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안의 생각장난 -10-

산판에 대고

by 생각소년 김영안

이제 메아리마저 없는가.


들녘에 대고 소리친 아랫역 서형은

붙잡아라도 갔건만

산판에 대고 외치는 내 목소리는

어디에 가 부서지고 마는가.


이제

동네에 참나무들은 없다.

눈송이들이 두 발 딛고 앉을 나뭇가지가 없다.

참새들이 쪼아 먹고 살 자벌레가 없다.

다람쥐 노동해 먹고 살 도토리나무는

이제 없다.


낙엽송 묘목이

잣나무 새끼가

그 얼음산에서 지금 자라고 있단다.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집 다오”


낙엽송이

우리들의 새집을 가져다줄지라도

참나무가 단풍나무가

우리들의 새집을 가져다주지 못할지라도


싸릿장문 안 화롯가에서

뽕나무와 떡갈나무가

할머니와 손자와 마주 앉아 살아온

한국 땅의 나무 아니더냐.


해마다 사월이면

시뻘겋게 내려오는 진달래꽃이

무수한 한국 청년의 혼을

깨우지 않았느냐.


뒹구는 낙엽을 밟을 때마다

우리가 지금 몇 월을 사는 줄 알고

사랑할 때를 알고

이별할 때를 알고

시를 배우지 않았더냐.


가난한 반도의 나무들아,

가난한 밥을 먹고

가난한 방귀를 뀌며

가난한 나라를 살아온,


그러나 산아,

이 땅의 굽은 허리를 닮았던

소나무들아!


너희는 무참히 쓰러져 갔어도

네가 그 자리에 버티고 서서

네가 그 자리에서 쓰러지는 패배로 하여

너의 국적이 그 자리임을

천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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