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보다 생활로 배운 것들
국민학교 때 빠지 않던 숙제가 방학일기 쓰기였다. 방학일기에는 날짜와 날씨를 기입하는 칸이 있었고, 그날의 날씨를 적는 것은 암묵적인 약속처럼 여겨졌다. 개학을 하루 이틀 앞두고 밀린 일기를 몰아 쓰다 보면 늘 걸리는 것이 바로 날씨였다. 컴퓨터도 스마트폰도 없던 시절, 지나간 날의 날씨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모아둔 신문뿐이었다. 그래서 우리 부모님은 방학 때면 늘 한 달 치 신문을 쌓아두셨다. 나는 그 신문을 뒤적이며 지난 날씨를 찾아 적었고, 의기양양한 마음으로 친구들과도 날씨 정보를 공유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절 일기장에 쓰던 날씨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사실 내가 내 마음대로 날씨를 적었다 한들, 그것을 일일이 대조해 거짓을 밝혀낼 선생님은 계시지 않았을 것이다. 그 시절 우리 부모님도 이미 알고 계셨을 것이다. 날씨를 채우는 일이 그렇게 중요한 일은 아니라는 것을. 그런데도 왜 우리 부모님은 방학마다 꼬박꼬박 신문을 모아두셨을까. 누가 알던 모르던, 중요하던 중요하지 않던, 사실을 확인하고 그대로 적는 태도. 어쩌면 정직하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말이 아니라 생활로 보여주고 싶으셨던 건 아닐까.
알게 모르게 아이들은 부모의 등을 보며 자란다. 학원을 보내고 학습을 시키는 것 이상으로, 집 안에서 반복되는 장면들이 아이들의 몸에 먼저 남는다. 우리는 종종 그 사실을 잊은 채, 아이들을 하루 종일 바쁜 일정 속에 맡겨둔다.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면서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든 것도 사실이다. 나 역시 바쁜 일상 속에서 아이들과 충분한 시간을 보내주지 못했다는 마음의 빚을 늘 안고 산다.
그러나 시간이 많았느냐 적었느냐보다, 함께한 일상의 방식이 더 오래 남는다는 생각이 든다. 돌아보면 내 삶 속에 깊이 자리 잡은 많은 태도와 기준들은 누군가의 말이 아니라, 반복되던 생활의 모습에서 비롯되었다.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했어도, 매일같이 쌓아두던 신문처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지켜야 할 기준이 있다는 것을, 우리 부모님은 그렇게 보여주며 사셨던 건 아닐까. 평생을 가져갈 삶의 태도는 그렇게 만들어지는지도 모른다. 말보다 생활로, 훈계보다 태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