 미래는 이전보다 훨씬 불확실해졌다. 이런 현실 속에서 젊은 세대가 사랑보다 조건을 먼저 고려하는 것은 어쩌면 너무도 합리적인 선택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의 젊은 세대가 낭만을 잃었다기보다 낭만을 가질 여유를 빼앗겼다고 생각한다. 실패할 수 없는 구조 속에서 모험은 위험이 되었고, 사랑은 리스크 관리의 대상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믿고 싶은 것이 있다. 사람이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그 사람과 함께 살고 싶어지는 마음의 본질만큼은 시대가 바뀌어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 진정 사랑하는 사람과 산다는 것은 조건을 무시하는 일이 아니다. 다만 조건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선택을 기꺼이 감당하겠다는 결심에 가깝다. 이 사람과 함께라면 조금 불편해도 괜찮고, 조금 불안해도 견딜 수 있겠다고 믿는 마음. 그 믿음이 바로 낭만이다. 낭만은 현실을 모르는 태도가 아니다. 현실을 충분히 알고도 사람을 선택하는 용기다. 계산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계산을 넘어서는 지점에서 비로소 생긴다. 조건은 삶을 유지해주지만, 낭만은 삶을 견디게 해준다. 결국 중요한 것은 세대가 아니라 가치다. 어떤 시대를 살든 무엇을 가장 우선에 둘 것인가를 스스로에게 판단하는 일, 효율인가, 안정인가, 아니면 여전히 사람인가. 낭만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누군가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똑똑하고 의욕 넘치는 젊은 친구들과의 대화는 늘 즐겁다. 나는 그저, 대화의 자리에서 정답을 말하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질문을 함께 붙잡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들에게서 배우고, 그들과 함께 생각하는 어른으로 남고 싶다. 그리고 그들이 낭만을 이야기할 수 있는 어른을 앞으로도 계속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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