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안의 생각장난 -11-

저 매질 고효율

by 생각소년 김영안

저녁산 그림자는 불탄산에서 내려와 일영봉으로 올라갔다.

저녁산 그림자가 지나갈 때면 연기가 피어올랐다.

연기가 나는 것은 오늘도 저녁거리가 있다는 희망이라서 좋았다.


불탄산은 대훈이 아버지 장내복이 화전불 놓다가 태워먹고 난 뒤부터 생긴 이름이다.

그는 여섯 달 실형을 살고 나 비실비실하다가 죽었다.

옥에서 매 맞은 후유증이라고 했다.

그의 아들 정훈이도 맞아 죽었다.

4학년 때 반 아이가 다리 걸어 죽였는데 지가 넘어져 죽은 걸로 처리됐다.


나도 맞고 살았다.

열여덟 살에 함석헌을 만나 비폭력 저항을 배웠고 이듬해 강원용을 만나 대화를 알았는데 그 영향이랄까, 구타 없는 군대 만들겠다고 나섰다가 수없이 맞았다. 주로 강철기 상병이 때렸는데 특히 송 중사의 매가 아팠다.


그는 곡괭이자루로 팼다.

주변에 작대기도 널렸는데 굳이 곡괭이자루를 고집했다. 창고에서 가져오는 동안 공포감을 줘 매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전법이다.

그의 곡괭이자루 빼 오라는 명령은 남봉우 일병이 수행했다. 제 맞을 매를 제 손으로 가져와야 하는 고통도 더해 주겠다는 심산이다.


어떠한 고통도 막상 그에 대한 공포보다는 낫다고 했다.

그렇다. 치과에 갈 때 얼마나 걱정이 큰가. 막상 입 벌리고 나면 별것 아니다. 간호사가 예쁘면 더 있고 싶다.


송 중사의 매는 달랐다. 기다리는 시간도 아팠고 맞는 살도 아팠다.

방위병들은 그를 송짜루라 했고 현역병들은 송장사라고 불렀다.

둘 다 저주에 찬 별명이다.

리연규 상사는 만만한 애들만 때렸다.

위관들은 진급 때문인지 때리지 않았는데

때리지 않았으므로 무섭지도 않았다.


어제 베트남 아내 폭행하고 감옥 간 성구에게

사식 넣어주고 왔다.

성구는 마흔아홉에 스무 살짜리 베트남 여자를 사 왔다. 2천만 원 줬다고 했다.

애 둘을 낳고 나갔는데 천만 원 받고 또 어떤 새끼 애를 밴 것이다.


음식 배달 라이더가 번쩍번쩍거리며 지나갔다.

수(囚)인이 먹을 건가, 감(監)인이 먹을 건가?


"쟤네들은 항상 '비상등'을 켜고 다닙니다요.

그러나 누구도 문제시하지 않는다니까요"


의정부 교도소 나오는 길, 노점상 군밤장사의 넋두리였다.

군밤 한 봉지 사 들고 가는 나는 비상등을 켜지 않았다.

어느덧 저녁산 그림자가 지붕을 덮고 있었다.


나는 송 중사가 썼던 매법을 후임에게 써먹지 않았다.

다만, 그가 썼던 매법의 일부를 아들에게 썼다.

엄마아빠한테 하는 말 존댓말로 전환시킬 때였다.


반말하면

깡통 위에 올리고

종아리 걷게 하니


때리기 전에 벌써

"응"했던 말이

"네"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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