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한 방울의 서사
비록 오영준이 좀도둑이긴 했어도 밥 한 그릇 훔쳐 먹을 정도로 작은 도둑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아직 소를 훔쳐 갈 정도의 큰 도둑도 되지 못했으니 그는 용의 선상에서 벗어나 있었다.
간밤 무쇠솥 안에 둔 조밥 한 그릇이 증발한 사건인데 김백영은 섬뜩했다.
장흥지서로 뛰어갔다.
순경들이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여기저기 소도둑이 극성인데 그깟 밥 한 그릇을 신고하러 왔느냐고 핀잔만 줬다.
그는 의정부경찰서로 뛰어갔다.
즉각 군부대와 공조, 군인과 경찰이 개미떼처럼 풀렸다.
인해전술이 따로 없었다.
조밥 한 그릇 찾기엔 너무 많은 인력이고
'적자(赤字) 수사'라고 생각했다.
빈집이 불탔고 낟가리가 화염을 뿜었다.
폭탄이 터졌다.
영문네 조낱가리 속에 숨었던 범인이 자폭한 거다.
김신조 일당 중 한 명이다.
진짜 '적자(赤者) 수사'가 됐다.
김백영은 반공영화의 주인공이 됐고
이 작품은 반공교육의 교재로 쓰였다.
조명탄과 함께 쏟아진 포상금 이십만 원에 동네가 환했다.
오영준은 자랄 때부터 훔치길 좋아했다.
성년이 되기 전에 절도 전과가 여러 개였다.
밧줄 타고 유리 닦는 일도 했고 택시 운전도 했지만 그의 전과는 제 나이와 키를 쟀다.
빵에서 서러운 자가 절도범이다.
오영준처럼 작은 것들을 훔치다 들어온 것들은 아무리 별이 많아도 애들이다.
첫 발이 중요하다.
물은 최초 한 방울이 가면 두 방울 세 방울이 따라간다.
이내 골이 되고 개울이 되고 강이 된다.
그래서 나는 고등학생 때 아르바이트를 잘 선택하라고 훈수한다.
레스토랑에서 접시 들고 다닌 애는 평생 식당 뽀이로 살 가능성이 높다. 얘의 꿈은 식당 주인이다.
편의점서 일한 애는 편의점 사장이 로망이다.
물 한 방울처럼,
사회 첫발을 들여놓은 대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
펜션 아트시티가 수학여행 숙소로 애용되고 있다.
경상 전라 학생들에겐 서울 구경이 로망이다.
경복궁을 보고 롯데월드에서 노는데 1시간 거리에 300명 재울 숙소가 여기밖에 없기 때문이다.
차제에 훈수한다.
명문대학 견학을 코스에 추가하라.
최초의 물 한 방울을 그냥 떨어져 흐르게 놓아둘 것이 아니라 어디로 뛰어내려 어떻게 흐를 것인지를 미리 생각하게 해 주기 위해서다.
오영준의 절도도 처음부터 너무 작았다.
아무리 초등 때라지만 반 아이들의 딱지, 연필이 뭔가, 적어도 필통 한 통쯤은 통째로 훔쳤어야 했다.
직업 중 힘든 게 판검사다.
검사래 봐야 아래 직원 서너 명, 기소장도 논고장도 자기가 써야 한다.
판사도 그렇다.
판결문 쓰기도 바쁘니 현장도 못 가보고 반성문도 탄원서도 못 보기 일쑤다.
불가피 선례를 찾아 선례대로 판결할 때 자괴감이 든다고 했다.
이비인후과 의사도 만만치 않은 직업이다.
나는 그가 남의 귀 파주고 코 파주는 일 외 하는 일을 못 봤다.
그래도 얘들은 매일 남의 똥구멍만 파먹고 사는 항문외과 의사들보다는 낫다.
스튜어디스는 극한 직업이다.
식당에서 서빙하기도 쉽지 않은데 비행기에서 한다.
그러나 외판원에 비하면 낭만이다.
사임당 아줌마
양구군청 경리과 아가씨에게 가야 할까
정림리 한우집 서빙 아줌마한테 가야 할까
군인 관사 사모님 샤워젤은
아직 남았을까
기다려 주는 사람 없는데
가야 하는 길
사임당 화장품 가방에 떨어지는 햇살은
노랗다.
로생 옴므 스킨이 망한 피부 살린다고
사로매 수분크림 쓰면 아기살 된다고
고추밭 매고 있는 할머니 손등에 발라 줄까
배추밭 갈고 있는 할아버지 이마에 문질러 줄까
청결제 이백 밀리 쓰면 빨간 꽃 다시 핀다고
유혹할까
사임당 두윤 샴푸 쓰면
집 나간 머리카락 돌아온다고 우길까
시흥시 정왕동에서 암웨이 팔다가
부천시 원미구에서 생명보험 팔다가
연고 판매 개척 판매 다 해보다가
지금은 강원도로 가 화장품 파는 사람
샘플만 얻어 쓰려는 도시 여자들 싫어
깔아 놓은 외상값 눈덩이 되는 게 싫어
한 주 지나가보면 사라진 사람들 싫어
풀 뽑는 이에게 간 화장품 가방
사임당
지폐 속 초상은 부잣집 금고에 있는데
내 친구 사임당은 비탈밭에 있네.
