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여행기(1)

시간을 거슬러 로마 제국으로

by 박상준



Prologue


나는 의사다.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요즘은 의사들조차도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 신경외과 분야를 전공하고, 일정 기간을 종합병원에서 뇌혈관질환, 종양, 외상 환자를 진료하다 개업으로 방향을 전환하여 척추 분야 및 가벼운 퇴행성 질환을 다루는 그저 작은 도시의 평범한 의사다.


일상을 벗어나 미지로 떠나는 여행은 즐거움과 추억을 남긴다. 누구와 함께 여행하느냐에 따라 그 감동의 정도가 다르기는 해도 인생을 살아가는 과정에 비타민 같은 역할을 한다. 이 때문에 사람들은 여행을 계획하고 실천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 것이다.


고등학교 진학 후부터 줄곧 부모와 떨어져 지내는 딸이 함께 가족여행을 떠나자 제안했다. 어느새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서 직장 생활하는 딸 요청을 차마 뿌리치기 힘들었다. 친구들과 혹은 혼자 다녀온 여행 중 딸과 서로 겹치지 않는 나라를 여행지로 선택하는 것이 가족 여행의 기대감을 높여 줄 것이라 생각했다.


딸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여행지는 프랑스였다. 온전히 파리와 주변을 둘러보기를 원했다. 그래서 논의 끝에 프랑스를 여행지 첫 후보로 선택했다. 여행 시기는 병원 근무 일정을 고려해 추석 연휴를 이용하기로 했다. 비록, 연휴를 포함한 기간으로 비용적인 측면에서 가성비가 나빴지만, 기회비용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평범한 사람이 여행 계획을 세워 호텔을 예약하고, 세부 일정을 짜는 일이 보통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여행사의 도움을 부분적으로 받는 것이 효과적인 여행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코로나가 발생하기 전 친구 부부와 여행사의 도움 없이 단독으로 스페인 여행을 계획했지만, 출발을 3개월 앞두고 무산된 아픔이 있었기 때문에 가족이 함께 떠나는 여행은 동유럽 여행을 통해 만족도가 높았던 색다른 여행사 투어에 참여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프랑스 여행을 희망하는 여행객의 모객이 더뎌지고 무산될 조짐을 보이자 딸은 이탈리아로의 여행을 수정 제안하였다. 이탈리아 국토가 가진 특성으로 인한 긴 여행 동선이 마음에 걸렸지만, 비행기 좌석 구입이 촉박하여 부득이 이탈리아로 떠나기로 결정하고 여행사에 신청했다.


코로나 이후 외국으로 여행하려는 사람의 수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해외 현지의 여행 여건이 악화하고 있다는 뉴스를 접할 때마다 제대로 된 여행을 즐길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겼다. 그러나 워낙 믿을 만한 여행사라고 확신하고 모든 일정을 따르기로 했다.


장기간의 휴가를 내는 것이 쉽지 않고, 도시로 떠나는 여행보다 자연을 즐기는 여행을 선호하는 탓에 내심 불안한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아내와 딸의 집요한 설득에 넘어가 이탈리아의 매력에 빠져보기로 했다.


출발이 다가올수록 딸과 아내는 여행지에서 입을 옷가지와 모자 등을 준비하느라 바쁜 눈치다. 사실 나는 여행에 필요한 준비물이 별로 없어 모녀의 준비를 지켜보며 느긋하게 기다리는 일이 전부였다.


우리나라의 뜨겁고 무더운 여름 날씨와 유럽의 폭염 소식이 다소 걱정스러웠지만, 가을로 접어들면 유럽도 기후가 좋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와 여행이 주는 행복감에 서서히 젖어들고 있었다. 짐을 꾸리며 헐떡이는 아내와 달리 이탈리아에서 마실 맛난 와인 생각에 도파민이 증가하며 행복감에 빠져든다.


Aspetta, Italia! Stiamo arrivando!


IMG_7087.JPG Foro Romano


첫째 날(Day-1)


추석 연휴가 시작되는 9월 28일이다. 전날부터 부지런히 짐을 챙기고 여행을 떠날 준비를 마쳤지만, 무엇인가 두고 가는 기분이 드는 것은 여행자의 공통된 마음일 것이다. 알람이 새벽 5시를 알리고 서둘러 준비에 나섰다. 김해에서 인천으로 이동해야 하는 일정이라 서울에서 출발하는 사람들보다 더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아직 창밖은 어둠이 가득하다.


