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 여행기

by 박상준

Busan Travel for Congratulation of 31th Wedding Day with Neighbor Friends, November 4(FRI) ~ 6(SUN).


나는 의사다.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요즘은 의사들조차도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 신경외과 분야를 전공하고, 일정 기간을 종합병원에서 뇌혈관질환, 종양, 외상 환자를 진료하다 개업으로 방향을 전환하여 척추 분야 및 가벼운 퇴행성 질환을 다루는 그저 작은 도시의 평범한 의사이다.




우리 부부와 같은 아파트 아래층에 거주하는 친한 이웃과 함께 모처럼 부산 여행을 다녀왔다. 지난 10월 27일이 제31주년 결혼기념일이지만 별도의 여행이나 기념행사를 치르지 못했고, 기념일 전에 부산 여행을 함께 가기로 약속한 두 사람과 깊어가는 가을을 느껴보기로 하였다.


때마침 이웃 부부는 그동안 타던 차량을 교체해 여행을 떠나기 전날 차량 출고가 이루어짐으로써 여행을 떠나는 기쁨과 명분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


내가 나고 자란 고향이자 현재 거주하고 있는 마산과 그리 멀지 않지만, 지리적인 거리보다는 심리적인 거리의 벽으로 자주 부산을 왕래하지 못한다. 대부분 지방에 거주하는 부산이 고향인 사람의 현실이라며 애써 자위해본다.


생뚱맞게 이 나이에 결혼기념일을 축하하기 위해 여행을 계획했다고 핀잔을 주는 사람도 있겠지만, 늘 일상의 바쁨을 핑계로 아내와 어디로 떠나본 지도 오래다. 항상 미안한 마음이지만, 요즘 들어 그 생각이 더 커지고 있다. 이제 나이가 점점 들어가는 신호가 아닐까?


언제나 그렇듯이 여행은 계획하고 출발하는 날이 다가올 때 생기는 설렘이 사람을 들뜨게 한다. 인터넷을 통해 숙소를 알아보기 위해 이리저리 노력하고, 가성비 좋은 음식점을 찾거나 들러볼 장소 선정을 고민하는 일은 여행자가 누리는 특권임이 분명하다.


가장 편안한 곳을 선정해 가장 아름다운 것을 선물하고 맛난 음식을 제공하고 싶은 마음이야 인간사 공통이 아닌가 한다. 물론 능력을 벗어나는 과도한 일을 벌이는 것이 후회를 남기기도 하지만, 가족을 위해 더 나은 무엇인가를 해주려고 노력하는 것이 내가 현실을 살아가는 존재 이유가 아닐까 생각하고, 일 년 가운데 짧은 시간만이라도 최선을 다해 즐거운 시간을 만들자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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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는 해운대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파라다이스 호텔로 선정하였고, 주변에 있는 음식점을 추천받거나 소문으로 들었던 장소로 가기로 결정하였다. 출발 전날 날씨가 다소 쌀쌀해져 걱정되었지만, 막상 여행 당일의 날씨는 전형적인 가을 날씨 그 자체였다.


여행 전날 꽃집에서 아내가 좋아하는 보라색 꽃을 주문했다. 이은숙 여사에게도 같은 형태의 부케를 선물하기로 하였다. 여행을 시작하면서 아름다운 꽃을 선물 받으면 기분이 좋아질 것 같다는 내 생각을 그대로 실천한다. 오전 진료 시간이 종료될 시점에 도착한 꽃 부케는 아름답고 우아하게 만들어져 배달되었다. 가뿐한 마음으로 꽃을 가지고 집으로 향한다.


가벼운 점심 식사를 마친 다음 즐길 와인과 사케(Sake)를 챙긴 후 갓 출고한 따뜻한 신차에 몸을 싣고 해운대로 출발하기 위해 만났다. 내가 선물한 꽃 부케가 아내와 이은숙 여사의 기분을 흡족하게 만든 모양이다. 일단 성공적인 출발이다.


금요일 오후 마산에서 부산으로 가는 길은 다소 여유롭다. 부산 외곽순환고속도로를 타고 기장과 동부산을 거쳐 달맞이 길로 접어들었다. 짙은 단풍은 길 위를 나뒹굴고 나뭇가지는 어느새 앙상해져 있다. 꾸불꾸불한 달맞이 길은 익숙하면서도 왠지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무언가 있다는 생각이다.


