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울 건너 저기
일곱 살 때였던가
여덟 살 때였던가
별이 총총한 밤 엄마를 따라 앞 내를 건너간 적이 있다.
장시웅네 잔치음식 만들러 가는 길이었을 거다.
그때 나는 어른들을 참 이해할 수 없는 동물이라고 생각했다.
왜 그 좋은 사탕을 두고 술을 사 먹는가?
왜 그 좋은 엄마를 두고 장가를 가는가?
좋은 색시를 만나고서야 엄마를 두고 장가가는 맛을 알았지만
장가가는 맛도 새끼 낳는 맛도 이제 사탕처럼 녹고 있다.
개울 건너 저기
저기는 나에게 어머니 뱃속 같은 곳이다.
징검다리 건너 언덕 위
내가 살던 집
마당가 뒷간
아버지 기침소리
콩단 흔드는 바람소리
나무대문 옆 흙벽에 기댄
쟁기
멍석
지게
헛간에 들면 외양간, 벽에는 도리깨
호미
낫
괭이
우물가 감자 썩는 냄새
장독대 간장 익는 냄새
밀방아 찧던 마당
입방아 찧던 마루
모깃불 놓고 개떡 먹던 저녁
까맣게 탄 아랫목
이 잡던 밤
앞 개울에서 썰매를 탔다.
남자애들은 외발 썰매를 탔고
여자애들은 두 발 썰매를 탔다.
옆에 있던 돌과 나무들을 뒤로 보내며
나는 추운 날도 먼 곳까지 내려가곤 했었다.
지나간 것들은 그립다.
그것들은 왜 아팠던 것도 그리움이 될까.
나는 가끔 운다.
우는 것이 이쯤에서 내가 누릴 수 있는 행복 아니겠는가.
울음의 종류는 여럿이다.
왠지 모를 울음이 있고
아득한 울음이 있고
싸한 울음이 있다.
내 지금의 울음이 그렇다.
얼마 전 을왕리 수평선에 놓던
연주황색 울음이 그랬다.
햇볕이 노래지는 계절이면
그런 울음을 울었고
낙엽이 비처럼 내리던 날도
나는
그런 울음을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