전날 직원에게 공항으로의 운전을 부탁해 둔 터라 편안한 마음으로 짐을 챙기고 문단속을 마친 다음 새벽 공기를 마시며 김해국제공항으로 이동했다. 연휴 첫날 아침이라 고속도로는 한산했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도착한 공항은 제법 붐비고 있다.


요즘은 대부분 모바일로 비행기 티켓이 발행되어 여행지로 갈 짐만 부치면 되는 과정으로 수속은 비교적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짐을 부친 다음 자동 로밍을 위해 통신사 부스로 이동했다. 아뿔싸! 길게 늘어선 줄을 보고선 서울에서 로밍하기로 했지만, 준비 부족을 탓하는 아내의 잔소리를 피하기는 어려웠다.


다소 일찍 보안검사와 출국 수속을 마치고 공항 내부에 있는 라운지에서 휴식을 취했다. 아침 일찍부터 서두르다 보니 졸음이 밀려온다. 라운지에 입장해 자리를 찾는 중 누군가 인사를 한다. 울산시의사회 부회장이다. 친구와 함께 스위스로 여행하기로 했다는 설명을 듣고 안전하게 여행하라는 덕담을 주고받은 다음 간단하게 음료를 마시며 휴식을 취했다.


40여분을 날아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이미 입국 수속을 마쳤고 함께 출발할 딸이 공항에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출발 전 여행사 직원과 만나서 주의 사항을 듣고 우리 부부와 합류하기로 했기 때문에 혼자서 분투하다 다소 늦게 공항에서 만났다.


여행에서 사용할 선글라스를 하나씩 구입하고 로밍을 마치고 공항 라운지에서 로마로 가는 항공기를 기다린다. 우리나라 공항 라운지는 다른 국가의 라운지보다 훨씬 다양한 서비스가 제공되는 것 같다. 와인도 한잔하고 간단하게 점심을 대신할 음식을 먹은 다음 안마기도 이용했다. 낮술의 취기가 오를 즈음에 긴 대기 시간이 끝나고 마침내 우리는 이탈리아 로마 레오나르도다빈치 국제공항으로 출발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여행은 시작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다소 요금 부담이 되더라도 장거리 여행은 가능하면 비즈니스 좌석을 이용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한다. 갑갑함을 싫어하고 여행지로 출발하는 즐거움을 만끽하기 위해서라도 가족 모두가 여유로운 시간을 가지고 편안하게 보내기를 소망하기 때문이다.


두 번의 식사와 간식을 먹고 13시간 이상의 시간을 날아간 비행기는 기장의 안내 방송에 이어 안전하게 고도(古都) 로마에 착륙했다. 저녁 시간이지만 공항은 생각보다 덜 붐볐고, 일찍 짐을 찾은 우리 가족이 가장 먼저 공항에 마중 나온 가이드와 만나 인사를 나눴다. 다른 비행기로 먼저 도착한 가족은 따로 숙소로 먼저 출발한 상태였다. 다른 일행들이 짐을 찾아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두 대의 차량을 이용해 숙소로 향했다.


숙소는 베드로 성당 근처에 자리 잡고 있었다. 아파트와 호텔을 섞은 형태로 가족 혹은 사전에 배정된 단위로 방을 정했다. 작고 좁은 엘리베이터에 일순간 당황했지만, 생각보다 넓고 주방이 딸린 숙소는 우리가 로마에 있는 동안 지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다만, 부대시설이라고는 조식 뷔페밖에 없어 아쉬움이 있었지만, 숙소에서 밖으로 조금만 나가면 까루프(과거 한국에 있었던 대형 마트 체인점)가 운영하는 편의점이 있어 물건을 구입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방에 들어와 창문을 열어보니 무드 있는 조명이 거리를 비추고 있다. 이국적인 풍경 감상을 뒤로하고 서둘러서 짐을 푼다. 내일 일정에 맞춰 아내와 딸은 옷을 다림질하고 정리하기에 바쁘다. 샤워를 마치고 나니 피로가 밀려온다. 아침부터 이어진 긴 여정이 끝이 났다. 내일 일찍 숙소 주변을 돌아보기로 하고 잠을 청한다.