느긋하게 호텔에 도착하여 Check-In 후 짐을 풀어본다.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객실은 한마디로 환상적이다. 아래쪽에는 가족 단위로 수영을 즐기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아기와 엄마가 함께 즐겁게 지내는 모습이 보기 좋다.


간단하게 정리를 마친 우리는 해운대 백사장을 잠시 거닐기로 한다. 아직 저녁 만찬 때까지는 제법 시간 여유가 있다. 햇살이 해운대 백사장을 강렬하게 내리쬐고 있어 더운 느낌이 들었지만, 부푼 여행객의 마음을 방해하진 못한다. 반복적으로 들리는 파도 소리와 여기 뛰어다니는 젊은 여행객, 사진 촬영에 한창인 젊은 친구들의 모습까지 백사장은 그야말로 다양한 인생의 경연장처럼 느껴진다.


가끔 찾아오는 해운대는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다. 변하는 것은 사람 일뿐 해운대 바다는 항상 나를 있는 그대로 반겨주는 느낌이다. 이전과는 달리 갈매기의 환영이 적어 다소 아쉽기도 했지만, 내 고향의 바다는 여전히 아름답다.


가볍게 산책하면서 옛날의 추억에 잠겼다가 주변의 변화된 모습을 화제로 이리저리 발길 닿는 대로 걷다 숙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한다. 저녁 식사는 호텔 내에 있는 이탈리안 식당(라 스칼라)으로 사전에 예약을 해둔 상태다. 모처럼 기분 좋게 Fine-dining으로 두 가족이 즐거운 시간을 갖기 위해 마련하였다. 와인은 고민을 하다 집에서 가져온 화이트 와인(Pahlmeyer 2018, Napa Valley, Chardonnay)을 콜키지(corkage) 지급하고 먹기로 결정하였다.


아내는 모처럼의 만찬이 즐거운 모양이다. 검은색과 회색으로 된 원피스를 입고 손에는 내가 선물한 부케를 들고 들뜬 마음으로 식당으로 향한다. 시간은 어느덧 저녁 6시를 향하고 있다. 직원이 환한 미소로 창가 자리로 우리를 안내한다. 식당은 반쯤 손님들로 채워졌었고 밖에 펼쳐진 해운대 바닷가 풍경은 저절로 식욕을 돋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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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뉴 선택을 고민하다 함께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결정하고 우선 가져온 화이트 와인을 먹기로 했다. 메인 메뉴인 T-bone 스테이크와는 프랑스 Pinot Noir를 곁들여 먹기로 하고 차분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내와 함께 온 모두가 기쁜 표정이다. 즐거운 만찬을 기대하며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하다.


샤르도네가 코를 자극하면서 입맛을 돋운다. 맛난 음식을 멋진 사람과 함께 나누는 것이 행복이라면 오늘은 정말 행복이 가득한 날이다.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린 바다는 주변의 불빛을 반사하며 겹겹이 밀어내는 파도로 우리를 축복하는 것 같다. 샐러드와 피자 그리고 문어 요리를 먹으며 추억을 떠올린다.


몇 해 전에 집사람과 결혼기념일을 맞아 두 사람을 초대해 같이 식사하던 기억이 또렷하다. 울산에서 근무하다 급작스럽게 마산으로 이동하면서 어렵게 구한 아파트 옆집 이웃으로, 딸아이와 같은 동급생을 둔 학부모로 첫 인연을 맺은 부부는 중학교 국어, 수학 과목을 지도하는 교사다.


남에게 조금이라도 폐 끼치는 것은 두려워하고 반듯한 품행으로 항상 주변을 살피는 두 사람의 인품은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본 많은 사람 중에 단연 으뜸에 속한다. 항상 긍정적이고 활달한 이은숙 여사와 중후하면서도 매사에 신중한 박재오 선생님의 행동은 남의 귀감이 되고도 남음이 있다.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기쁨과 슬픔을 함께하던 두 가족은 우리가 현재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헤어지게 된다. 늘 가까이에서 서로를 챙기는 애틋함이 결국 이들을 우리가 사는 아파트 아래층으로 불러들였다. 부부가 이사해옴으로써 우리는 다시 뭉치게 되었다. 참으로 소중하고 귀한 인연의 연속이다.