얼굴마담과 바지사장도 슬픈 직군이다.
내가 아는 김순분은 의정부에서 내놓으라 하는 얼굴마담이다.
제일시장 가는 길 맥주 양주집 모모에는 예쁜 것들도 여럿 있고 매출도 좋았는데 알게 모르게 다 순분이 덕이다.
조선기생처럼 배운 것도 있고 덕망도 있어 여러 사내들이 왔는데 차일피일 피만 말렸다.
그는 사내 하나하나를 진중히 대했다.
시키지도 않은 과일 안주를 밀어 넣는 짓도 안 했다.
씨바스리갈을 몰래 버리지도 않았다.
이 집 사장은 순천에서 놀던 논두렁 밭두렁 백주학이다.
일정한 조직군에 속하지 않고 자칭 어깨라는 애들을 논두렁 밭두렁이라 하고
골프 레슨 없이 치는 애를 자수성가라 하는데 얘가 전형이다.
매일 밤 분은 순분이가 바르고 돈은 얘가 챙겼는데 순분이가 얼굴마담이라는 걸 아는 놈이나 모르는 놈이나 북적였다.
신시가지 그 집은 주인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 없다.
서삼택이 사장이라고 우기지만 믿는 사람은 없었다.
얘는 두 해를 재주넘어주다 들어갔는데 사장 새끼가 사식도 빤스도 안 넣어 줘 불어버렸다.
감 될 줄 알았는데 중 됐다.
모가지가 길지 않아도 슬픈 짐승들이다.
'자칭어깨'치고 힘쓰는 놈 보질 못했다.
자칭시인이 그렇다.
나는 나태주 함민복 문정희가 제 이름 앞에 시인이라고 쓰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이해한다.
시
읽는 자도 없는데
쓰는 자
가엽지 않은가
김삼만의 집은 도끼집이다.
끌도 없고 대패도 없어서 도끼로 지은 거다.
끌은 목재를 다듬거나 구멍을 팔 때 쓰는 건데 귀했다.
끌질은 최순성이 잘했다.
그는 대목이다.
대동상고를 나와 국세청에 들어갔는데 5.16이 터져 대위에게 자리를 내주고 나와 목수가 됐다.
석현리 일영리 삼상리에서 반듯한 집 그가 짓지 않은 건 없다.
갈월 김양한네 집 짓던 날 점심 먹을 때였다.
이야기 중 그가 보광사 대들보가 칡이라고 말했다.
듣던 이들 그럴리 있겠냐고 논쟁 붙었다.
궁색해지자 얼굴 붉어지고 말 더듬었지만 우겼다.
단둘이 있을 때 제자가 슬쩍 물었다.
"선생님 보광사 대들보 정말 칡인가요?
말이 됩니까?"
"이 사람아 그럼 어떡해, 우기던 끝에 우겨야지."
정상욱
그는 내가 민주주의운동 할 때 공산주의운동 했던 친구다.
30년 만에 만나 술 먹으며 물었다.
"상욱아 너 가슴에 손 얹고 말해 봐
아직도 북조선이 남조선 흡수통일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솔직히 말해봐
우리 둘밖에 없잖아"
"야 새끼야 그럼 어떡하냐
우기던 끝에 우겨야지, "
우기던 끝에 우긴 사람이 어디 얘네들 뿐이겠는가.
요셉이 목수였고 예수도 한때 목수였기 때문일까
목수라는 직업은 노가다의 범주에서 어느 정도 위상이 된다.
부를 땐 순생이, 순세이 했지만 머리엔 지식이 있었고 손엔 재주가 있었던 최순성도 위상이 작지 않았다.
잘 짓는 목조 건물 철못 쓰지 않고 나무못 박는데 상당 부분 고정관념이다.
나는 대한민국에서 제일 큰 목조 건물을 지었는데 철못 썼다.
기성못이 작아서 차씨네 대장간에 주문 제작해 썼다.
한 자짜리 대못을 만들어 썼고 지렛대만 한 꺾쇠를 만들어 박았다.
박으면 들어가고 들어가면 잡니 빠르고 쉽고 견고했다.
고려 때, 조선시대 때 철이 귀해 하루 품값으로도 못 하나를 못 샀다.
송곳으로 뚫고 나무못 박은 건 집의 건강이나 내구성을 위한 것보다 먼저 비용 때문이었다.
차 씨네 대장간은 경기 북부의 전설이다.
현 차인규가 4대이고 그의 아들 차동훈이 5대다.
향후 지역사나 지역사 박물관에 빠져서는 안 될 사료다.
오늘이라도 당장 네이버 등에 알려 기록해 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