내일 아침 로마에서의 아침을 맞이할 기대로 꿈나라로 떠난다. 즐거운 여행이 펼쳐지기를 기대한다.


모든 일이 그렇듯 시작이 중요하다. 여행은 이성이 아니라 감성이 지배하는 시간이다. 앞으로 펼쳐질 여행지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나를 쉽게 잠들 수 없게 할 줄 알았지만, 피곤한 육체의 무게를 버티지 못했다.


IMG_6965.JPG View nearby Aparthotel Trianon Borgo Pio




둘째 날(Day-2)


아침에 눈을 뜨니 아내는 벌써 일어난 것 같다. 주변은 어둠이 걷히지 않았고 시계는 6시를 향하고 있다. 로마의 위도는 41.8°로 서울보다 훨씬 북쪽에 있다. 따라서 한국보다 해가 늦게 떠오른다. 기온은 지중해의 영향으로 아직 낮에는 덥고, 새벽에는 선선하다. 여름이 건기라고 하지만, 최근 들어 습도도 높아지고 있다 한다.


잠든 딸을 깨워 숙소를 벗어나 어두운 새벽 거리를 산책한다. 새벽이라 말하기 힘들 정도로 어둠이 아직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일단 조명으로 멋진 자태를 보이는 성천사 성(Castel Sant′ Angelo) 방향으로 천천히 이동했다. 거리에 부랑자의 모습이 보이기는 했지만 두렵기보다는 추운 날씨에 잠을 청하는 모습이 안타깝다. 성천사성은 성 베드로(San Pietro) 광장 인근 사도궁(Palazzo Apostolico, 바티칸에 있는 교황 관저)까지 통로로 이어져 있다.

collage23.png Piazza San Pietro and nearby

방향을 트니 거대한 돔 위용을 드러내며 가톨릭의 성지 성 베드로 성당이 정면에 나타난다. 양쪽으로 주광색 가로등 불빛이 쭉 뻗은 도로는 베드로 광장에서 끝이 났고 광장은 모든 것을 품을 듯 넉넉한 공간으로 만들어져 사람들을 반기고 있다. 오벨리스크 양쪽에 두 개의 분수는 쉼 없이 물줄기를 뿜어낸다. 광장의 가장자리에는 이탈리아와 바티칸을 구분하는 국경을 표시하는 돌이 서 있다. 물론 국경을 넘나드는 과정이 별도로 존재하지 않지만, 상징적인 국경 표시인 셈이다.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본 다음 숙소로 돌아와 아침을 먹기 위해 7층에 위치한 식당을 방문했다. 꼭대기에 위치한 식당에서 베드로 성당이 바라보인다. 멋진 경치다. 유럽의 조식 뷔페는 대부분 비슷하다. 빵, 우유, 스크램블드에그, 샐러드, 치즈와 슬라이스 살라미 그리고 주스 등이다. 우리 가족은 간단하게 식사를 마치고 일정에 맞춰 숙소 로비로 향했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로마의 길은 버스가 다닐 수 있는 도로와 그렇지 못한 도로가 혼재되어 있어 숙소까지 일행 모두가 탈 차량이 오지 못한다고 한다. 우리는 4대의 택시에 분승하여 공사 중인 베네치아 광장(Piazza Venezia) 옆으로 이동해 다시 모였다.


이탈리아를 통일한 Vittorio Emanuele II의 기마상이 있는 통일 기념관을 바라보며 로마 시내 관광을 담당할 로컬 가이드와 인사를 나누었다. 가이드의 안내로 베네치아 광장의 유래에 관해 설명 듣고 통일 기념관을 따라 언덕으로 가다 로마 서민의 거주지(Insula Romana)를 만났다. 기원전 만들어진 집단 거주 형태가 신기하고 놀랍다. 일행은 더 위쪽에 위치한 캄피돌리오(Campidoglio) 언덕으로 올라갔다. 언덕을 오르는 계단과 광장을 미켈란젤로가 설계하여 더욱 유명해진 곳이다. 현재 시청으로 사용하고 있다 한다. 계단은 갈수록 넓어지게 만들어져 아래에서 바라볼 때 원근법이 사라짐으로써 보는 사람에게 웅장하게 느껴지도록 하였다.