현재 두 집의 아이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각자의 길을 걷고 있지만, 남겨진 두 부부는 자주 만나 와인을 마시고 취해 함께 노래하고 떠들며 같이 인생을 물들이고 있다.


이번 여행도 단순한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성사되었다. 더 늦기 전에 무엇인가를 했을 때 더 빛나는 순간을 간직해야 한다는 나의 꼬임에 넘어와 함께 부산으로 여행하게 되었다. 물론 박재오 선생님의 새 차 출고도 한몫을 했지만 말이다.


인연을 이야기하면서 여행기가 옆길로 잠시 빠졌다. Napa Valley Chardonnay는 강한 오크 향과 짙은 자두 등 다양한 향이 음식과 어우러지면서 폭발한다. 잠시 눈을 감으며 음미한다. 좋은 사람들과의 만찬은 언제나 즐겁다. 느긋한 주말에 아름다운 두 여인과 함께하는 저녁은 인생에서 절대 포기하기 어려운 선택임이 분명하다.


메인 메뉴인 T-bone 스테이크 역시 일품이다. 같이 곁들인 프랑스산(産) Pinot Noir는 부드러우면서도 매혹적이다. 은은한 향과 입을 감도는 약간의 산미가 고기의 맛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 붉은색의 와인과 불빛에 반짝이는 두 여인의 미소가 천국에서 내려온 천사가 짓는 웃음처럼 내 눈을 어지럽히고 있다.


이어서 제공되는 아이스크림과 셔벗을 맛나게 먹고 잠시 산책길에 나섰다. 빛이 어둠으로 변한 해운대가 밝은 네온과 북적이는 인파로 환하게 밝아진 느낌이다. 겨울의 길목, 날씨는 항상 변덕스럽다. 약간의 한기가 있지만, 즐겁게 식사를 마친 들뜬 기분을 식히지는 못했다. 천천히 걸어 조선비치호텔 근처 송림과 근처에 자리한 포장마차가 불을 밝히고 장사하고 있는 곳까지 돌아다녔다.


발걸음이 무거워질 즈음 문득 내가 해운대를 방문할 때 가끔 들렀던 쓰지-어묵 가게 ‘미나미(みなみ)’가 떠올랐다. 젊은 시절 닷지에 빙 둘러앉아 어묵을 안주 삼아 소주를 마시던 기억이 생생하다. 재빨리 모바일 폰을 이용하여 미나미의 현재 위치를 검색하였다. 원래의 위치(아마 내 기억으로는 지금의 신라스테이 근처)와는 떨어진 다른 곳으로 이동하여 개점한 모양이다.


천천히 걸음을 옮겨 좀 더 시내 쪽으로 이동해 미나미라는 간판을 찾아갔다. 조금 늦게 도착하였기 때문인지 이미 가게 안은 만원이다. 사전 예약 없이 방문한 결과다. 3층으로 이루어진 가게에는 이미 많은 손님으로 가득 차 있다.


그냥 돌아가려다 시간도 넉넉해 일 층에서 잠시 대기하기로 하였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빈자리가 생겼고 우리는 자리를 차지하고 메뉴를 선택했다. 추억과 함께 쓰지와 어묵을 맛볼 기대감으로 한 잔의 소주를 마시며 기다린다. 그러나 나의 기대와는 달리 옛날의 미나니에서 느낀 맛은 남아있지 않았고, 내 추억 속에 존재하는 착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쉬움을 가득 안고 방문한 지 20분이 채 되지 않은 시각에 자리를 떠야 했다.


이런 일이 발생할 때마다 세월이 흘러 내가 변한 것은 내버려 두고 내 추억 속의 현장은 그대로 남아있기를 바라는 이기심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변한 환경에 쓸쓸함이 밀려온다.


무엇인가 아쉬움이 남은 우리는 호텔 내에 있는 바(bar) 찰리스로 향했다. 내 기억 속의 찰리스는 여러 번 변했지만, 방문할 때마다 항상 즐거움을 주는 장소다. 처음 찰리스를 방문한 것은 내가 전공의 시절이다. 밤늦게 음식을 파는 곳이 잘 없던 당시 늦은 밤 가락국수를 먹기 위해 대학병원에서 차를 타고 방문한 기억이 아직도 또렷하다. 당시 늦은 밤에도 불 꺼지지 않는 특급호텔의 위용과 활기에 깜짝 놀랐다. 이후 위치가 지금처럼 지하로 내려왔고, 여기서 지인과 함께 새해맞이 행사에 참여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계단을 내려가니 찰리스는 영업하지 않았다. 아마 코로나로 인해 장기간 영업이 중단되었던 모양이다. 새로운 변화를 위해 영업을 중단하고 다른 모습으로 바뀔 예정인 모양이다. 번번이 실패하니 힘이 좀 빠진다.

