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매질 고효율
저녁산 그림자는 불탄산에서 내려와 일영봉으로 올라갔다.
저녁산 그림자가 지나갈 때면 연기가 피어올랐다.
연기가 나는 것은 오늘도 저녁거리가 있다는 희망이라서 좋았다.
불탄산은 대훈이 아버지 장내복이 화전불 놓다가 태워먹고 난 뒤부터 생긴 이름이다.
그는 여섯 달 실형을 살고 나 비실비실하다가 죽었다.
옥에서 매 맞은 후유증이라고 했다.
그의 아들 정훈이도 맞아 죽었다.
4학년 때 반 아이가 다리 걸어 죽였는데 지가 넘어져 죽은 걸로 처리됐다.
나도 맞고 살았다.
열여덟 살에 함석헌을 만나 비폭력 저항을 배웠고 이듬해 강원용을 만나 대화를 알았는데 그 영향이랄까, 구타 없는 군대 만들겠다고 나섰다가 수없이 맞았다. 주로 강철기 상병이 때렸는데 특히 송 중사의 매가 아팠다.
그는 곡괭이자루로 팼다.
주변에 작대기도 널렸는데 굳이 곡괭이자루를 고집했다. 창고에서 가져오는 동안 공포감을 줘 매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전법이다.
그의 곡괭이자루 빼 오라는 명령은 남봉우 일병이 수행했다. 제 맞을 매를 제 손으로 가져와야 하는 고통도 더해 주겠다는 심산이다.
어떠한 고통도 막상 그에 대한 공포보다는 낫다고 했다.
그렇다. 치과에 갈 때 얼마나 걱정이 큰가. 막상 입 벌리고 나면 별것 아니다. 간호사가 예쁘면 더 있고 싶다.
송 중사의 매는 달랐다. 기다리는 시간도 아팠고 맞는 살도 아팠다.
방위병들은 그를 송짜루라 했고 현역병들은 송장사라고 불렀다.
둘 다 저주에 찬 별명이다.
리연규 상사는 만만한 애들만 때렸다.
위관들은 진급 때문인지 때리지 않았는데
때리지 않았으므로 무섭지도 않았다.
어제 베트남 아내 폭행하고 감옥 간 성구에게
사식 넣어주고 왔다.
성구는 마흔아홉에 스무 살짜리 베트남 여자를 사 왔다. 2천만 원 줬다고 했다.
애 둘을 낳고 나갔는데 천만 원 받고 또 어떤 새끼 애를 밴 것이다.
음식 배달 라이더가 번쩍번쩍거리며 지나갔다.
수(囚)인이 먹을 건가, 감(監)인이 먹을 건가?
"쟤네들은 항상 '비상등'을 켜고 다닙니다요.
그러나 누구도 문제시하지 않는다니까요"
의정부 교도소 나오는 길, 노점상 군밤장사의 넋두리였다.
군밤 한 봉지 사 들고 가는 나는 비상등을 켜지 않았다.
어느덧 저녁산 그림자가 지붕을 덮고 있었다.
나는 송 중사가 썼던 매법을 후임에게 써먹지 않았다.
다만, 그가 썼던 매법의 일부를 아들에게 썼다.
엄마아빠한테 하는 말 존댓말로 전환시킬 때였다.
반말하면
깡통 위에 올리고
종아리 걷게 하니
때리기 전에 벌써
"응"했던 말이
"네"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