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C에서 윤* 스님, 발목을 다치다
안나푸르나는 말 그대로 풍요의 여신이지만 여러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특히, 높이 올라가면 고산증이 오고(이때 무리하면 정말 큰일 난다)
바위들이 많아서 미끄러워 낙상으로 이어지기 쉽다.
잠시 방심하면 큰 사고가 나니,
롯지에 도착하기 전까지 항상 긴장하고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사고가 나다]
ABC에서의 일출을 감상하기 위해 새벽에 일어났다. 그런데 밖에는 비가 내리고 하늘에 먹구름이 가득했다. ABC에서의 일출도 정말 장관이라고 하던데 못 보게 되어 많이 아쉬웠다.
나뿐만 아니라 스님들도 아쉬워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항상 좋은 일만 있을 수 없는 것, 이게 인생 아닌가! 우리는 아침 식사를 하고 짐을 챙겨서 밖으로 나와 ABC를 기념 삼아 단체사진을 찍었다. 스님들은 이메일 주소가 없었지만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소중한 이 사진들을 꼭 전해드리고 싶었다.
윤* 스님이 오늘 어디까지 갈 것이냐고 물어보셨다.
“오늘 촘롱까지 가야지 내일 포카라로 내려갈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스님들께서는 어디까지 가세요?”
“빨리 가면 촘롱까지 가고요, 안되면 시누와까지만 가려 구요”
스님들을 더 이상 못 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너무나 아쉬웠다.
“스님들, 꼭 촘롱까지 오세요. 제가 한국 음식 많이 가지고 있는데요, 어차피 저는 내일이면 트레킹이 끝나니깐 전부 다 드릴게요"
한국 음식을 다 드린다는 말에 스님들의 얼굴에 촘롱까지 꼭 가겠다는 의지가 불타는 것 같았다.
“그럼 저희도 촘롱까지 꼭 갈게요.”
”네, 그럼 촘롱에서 꼭 뵙겠습니다.”
어느새 일행이 된 우리들은 천천히 ABC에서 아래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어차피 천천히 가도 나와 꺼멀의 발걸음이라면 촘롱까지 가는데 별문제가 없었다. 그래서 처음엔 스님들의 발걸음에 내 발걸음을 맞췄다. 그런데 ABC에서 100미터도 내려가지 않아서 사고가 났다. 바로 윤* 스님께서 내려가시다가 ABC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보려고 뒤로 고개를 돌렸는데 그만 발을 헛디디어 왼쪽 발목을 삔 것이었다. 윤*스님은 괜찮다고 했지만 발목이 계속 부어올랐다. 스님께서는 다리를 절뚝거리며 이를 악물고 걸어가셨다. 우리는 중간에 두랄리(deurali, 3230미터)에서 휴식을 취했다.
의자에 앉으신 스님께서 등산화를 벗으시고 양말을 벗었다. 왼쪽 발목이 크게 부풀어 있었다. 상황이 심각했다. 라메쉬 형이 양철통에 냉수를 가져왔다. 스님은 고통스러운 표정을 하며 계속 냉찜질을 하셨다. 의료기술이 없었기에 누구 하나 스님을 도와드릴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어떡하든 도와드리고 싶었다. 스님께 양해를 구하고 두 손으로 부풀어 오른 왼 발목을 잡고 돌리며 계속 뼈를 맞춰보면서 지압을 하였다. 조금 좋아지긴 했지만 이 상태로는 트레킹 하기 무리였다. 라메쉬 형도 무리라고 생각했는지 다른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바로 윤*스님을 지게처럼 이고 갈 포터를 섭외했다. 그런데 이곳 롯지에 있는 포터들이 터무니없는 가격을 요구했다. 형이 버럭 소리 지르며 씩씩거렸다.
“라메쉬, 나 괜찮아, 천천히 갈 수 있어, 조금만 더 쉬었다가 가자”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스님이 기운을 차릴 시간을 드리며 휴식을 취했다.
휴식을 취하는 동안 라메쉬 형에게 다가가 이메일 주소를 물어보았다.
우리는 서로의 이메일 주소를 받아 적었다. 그런데 나의 이메일 주소를 형이 적는 걸 보고 옆에 계시던 스님이 진지하게 질문을 했다.
“소방서 다니시는 거 맞으시네, 그렇죠?”
“네? 아닌데요……일반 회사원인데요~”
“어 이상하네요, 분명 이메일 주소가 119 아니었나요? 그리고 어제오늘 트레킹 하시는 거 보니깐 너무 다람쥐같이 빠르시고 체력도 보통이 아니시던데요?”
순간 웃음이 나왔다.
“아닙니다 스님, 저 일반 회사원 맞아요, 이메일 주소가 119@000.com 이고요, 000 회사에 다니고 있어요. 119 때문에 소방서 다닌 줄 아셨군요?”
나의 해명에 모두가 한바탕 크게 웃었고 윤* 스님은 잠시 아픔을 잊은듯 보였다.
[To be conti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