오늘 여행은 아마 여기까지인가 보다 생각하며 우리는 객실로 올라가 휴식을 취하기로 결정했다. 이제 여행이 시작되었으니 오늘은 이 정도로 마무리하기로 하려고 하였지만 아무래도 술이 부족한 것 같다. 객실에 모여 룸 스비스를 시켜 가지고 온 레드 와인 한 병을 열었다.


꽤 도수가 높은 와인을 한 모금 마시자 후끈 몸이 달아오른다. 동시에 몸이 나른 해지면서 피로가 몰려온다. 아무래도 잠을 청해야 할 것 같았다. 함께 한 준석이네도 방으로 돌아가자 나는 간단한 세면을 마치고 이내 꿈나라로 달려갔다.




알람 소리에 놀라 눈을 뜬다. 아침 6시다. 커튼을 걷고 백사장과 바다로 눈을 돌려본다. 하늘은 맑고 어슴푸레 주변이 밝아지면서 여행 둘째 날 아침이 시작된다. 어제 체크인을 하면서 프런트 직원이 말하길 조식 시간이 8시를 넘기면 대기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는 일찍 아침을 먹기로 일행들과 약속을 해두었다. 평소 아침을 커피 정도로 가볍게 먹는 편이지만, 여행하려면 에너지가 필요해 아침을 챙겨 먹는다.


세면을 마치고 아침을 먹기 위해 호텔 내에 있는 뷔페식당인 ‘On the Plate'로 향했다. 식당 직원은 차분하면서도 친절하게 우리 일행을 맞아 자리로 안내했다. 이미 많은 손님으로 제법 붐빈다 뭘 먹을까? 고민하다 이내 뜨거운 커피 한 잔을 주문한다.


특급호텔 조식 뷔페식당치고는 그리 규모가 있거나 다양한 음식이 제공된다고 평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간단한 딤섬, 쌀국수가 우측에 배치되어 있고 중앙에는 흔히 조식에서 보이는 소시지, 계란을 이용한 요리가 있다. 흔한 즉석요리인 오믈렛도 여기 있다. 음식에 손길이 잘 가지 않는다. 그래도 아침을 먹어야 하기에 이것저것 조금씩 담아 먹어보았다.


아내와 선생님 부부는 든든하게 식사한다. 하루를 시작하는 첫 끼니를 제대로 챙겨 먹는다. 잠시 휴식을 마치고 일행은 동백섬 방향으로 산책에 나섰다. 자주 해운대를 방문하는 편이지만 실제 동백섬 전체를 둘러본 적 없다. 따뜻한 햇볕 아래에서 기분 좋게 산책로를 타고 가다 보니 이내 둥근 형태의 건물이 보인다. 바로 누리마루다.


2005년 APEC(Asia Pacific Economy Cooperation) 총회가 개최된 장소다. 이제는 당시 총회 개최를 기념하는 기념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입구에 들어서니 아름다운 장식물이 우리를 반긴다. 12 장생도를 자개로 빚어 아름답게 반짝인다. 우리도 12 장생을 찾으며 세밀하게 조각한 작품을 감상했다. 통로를 지나 회의장 내부로 들어서니 당시 참석한 회원국의 명패가 눈에 들어온다. 의장국으로서 행사를 치러내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누리마루 구경을 마치고 천천히 발걸음을 돌려 조선비치호텔 앞으로 나오니 많은 낚시꾼이 낚시에 열중이다. 계절과는 무관하게 물고기를 낚으려는 낚시꾼의 열정은 만국 공통인 모양이다.


숙소로 가면서 여행 일정을 의논해 오전에는 송정에 있는 오디오 가게를 들러보기로 하였다. 집에 오디오를 설치한 업체가 해운대에서 송정으로 영업장을 옮긴 것이 생각나 사장님께 전화하니 마침 근무 중이다. 마땅한 볼거리가 없어 고민하던 중 여기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기로 하였다.


