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푸르나 여행기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시간은 5월 4일 일요일 밤 10시 40분입니다.
오늘 새벽 6시부터 장장 10시간 장거리 운전을 하고 오후 9시쯤 집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자리 앉아서 가만히 글 쓰는데도 많이 피곤하네요... 그래도 매일매일 글 쓰는 건 빼먹으면 안 되겠죠! 그래서 월요일마다 올려드리는 안나푸르나 이야기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오늘 운전하면서 약간의 수확도 좀 있었는데요,
그건 바로 아래와 같이 재미난 글감 소재를 몇 가지 얻었습니다.
첫 번째, 도시 이름으로 팔자 시를 지어보려 합니다.
운전대 잡고 부여군 옆을 지나가다가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이 밤의 끝 부여 잡고~'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두 번째, 할리우드 스타들 이름으로 글을 써보려 합니다.
역시나 운전하는데 전광판에 '크루즈 기능 맹신, 대형 사고 원인' 글자를 보고 이렇게 만들어 보려 합니다. '크루즈 기능 맹신에, 톰 크루즈도 미션 不'
세 번째, 한 번도 대화한 적 없는 어떤 이에게 슬픈 편지를 한 통 쓰려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글을 올리고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제 진짜 좀 쉬어야겠습니다.
모두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may the Dream be with you~
[피상가는 길-peaceful forest!]
차메에서 출발하여 바라탕(bhratang, 2720미터)으로 가는 길엔 이름 모를 분홍 빛깔 꽃들이 사방에 널려있었다. 색깔이 너무 곱고 아름다워 사진을 찍고 있는데 탈레큐에서 잠시 만난 미국인 커플들이 앞에 보였다. 그들은 내가 한국인이라는 걸 알자 자신들도 의정부에서 3년간 영어강사로 일했다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그 친구들의 사진을 몇 장 찍어줬다. 잘 어울리는 커플이었다. 자신들만 사진 찍기 미안했는지 내 사진도 찍어주겠다고 했지만 혼자 찍는 사진이 처량해 보여서 양해를 구하고 자리를 먼저 떴다.
바라탕 가는 길에도 길이 유실되어 조심히 걸어야 했다.
만약 발을 잘못 디디면 왼쪽으로 굴러떨어져 순식간에 거센 강물에 휩쓸려 버리게 될 테니...
조심히 위험지대를 벗어나 바라탕에 도착해 꺼멀을 기다렸다. 10여 분 뒤에 꺼멀이 도착했다.
꺼멀의 경직된 얼굴은 나를 보자마자 안도의 눈빛으로 바뀌었다. 길이 유실되어서 내 걱정을 많이 했다고 한다. 나의 포터이기 이전에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동생 같은 꺼멀이 참 고마웠다.
볶음밥을 주문하고 주위를 바라보았다. 흰색 조랑말 두 마리가 힘겹게 풀을 뜯어먹고 있었다.
이 조랑말들은 포터들처럼 위쪽의 끝없는 목적지를 향해 하루 종일 무거운 짐을 실어 날라야 하는 운명이었다. 그런데 뒤의 조랑말 왼편에 축구공이 실려 있었다. 네팔 고지에서 축구공을 보니 참 신기했다. 조랑말이 향하는 목적지의 꼬마 아이들은 이 축구공을 보면 얼마나 좋아할까? 축구는 역시 만국 공통 스포츠인 거 같다.
잠시 후 볶음밥이 나왔다. 그런데 볶음밥에서 계속 작은 모래들이 씹혔다.
반쯤 먹다가 포기하고 그냥 피상으로 출발했다. 이제까지 먹어본 음식 중에 제일로 맛이 없었던 것 같다.
약간 기분이 안 좋았지만 이것 또한 여행의 한 부분임을 알기에 그저 말없이 걸었다.
산길은 큰 폭우가 내려서인지 이곳저곳 군데군데 끊겨있었다.
얼마쯤 더 올라가니 외국인 남자 2명과 여자 한 명이 햇빛을 받으며 돌 위에 앉아 쉬고 있었다.
딱 보니 이스라엘 학생들이었다.
그중 하나가 나에게 반가운 척하며 어디서 왔는지 물어보았다. 한국인이라고 말하자 이 친구도 월드컵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사진을 같이 찍자고 했다. 사람들하고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성격인데 이 친구들과 있는 것은 왠지 불편했다. 사진을 한 장 찍고 나서 인사를 하고 먼저 자리를 떴다.
두쿠르 포카리(Dhukure pokhari, 3060미터)에서 피상(pisang, 3200미터) 가는 길은 지도에 peaceful forest라고 적혀있었다. 이 지역은 해발 3000미터가 넘는 고도에도 불구하고 '평화로운 숲'이라는 말처럼 빼곡한 침엽수가 가득했고 곳곳에 이름 모를 꽃들도 앙증맞게 피어있었다.
더군다나 지나가는 사람들도 거의 없어서 히말라야 산림의 깨끗한 정기를 오롯이 혼자 받았다.
이렇게 좋은 공기를 마시며 산림욕을 하니 기분이 갑자기 좋아져서 셀카도 찍었다. 길은 끝없는 활주로처럼 평평하게 계속 이어져 있었다. 이런 길은 걷기에도 너무 편했다.
그렇게 거대하고 끝이 없어 보이는 산림욕장에서 나오자 오늘의 목적지인 Lower Pisang에 도착했다. 피상은 해발 3200미터에 있는 마을로 위쪽이 Upper Pisang이고 아래쪽이 Lower Pisang으로, 그 사이에는 큰 강이 흐르고 있었다. 피상에 도착한 후 롯지 입구의 의자에 앉아 강 너머 위 피상을 감상하면서 뒤에 오는 꺼멀을 기다렸다. 위 피상 제일 꼭대기에는 황금색의 사원이 하나 있었다. 그리고 내가 쉬는 곳 옆에도 몇 명의 트레커들이 모여 어느 롯지에 투숙할지 고민을 하고 있었다. 행색을 보아하니 이스라엘 학생들이었다. 이 번 트레킹에서 어디를 가든 이스라엘 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 친구들은 롯지 주인과 흥정을 하다가 다른 숙소를 찾아 사라졌다.
그런데 그 순간 네팔인 한 사람이 달가닥 달가닥 갈색 말을 타고 빠르게 내 옆으로 다가오더니 잠시 숨을 고른 후 카우보이 모자를 한 번 매만지고 숲 속으로 번개처럼 사라져 갔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에서 그는 주연이고 나는 쉬고 있는 행인 1과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그가 참 멋져 보였다.
그리고 말을 타고 안나푸르나를 여행한다면 얼마나 편할까, 잠시 그가 부럽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