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류(濁流)

by 박상준


깊은 산골짜기에서 시작한 맑은 물은 시원하고 청명해 보는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계곡의 물이 흘러 옆 골짜기 물을 만나서 이제 제법 큰 울음소리를 내며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갑니다. 가리거나 거칠 게 없습니다. 순수하고 단단한 물줄기는 자신 있게 강 상류로 앞을 다퉈 모여듭니다.


상류를 떠난 물은 조금은 느리게 주변도 돌아보고 함께 어우러져 여기저기 굽이굽이 흘러내립니다. 갈등도 다툼도 없습니다. 배를 밀어 사람들이 강을 건너게 하고, 고기를 품어 어부에게 기쁨을 주며 농사짓는 땅에 천금 같은 생명수가 되어 곡식을 키웁니다. 그게 자신이 해야 할 숙명이라 생각합니다.


아직 강에는 많은 물이 남았습니다. 작은 마을에서 큰 마을로 굽이치며 돌아가는 물길에 아이들이 돌팔매를 던지며 깔깔거립니다.


시간이 흐르며 맑은 하늘이 어두워지고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소낙비가 내립니다. 빗방울이 뚝뚝 강물에 떨어져 이내 강물은 불어나고 거친 숨소리를 내다 자신을 할퀴며 바닥을 뒤집기도 합니다. 여기저기 불어난 강물은 성을 내며 강 언저리며 주변의 논밭을 삼키려 합니다. 자신이 몸을 내주어 정성 들여 가꾸어온 고추, 들깨며 가지를 한꺼번에 집어삼켜버립니다.


누구도 막을 수 없다는 듯이 사납고 맹렬한 기세로 달려듭니다. 황토색 물과 잡풀이 뒤섞인 잡탕의 물이 되었습니다. 탁류! 온갖 잡동사니로 뒤섞여 모든 것을 빼앗아버릴 것처럼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며 이리저리 날뛰며 주변을 모두 휩쓸어갑니다.


비가 그치고 바람이 잦아들자 거칠었던 탁류는 힘을 잃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흐르다 더 넓은 강을 만나서야 혼돈의 시간을 정리합니다.


시작한 맑은 계곡 물로 돌아갈 수 없지만 그래도 혼탁한 물로 흐르기보다 좀 더 정화된 자신이 되기를 바라봅니다.


이제 저 멀리 바다가 보입니다. 태양에 반짝이는 바다는 지난날 모든 것을 포용하며 거칠고 힘들게 달려온 강물을 어머니의 품처럼 따뜻하게 맞아줍니다. 마치 우리의 인생이 탁류인 것처럼 계곡에서 바다까지 ‘나는 지금 어디쯤인가?’를 생각하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