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은 현실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고나 할까?
나이도 어느덧 30대 중반, 누군가는 한창때라고 하지만, 당사자에게는 이미 너무 많이 먹어버린 듯하다. 30대 초반부터 그저 잡념을 없애기 위해, 축구를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에 간헐적으로 달리기를 했었다. 체력적으로는 운동장에서 확실히 차이가 드러났다. 달리지 않을 때보다 더욱 오래 뛸 수 있었고, 다음날 통증도 덜했다.
하지만 달리기의 가장 큰 목적이었던 잡념은 사라지지 않았다. 잡념과 부정적인 감정들은 더욱더 쌓여갔고, 아무리 해소하려 해도 해소되지 않았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생각이 너무 많았다. 그다지 깊지도, 건설적이지도 않은, 그저 잡생각들. 오죽했으면, 일어나자마자 잡생각을 시작해 씻을 때는 머릿속으로 "잡생각 하지 말자, 잡생각 하지 말자." 되뇌며 씻은 적이 많다.
지금 생각해보면, 잡념과 부정적인 감정들은 내가 힘들다고 느꼈던 현실을 반영하고 있었고, 그 현실에서의 힘듦이 사라지지 않는 한, 계속될 거 같았다. 아니 계속되었다. 그러한 이유로, 한동안은 달리기도 하지 않고, 그저 가만히 세월을 보냈다. 흘러가는 대로
너무나 힘든 시절을 잘 겪어내고(잘 겪어냈는지, 무뎌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느새 이러한 삶이 익숙해졌다. 많은 외로움을 느꼈고, "이게 고독이구나. 이게 아저씨의 삶이구나."라는 감정 또한 느낄 대로 느꼈다. 그 일이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그 사이 나는 하고 싶은 걸 하려고 노력했다. 내가 처한 현실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술도 질리도록 마셔보고, 평소에 배워보고 싶었던 것도 배우고, 헬스장에서 운동도 열심히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행복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무엇으로 행복을 채워야 할지 아직도 매일 생각한다. 무얼 해도 행복하지 않다고 느낀다. 뜨거웠던 여름이 지나가고, 어느덧 가을이 찾아왔다. 언제인지 모르겠지만, 우연히 혼자 산책을 나간 적이 있었다. 그 산책의 목적은 지긋지긋한 소화불량 때문이었다. 평소 폭식하는 습관이 있는 나는 점심을 내가 아는 이 중에 가장 많이 먹는다. 그로 인해 저녁때가 되어도 배는 꺼지지 않는다.
그날도 단순히 "소화를 시켜야겠다." 하고 걸으러 나갔다. 바람도 선선하니, 이제는 땀도 나지 않았지만, 그냥 걷는 것이 너무 좋았다. 경치가 좋았다. 낮에는 잘 듣지 않는 음악을 들으며 걷는 것이 좋았다. 애플 워치에 채워지는 그날의 발걸음과 키로수가 좋았다. 머니머니 해도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생각을 하게 되는 내가 좋았다.
이것이 내가 조금은 변화했구나, 견뎌냈구나 하는 포인트였다. 과거 아무리 빠르게 달리고, 오래 달려도 없어지지 않던 부정적인 감정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생각들로 바뀌어 있었다. 그것이 좋았다. 다시 무언가를 하고 싶어졌다.
다음날도 산책을 나갔다. 여전했다. 어제 산책하며 느꼈던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생각들에 조금 더 살이 보태졌다. 머릿속으로 계속 구체화를 시켜나갔다. 집에 들어와서 씻고 누우면 조금은 희미해졌지만,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산책이나 달리기를 하면 어김없이 더욱더 살이 보태졌다.
책을 써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러한 생각은 예전부터 가지고 있었다. 평소 지독히도 책을 멀리하던 나였기에 할 수 있을까? "국문과도 아닌데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항상 했지만, 무작정 블로그에 글을 적었었다. 그 또한 오랫동안 하지는 못했지만, 돌아보니 100개쯤 되는 글이 쓰여 있었다. 과거 지인의 블로그에서 이런 글귀를 보았었다. "기록은 기억을 지배한다."
언뜻 보면 손발이 오그라 들 수 있는 말이지만, 나는 그 말이 와닿았다. 그래서 아직도 기억한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지금, 그리고 과거에 느꼈던 감정과 생각, 생활을 글로 남겨보자." 화려하게 글을 쓸 수는 없겠지만, 나만의 생각과 감성을 기록해보자.
이미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말이 보편화되어 있는 이 시대에 남들과 같을 필요는 없다. 남들처럼 잘하지 않아도 좋다. 누군가 내 글을 읽고, 칭찬이나 비판을 한들, 아무 상관없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나를 표현해보자. 이렇게 빈약하게 글을 쓰기 시작했어도, 글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나에게는 인생에 남을 멋진 작품이 되어 있겠지. 나는 오늘도 달리러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