계단을 따라 언덕에 오르자, 기마상과 ‘ㄷ’ 형태의 건물(중앙 건물이 현재의 시청사), 광장이 나타났다. 양쪽 건물 역시 뒤로 갈수록 벌어지는 모양으로 좁은 광장을 더욱 크게 보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설계했다는 미켈란젤로의 천재성이 엿보인다. 광장바닥 역시 중앙이 볼록렌즈처럼 솟아오르도록 만들어 더 넓어 보이도록 했다.

collage24.png Insula Romana and Campidoglio


광장의 뒤쪽은 옛 로마제국의 유적으로 가득한 포로 로마노(Foro Romano)다. 넓은 장소에 다양한 형태의 유적이 가득하다. 사진 촬영 후에 유적지를 방문하기 위해 이동했다. 무솔리니가 콜로세움으로 연결한 도로를 따라 이동하다 트라야누스 시장(로마 도시의 포럼 복합단지)을 보니 로마 제국의 강성함과 당시 선진적인 도시였음을 실감한다.


오전 시간임에도 포로 로마노에 입장하려는 사람들로 출입구 주변은 북새통이다. 기온이 오르며 더위가 기승이다. 유적지에는 많은 신전과 공회당과 같은 공공건물이 뒤섞여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유적으로는 새턴 신전(Temple of Saturn), 로마 도로의 원표인 Miliarium Aureum, 셉티미우스 세베레스 황제 개선문(Arco di Settimio Severo), Basilica Julia, 카이사르 신전, 토니누스와 파우스티나 신전, 막센티우스 바실리카, 티투스 개선문 등이 있다.

IMG_7082.JPG Foro Romano


구경을 마치고 콜로세움(Colosseo)으로 향했다. 비너스와 로마 신전의 벽을 따라 콜로세움으로 이동하니 이미 많은 사람이 입장을 기다리고 있다. 네로 황제 동상이 있었던 곳에는 덩그러니 표식만 남아 있다. 권력의 무상함이 그대로 드러난다. 콜로세움 자리는 원래 인공호수가 있었고, 이것을 메우고 지금 형태의 원형 복합 건물을 세웠다고 한다. 기원전에 만든 거대하고 위대한 건축물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사전에 구입한 티켓을 이용하여 일사불란하게 콜로세움 내부로 향한다. 아치 형태가 삼중으로 설치되어 무게의 하중을 버티도록 설계한 로마인의 지혜는 감탄을 넘어 존경심이 샘솟는다. 현재 건축에도 상당한 영감과 조형미를 제공한 인간이 만든 위대한 건축물이다. 검투사와 야수들이 다투던 운동장과 관중석을 분리하여 만들고 필요한 지원시설을 운동장 아래에 두어 잘 정돈된 복합 건물이 기원전에 존재했다는 것이 놀랍다.


지진 활동이 많은 지역적인 특성과 2000년이 넘는 세월과 전쟁에도 그 모습이 남아 있다는 자체가 불가사의다. 내부에 있던 많은 장식이 훼손되었지만, 모든 고통을 감당하면서 과거의 영광을 지키려 한 로마인과 이탈리아 국민의 노력이 오늘의 콜로세움이 존재하도록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IMG_7164.JPG Colosseo


콜로세움을 나오니 앞마당에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이 우뚝 솟아있다. 황제의 업적을 조각한 로마에 있는 개선문 중 가장 나중에 세워진 것이다. 벌써 시계는 오후 1시를 넘어서고 있다. 허기가 밀려온다. 준비된 차량으로 점심을 위해 식당으로 이동했다.


점심은 스파게티, 농어요리, 스테이크 등에 화이트와인 한 잔을 마시며 맛나게 먹었다. 특히 호박과 함께 내어온 농어요리가 일품이다. 스테이크는 너무 질겼다. 점심을 먹고 먼저 방문한 곳은 판테온이다.


판테온(Pantheon)은 인간이 만든 위대한 건축물이다. 모든 신들을 위한 신전이기도 한 이 건축물은 건축사적 의미가 대단하다. 천정이 뚫린 43.3미터의 돔은 웅장하면서도 신비롭다. 나는 판테온 신전을 황금분할의 아름다운 예로 배웠던 어린 시절 기억이 떠오른다. 건축의 아름다움은 완벽한 비율에 있다는 의미였으리라고 생각한다. 습도를 조절하기 위한 세밀한 준비와 아치 배열로 인한 하중 분산으로 지금까지 온전한 모습으로 우뚝 서 있다. 인간의 한계가 어디인가를 가늠하기 어려운 현장에서 감탄이 절로 난다.