오전의 달맞이 고갯길은 호젓하다. 꾸불꾸불한 길을 달려 차량은 오디오 가게에 도착했고 사장님의 안내로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엄청난 오디오 스피크와 장비, 다양한 물건들로 가득한 실내는 눈을 어지럽힌다. 함께 온 부부는 적잖이 놀란 눈치다. 6층에 위치한 덕분에 송정 바닷가 백사장이 건물의 정원처럼 전개된다.


넋을 놓고 바라보며 감탄하고 있을 때 사장님이 직접 내려온 커피가 향을 뿜어낸다. 맛난 커피를 마시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안쪽에 마련된 청음실로 들어섰다. 잘 정돈된 장비와 여기서 흐르는 음악에 귀를 쫑긋하며 집중한다.


본격적으로 사장님께서 들려주는 오디오(작동 장비의 가격만 1억 5천) 소리에 빠져든다. 보컬, 바이올린, 첼로, 타악기로 구성된 음반을 각각 들으며 모두가 감탄을 연발한다. 브라보! 옆방으로 이동하여 집에 있는 것과 같은 기종의 MBL에 턴테이블을 연결해 LP를 들어보니 깊은 소리에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정말 오전 자투리 같은 시간이 흘러 벌써 배꼽시계는 점심 먹을 시간임을 알린다. 사장님께 부탁하여 현지 맛집을 알려달라고 해 그곳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물 횟집을 소개받았다. 가까운 곳에 위치한 물 횟집은 많은 사람이 아름아름 찾아오는 명소로 꽤나 유명한 듯하였다.


호텔로 돌아온 후 잠시 휴식을 취한 다음 낮술을 한 잔 먹기 위한 여정에 나섰다. 해운대 역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해운대 오복 돼지국밥집에 자리를 잡았다.


오후 시간에 느긋하게 소주에 맥주를 더해 소맥으로 분위기를 돋운다. 저녁 술을 먹기에 앞서 전초전을 치른다. 수육이 삼겹살이고 순대도 집에서 만든 것이 아닌지라 음식을 평하기는 어렵다. 가볍게 한잔하는 처지에 이것저것 따지고 가릴 처지는 아니라는 생각에 술 먹는 데 집중한다.


가볍게 낮술을 해치운 다음 저녁을 위해 잠시 휴식한다. 저녁은 예약해둔 이자카야(いざかや)에서 먹기로 했다. 꽤 인지도가 있다는 소식에 마산에서 여행 출발 전에 예약을 마치고 마실 사케도 준비해두었다. 비교적 이른 예약 시간에 맞춰 호텔 근처에 있는 술집으로 향했다.


이자카야에 도착하니 룸을 사용하려면, 최소 40만 원 매출 주문해야 한다는 소리에 깜짝 놀라 일반 테이블에 앉아 술을 먹기로 한다. 가져온 사케는 콜키지를 내고 먹기로 했다.


생맥주를 한 잔 마시고 먼저 가양 국주(加陽菊酒)라고 적힌 사케를 마시기로 했다. 그런데 이 사케의 도수가 엄청나다. 17도나 된다. 우리나라 소주 도수보다도 높아 깜짝 놀랐다.


모둠회와 성게알(우니)과 새우를 안주 삼아 맛을 음미하였다. 성게알의 부드러움이 목을 타고 넘어온다. 새우 역시 매우 말랑하고 단맛이 강하게 느껴진다. 다양한 생선회는 숙성된 형태로 제공되었다. 숙성 회 고유의 감칠맛이 도드라진다.


가게에는 젊은이들로 넘친다. 활기가 가득하다.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 모습은 우리가 젊은 시절 경험한 것과는 사뭇 다르다. 가게는 주말을 즐기려는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대화로 왁자지껄하다.


두어 시간을 보낸 우리는 다음 방문지로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장소로 이동하기로 했다. 토요일의 밤을 삼켜버릴 열정은 없지만, 열정을 자극하는 감성은 여전하다. 조금 걸어서 음악과 칵테일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이동했다. 해운대 주변이 거대한 관광지로 형성되어 다양한 즐길 거리가 가까이에 있다.


‘뮤즈 온 바이닐 펍’, 상호 그대로 LP를 틀어주는 바(bar) 형태의 업소다. 대학 시절 음악다방의 술집 버전이라고 설명하는 것이 적절해 보인다. 2층에 위치한 바는 이미 사람들로 가득하다. 우리는 자리에 앉아 두 종류의 칵테일을 주문하였다.


