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강은 기억으로 흐른다.(2)

외가에서 보낸 추억

by 박상준

외갓집 구조는 전형적인 시골집 형태를 하고 있었다. 일자형에 기와를 올린 고옥으로 부엌과 안방 그리고 방이 2개가 딸려있었다. 마당으로 들어오는 입구 우측 편에는 측간(화장실)이 있었고 그 옆에는 재를 섞어 거름을 만들던 장소가 있었다. 전체적으로 입구에서 중간 마당을 지나 집으로 들어오게 되는 구조였다. 비좁은 약간의 마루가 있었던 기억이 있지만, 내 나이 대여섯 살에 일어난 일을 지금의 기억으로 조립하려니 조금은 왜곡되거나 불명확한 점도 있을 것이다.


당시 외할머니가 키우는 강아지 한 마리가 있었고,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마당에는 울퉁불퉁하게 모양의 딸기가 빨갛게 익어 어린 내 간식거리가 되어 주었다. 약간의 봉숭아꽃과 붓꽃이 있어 시간의 변화에 따라 꽃이 피고 지고를 반복했다. 마당 일부는 밭으로 사용되었고 주로 일상에 필요한 상추, 파, 쪽파, 부추, 대파, 쑥갓 등 다양한 채소가 자랐다.


정확하게 언제 어떻게 누가 나를 외갓집에 데려왔는지 기억이 흐릿하지만 한 가지 떠오르는 것은 어머니와의 이별로 많이 울었던 기억은 어렴풋하게 남아 있다. 어린 자식을 어머니에게 부탁하고 총총걸음으로 뒤를 돌아보지 않고 사라져야 했던 모친의 마음이야 오죽했을까.


지금 생각하면, 어린 자식을 친정어머니에게 맡겨야만 했던 자신의 처지를 얼마나 자책했을까. 그래도 남은 가족을 위해 자식을 남겨두고 생활 전선으로 가기 위해 발길을 돌려야 하는 어머니의 마음은 얼마나 무거웠을까 생각하니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든다.


다소 북적이던 주말이 지나면서 외갓집을 비롯한 모두가 일상으로 돌아가면서 차분해진다. 집 우측에는 꽤 깊은 농수로가 있어 어린아이에게 큰 위협이 되었고, 혹시라도 사고가 발생할까 걱정이 많았던 외할머니는 어린 내가 이곳으로 출입하는 것을 엄격하게 금지했다. 만약 엄명을 어기고 농수로가 있는 곳으로 접근하는 날이면 요란한 매 타작이 기다리고 있었다.


농수로의 반대쪽에는 신작로로 불리던 길을 따라 종일 몇 대의 차량이 먼지를 날리며 지나갔다. 비교적 조용하고 작은 농촌 마을이라 어린 나와 함께 놀아줄 아이도 별로 없었다. 외톨이처럼 하루를 보내는 일상이 시작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종일 마당과 주변 강둑에 올라가는 일이 전부였다. 어린 내가 볼 수 있는 세상 전부는 그렇게 제한되어 있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외할머니와의 대면하거나 부대끼면서 하루를 보내야 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연세가 들어 전형적인 촌로의 모습을 한 외할머니는 그래도 젊은 시절 외할아버지가 면장을 했던 터라 나이에 비해 꽤 젊은 외모를 갖추고 있었다. 머리는 이미 하얗게 세고 허리는 다소 굽었지만, 은색 치마저고리를 입은 모습이 어린 내 기억에도 그렇게 꼬부랑 할머니의 모습으로 남아있지는 않는다.


친손자와 외손자의 차이가 엄연히 존재하고 아들과 딸의 차별이 남아 있던 시절, 연세 든 노파의 눈에 비친 어린 외손자가 얼마나 달가웠을까. 하지만 자신의 딸이 낳은 손자를 돌봐야 한다는 부담감은 여느 할머니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준아!”

“상준아 밥 먹자” 외할머니는 부엌을 나서며 손으로 상을 받쳐 들고 외친다.


아침부터 마당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바퀴가 달린 나무 상자로 만든 자동차를 발로 밀면서 신나게 놀고 있던 참에 들려오는 할머니의 부름에 잠시 멈칫거리더니 이내 놀이에 집중한다.


“야! 이놈의 손아, 밥 먹으라 하는 데 뭐 한다고 지랄하고 있노”

카랑카랑하게 바뀐 목소리엔 화가 잔뜩 묻어난다.

“빨리 안 올 끼가”

“빨리 손 씻고 밥 무라” 하면서 머리를 쓸어 올리며 성큼성큼 다가와 이내 내 손을 잡아끈다. 뾰로통한 표정을 지어보지만 이내 포기하고 할머니의 손에 이끌려 마루로 향한다.


시골 촌로와 어린아이가 먹는 밥상이라야 뭐 특별할 것이 있을 수 없다. 멀리 외항선을 타고 2년 이상 떨어져 지내던 큰외삼촌이 들어오는 경우가 아닌 다음에야 시골 밥상은 계절에 따른 제철 식자재로 만든 찬이 전부다. 그래도 힘든 시절 밥을 굶지 않고 챙겨 먹을 수 있는 것도 외할머니의 보살핌이 있기에 가능했다.


눈칫밥으로 어느 정도 구력을 쌓은 탓일까 별다른 반찬 투정은 부리기 어렵다는 사실을 어렴풋하게 알고 일찍부터 알아서 처신한 것은 보면 눈치 보기는 인간의 자연스럽게 습득하는 본성인가 보다.


밥을 먹고 나도 시골에서의 시간은 더디게 흐른다. 외할머니는 논일을 맡아 숙모와 함께 논을 가꾸고 시간이 나면 가끔 강가에서 맛조개(이치목 죽합과에 속하는 조개)를 캐기도 했다. 외삼촌의 귀국 일자가 전보로 도착하면, 외할머니는 약간 불편한 몸을 이끌고 나가 한 광주리나 되는 많은 양의 맛조개를 수확하여 개선하는 장군처럼 당당하게 걸어오곤 했다.


뽀얀 국물과 더불어 살만 도려낸 맛조개를 그릇에 산처럼 수북이 쌓아 올려놓은 모습이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아름다웠다. 그래서 아직도 나는 어린 시절에 길든 맛조개의 맛을 잊지 못해 일부러라도 찾아서 먹으려고 애쓰고 있다. 그러나 그런 장면은 오직 큰외삼촌의 귀국이나 작은 외삼촌의 요청이 있는 경우에만 볼 수 있는 진기한 장면이었다.


낙동강은 강폭이 유난히 넓다. 강 건너 구포가 아스라이 보이고 멀리 백양산이 한눈에 들어왔지만, 어린 나이에 방향감각이 있을 리가 없고 관심에서 먼일이라 크게 기억에 담아 두지 않았다.


하지만 강에서 불어오는 부드러운 바람결은 어린 내 마음에도 좋았나 보다. 아무도 함께 놀아주지 않았지만, 강둑에는 많은 야생화와 제철을 알리는 다양한 식물들이 자태를 뽐내고 있었기에 어린 나의 관심을 끌 만하였고 하루하루가 심심할 틈이 없었다. 길을 건너 강둑으로 가려고 길가에서 달려오는 차가 있는지 확인하고 힘껏 달려 반대편 경사에 도달하면 녹색으로 만든 푹신한 카펫이 나를 반겨주는 듯 착각에 빠지곤 했다. 봄이면 쑥과 냉이가 자라고 이름 모르는 야생화가 지천으로 깔려 꽃밭을 이루고 있어 엄마 없는 세상이 그렇게 슬프게 느껴지지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