collage25.png Pantheon and Fontana di Trevi


판테온 구경을 마치고 도착한 곳은 로마의 명소 트레비 분수(Fontana di Trevi)다. 1762년에 만들어진 로코코 양식의 분수다. 동전을 던져 다시 로마로 되돌아오기를 기원하는 장소로 로마를 방문한 관광객이면 누구나 반드시 들러 사랑을 이루고, 로마에 다시 돌아오길 소망하는 곳이다. 아래를 지나는 수로를 이용하여 만든 분수는 화려한 조각과 더불어 시원한 물줄기로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장소다. 특히, 그레고리 펙과 오드리 헵번이 출연한 영화 ‘로마의 휴일(Roman holyday)’에 트레비 분수가 나와 더욱 유명해졌다. 바쁘게 딸 사진을 찍어 주고는 스페인 계단으로 향한다.


스페인 계단은 교황청의 스페인 대사관이 위치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사실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계단에 앉아 젤라토를 먹는 오드리 헵번의 천진난만한 모습으로 더욱 유명한 곳이다. 계단 아래쪽에는 유명 명품관이 즐비한 중심가 거리다. 사진을 찍었지만, 일정에 쫓겨 젤라토는커녕 물 한 모금 축이지 못하고 떠나 아쉬움을 남겼다. 아무것도 볼 것 없는 이곳을 방문한 목적이 로마의 휴일 영화 장면을 연상한 것이라면, 이 꿈을 충족시켜 주는 것이 마땅하다. 젤라토가 먹고 싶은 것이 아니라 영화 속 주인공과의 일체감을 충족시키는 것이 여행이 목적이 되어야 한다. 참으로 아쉽다.


이렇게 무리하게 일정이 진행된 까닭이 다음날 예정된 바티칸 성당 방문 불가 때문이라면, 입장권이 불필요한 트레비 분수나 스페인 계단을 다음날 일정으로 변경하고 먼저 바티칸 성당을 방문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지치고 늦은 오후에 휴식도 취하지 못하고 바티칸 성당으로 이동해 장시간 줄 서는 것이 과연 여행사가 추구하는 여행의 방향성인가 하는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성 베드로 성당에 도착하니 입장을 기다리는 많은 관광객이 대기하고 있었다. 가이드가 전해주는 물로 목을 축이며 묵묵하게 차례를 기다렸다. 전 세계에서 방문한 다양한 국적의 여행객이 베드로 성당으로 들어가기 위해 긴 기다림을 마다하지 않는다.


가톨릭의 성지인 성 베드로 성당은 예수의 제자 베드로가 처형된 장소에 세워졌다 한다. 이곳 주변이 바로 교황이 거주하는 교황청이자 바티칸시국이다. 가톨릭 신자면 평생에 한 번은 반드시 방문하고 싶어 하는 메카다.


보안 검색이 길어진다. 입장 시간이 오후 6시 30분으로 제한되어 있어 초조하게 순서를 기다리다 드디어 차례가 되었다. 가장 먼저 눈길을 끈 것은 성당의 우측에 자리한 미켈란젤로의 조각상 ‘피에타’다. 가까이에서 자세히 볼 수 없어 안타까웠지만, 죽은 예수를 안고 슬픔에 잠긴 성모를 대리석으로 빚어낸 피에타는 조각의 백미라 할 만큼 멋진 형상이다. 깊숙이 들어서니 베드로 성당의 규모는 가히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여러 교황과 성인들의 조각이 있고 소규모의 미사가 집전되는 공간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마침 성당 본당에는 행사가 진행 중이다. 성가대의 합창 소리가 웅장한 성당에 울려 퍼지니 전율이 느껴진다. 구석구석을 다 돌아보려면 정말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경건한 마음으로 성당을 둘러보고는 광장이 보이는 정문으로 향했다.

IMG_7342.JPG Pieta′


오늘 투어 일정은 끝이 났다. 피로가 밀려온다. 숙소에 가기 전 편의점에 들러 와인과 과일 등을 구입하고 이내 돌아왔다. 샤워를 마치고 나니 주변을 돌아다닐 엄두가 나지 않는다. 정확한 숙소 위치와 교통편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니 어디로 나서기가 두렵다. 컵라면으로 저녁을 대신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긴 하루가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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