젊은 사람들과 추억에 젖은 중년들이 같은 공간에서 음악을 즐기며 제각각의 스토리를 만들어 간다. 사람들이 떠드는 사이로 음악은 감미롭게 때로는 강렬하게 우리 귀를 파고든다. 음악은 모든 사람에게 통하는 공통의 언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박재오 선생님은 아바의 ‘The Winner Takes It All'을 신청하였고, 나는 이글스의 ‘Desperado', 등려군의 '첨밀밀(甛密密)’을 신청하였다. 첨밀밀은 장만옥과 여명이 주연을 맡아 열연한 내가 좋아하는 영화다. 영화의 끝자락 두 사람이 극적으로 미국에서 재회하는 계기가 바로 등려군의 사망 소식이다. 사랑이 이루어지는 영화를 떠올리면서 등려군의 목소리가 듣고 싶은 밤이다.


주말 밤은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 다시 돌아오지 않는 시간의 끝자락을 잡고 싶은 마음에 호텔에서 가까운 공연 바인 겟오라잇으로 걸어갔다. 아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나와 이은숙 여사는 바 내부로 들어갔다. 휘황찬란한 조명과 음악이 흐르는 바는 내가 예상한 것과는 사뭇 달랐다. 더 머물 상황이 아니라는 직감에 자리를 빠져나왔다.


밤공기가 차갑다. 쉼 없이 해운대의 이곳저곳을 다녔다. 밤이슬을 맞은 내 몸은 점차 중력의 무게를 실감하며 피로가 몰려왔다. 결국 우리는 숙소로 돌아왔다. 아무래도 여기가 한계인 모양이다. 휴식 후 내일 식사 시간에 만나기로 약속하고 아쉬운 작별을 고했다. 지친 내 몸은 벌써 꿈나라로 향했다.




여행의 마지막 아침이 밝았다. 날씨는 화창하다. 가을 하늘은 유난히도 맑고 높다. 잠에서 깨어나 약간 빈둥거리다 조식 뷔페로 향했다. 여전히 식당은 아침부터 많은 객실 손님으로 복잡하다. 아침을 호텔에서 느긋하게 먹는 것도 여행객이 누리는 권리 중 하나다. 식당에서 만들어 놓은 음식을 선택해 먹기만 하면 되는 일이니 얼마나 좋은가! 과거 보통의 사람들이 누리기 힘든 삶이 점점 일상화하고 있다.


식사를 마친 우리는 어디를 더 방문할지 고민했다. 좁은 해운대를 벗어나야 할 시간인 모양이다. 고민 끝에 박재오 선생님의 차량 출고 기념을 겸해 봉계에서 점심을 먹기로 결정했다. 간단하게 체크아웃을 마치고 출발하려다 박재오 선생님이 안경을 두고 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객실에서 안경을 가져온 다음 경주 방향으로 고속도로를 이용해 이동하였다.


약간 이른 점심시간에 도착해 소고기를 주문하고 숯불을 기다린다. 약간의 육회를 맛보고 이어서 본격적인 고기 굽기 시작한다. 이틀 전에 먹다 남은 와인을 다시 개봉하여 낮술도 곁들였다. 좋은 사람들과 맛난 음식을 함께 하는 이 순간이 즐겁고 소중하다. 언제나 함께 할 수 있기를 간절하게 기도한다.


소고기로 점심 식사를 마치고 귀가하는 길에 통도사를 방문하려고 하였으나 통도사 입구에 길게 늘어선 차량으로 결국 통도사 방문을 포기하고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차량에서 우리는 아는 음악을 틀고서 목청껏 노래를 함께 합창한다. 즐거운 여행이 끝나고 있지만, 우리 두 부부의 인연이 더욱 단단해지고 있음을 느꼈다.


짧은 시간을 함께 여행했지만, 항상 좋은 사람과의 여행은 즐거운 일임이 틀림없다. 몸은 다소 지치고 힘들었지만, 영혼은 어느 때보다 반짝이고 영감으로 가득한 주말이 되었다. 함께한 아내와 이은숙 여사, 박재오 선생님께 여행을 즐거움을 함께 간직하기 위해 여행기를 남기며 또 함께 뭉쳐 여행을 떠날 수 있기를 간절하게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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