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부작의 여행기
여러분,
혹시 '뽀그리' 라는 단어를 들어 보셨는지요?
'뽀그리'는 뽀글이라고도 불리며, 봉지 라면 안에 뜨거운 물을 넣어 먹는 군대식 요리입니다.
뽀그리는 만드는 법은 아래와 같이 매우 간단합니다.
아마 건강에 민감한 분들은 봉지 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으면 발암 물질 나온다고 싫어하실 수도 있지만, 군대 전역하고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뽀그리 먹고 사고 났다는 이야기는 못 들어 봤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시대가 변해서 군대에서 뽀그리를 해먹는지 잘 모르겠는데요,
그냥 군대에서 많이 먹던 추억의 간식으로 생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서론이 길었는데요,
오늘의 안나푸르나 이야기 주제는 바로 '라면'입니다.
▶ 월요일 : 행운의 '월'척을 낚는 '월'요일 되세요~
(뽀그리 만드는 법)
라면 선택: 신라면, 삼양라면 등 다양한 봉지 라면을 사용할 수 있어요.
봉지 개봉: 라면 봉지를 뜯고 면을 적당히 부숴줍니다.
스프 첨가: 스프를 넣고 흔들어 골고루 섞어줍니다.
뜨거운 물 붓기: 봉지 안에 적당량의 뜨거운 물을 넣고 봉지를 잘 말아줍니다.
익히기: 약 3~5분간 기다린 후 봉지를 열어 맛있게 즐기면 끝!
[네팔리의 부엌에서 라면을 끓여먹다]
계획에도 없던 위 피상까지 올라갔다 오니 배가 많이 고팠다. 저녁을 주문하고 식당에 꺼멀과 함께 앉아서 오늘 보았던 안나푸르나의 감동을 꺼멀에게 신나게 말해주었다. 꺼멀은 내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었다.
그때 미국인 커플이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안나푸르나의 감동에 아직 깨어나지 못한 듯했다. 그들은 나를 보자마자 안나푸르나가 너무나 아름다웠고 친절하게 알려줘서 고맙다고 했다.
그들도 나와 같은 감동을 느낀 것 같아서 기뻤다. 나는 그저 씨익 웃어주었다.
식당 안에는 나와 꺼멀, 그리고 미국인 커플에 히피족 같은 미국인 이렇게 5명이 있었다.
미국인들은 어느새 세 명이서 한 테이블에 앉아 자신들의 여행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오늘이 911이라는 것이 생각났다. 미국에서는 911 추모식을 하고 있을 것이다.
저 친구들은 오늘이 911이라는 걸 알고 있을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저녁이 나올 때까지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았다.
배가 많이 고파서 꺼멀에게 뜨거운 물(Boiled water)를 주문했다. 꺼멀이 잠시 후 대형 보온병에 물을 가져왔다. 식사 나오기 전에 라면을 먼저 먹고 싶었다. 꺼멀에게 한국 군인들이 야외에 훈련 나가 조리기구가 없이도 라면을 먹는 법을 알려주겠다고 했다.
군대 가본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는 일명 ‘뽀그리’ 라면이었다. 라면을 잘게 부순 후 스프를 라면 봉지 안에 넣고 그 안에 물을 부어 입구를 묶어서 먹는 게 바로 ‘뽀그리’다. 군대에서 마지막으로 해보고 몇 년 만에 다시 뽀그리를 하느라 손이 익숙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순간 가장 중요한 라면 봉지가 찢어지고 말았다. 꺼멀 앞에서 자랑을 좀 하려다 되레 창피함만 느꼈다. 꺼멀이 웃으며 그러지 말고 부엌에 들어가서 직접 라면을 끓여먹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봤다.
"Are you sure? Can I cook this ramyeon in this kitchen?"
"Let me ask her, sir"
꺼멀이 네팔리의 부엌 안으로 들어갔다가 잠시 후 웃음 띤 얼굴로 돌아왔다. 주인아주머니의 허락을 받았다며, 라면을 들고 부엌으로 가면서 나보고 빨리 들어오라고 했다. 트레킹 중에 네팔리의 부엌을 구경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모처럼 기회가 생겨서 서둘러 부엌으로 들어갔다.
부엌은 전체적으로 어두웠고 옛날 한국의 80년대 시골집 부엌을 닮아 있었다.
중년의 네팔리 여성이 그곳에서 요리를 하고 있었다. 나는 가볍게 목례하고 요리하는 장면을 잠시 감상했다. 화덕에는 2개의 불이 타오르고 있었고 그중 하나에는 널따란 냄비에 물이 끓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능숙하게 채소들을 끓는 냄비에 넣고 있었다.
우리도 냄비에 적당량의 물을 담고 불 위에 올려놓았다. 물이 끓자 나는 그곳에 너구리 라면 2개와 스프를 넣었다. 이 순간만큼은 *부르즈 알 아랍의 세계 최고 요리사보다 더 유명해진 느낌이었다.
* 부르즈 알 아랍(Burj Al Arab)은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 위치한 세계적인 7성급 럭셔리 호텔이다.
이를 기념해 전속 사진사를 통해 몇 컷을 찍었다. 라면 냄새가 부엌에 가득 퍼졌고 침이 꼴딱 넘어갔다. 요리가 다 되자 펄펄 끓는 냄비를 들고 dinning room으로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라면이 너무 맛있을 것 같아서 아직도 이야기하고 있는 미국인들에게 좀 주려고 했지만 괜찮다고 해서 안도의 숨을 쉬었다. 라면이 두 개였기 때문에 다섯 명이 먹기에는 양이 너무 적었다.
꺼멀도 라면을 무척 좋아했다. 꺼멀과 나는 얼굴에 땀을 줄줄 흘리며 뜨거운 라면을 호호 불어가면서 하나도 남기지 않고 국물까지 후루룩 마셔버렸다. 식당은 어둡고 주위는 고요했지만 꺼멀과 나의 맛있는 웃음소리가 저 멀리 퍼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