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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벳 부적

이부작의 여행기

by 이부작

※ 티벳의 수천 미터 외진 산길을 버스는 온 힘을 다해 꼬부랑 꼬부랑 할머니 노랠 부르듯 시속 20km로 느리게 올라갔다. 그런데 중간쯤 올라간 버스가 끼~익 소리를 내며 갑자기 멈춰 섰다.


그러더니 버스기사가 일어나서 승객들에게 알 수 없는 티벳어로 짧게 이야기를 했다.

그걸로 모든 상황이 정리되었다. 승객들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듯'

일상의 평온한 표정으로 자신의 짐을 하나 둘 챙겨서 버스에서 내렸다.

그리곤 저벅저벅 산길을 올라갔다.


나는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했다. 어리둥절해하며 버스기사에게 영어로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자 당연히 티벳어로 짧은 답변이 돌아왔고, 그도 답답한 듯 두 손으로 X자 포즈를 취했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니 목적지 중간쯤에 버스가 고장이 나서 승객들은 본의 아니게 차에 내려 등산을 해야만 했다. 티벳의 낯선 오지라 뒤에 오는 버스는 몇 시간을 기다려야 했고 차량 수리도 언제가 될지 모르기에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었다.


여행 스케줄에 포함되지 않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변수,

1시간 이상 두발로 등산(고행)을 해서 오늘의 목적지 티벳 곰파(절)로 올라가야 했다.

(절 이름은 오래된 기억이라 생각이 안 난다...)


버스 안의 외국이라고는 나와 서울대학교를 다니고 있는 여학생뿐이었다.

(그 여학생은 머리카락이 거의 없어서 모자를 쓰고 있었다. 아마도 좀 아팠던 것 같다)

우리는 티벳 사람들 틈에 섞여서 한발 한발 위로 올라갔다.

참고로 그때 나는 팀버랜드 샌들을 신고 있었고 혈기 왕성한 30대 초반이라 참을만 했지만 솔직히 쉽지는 않았다.


그렇게 한참 올라가다가 어느 순간 티벳인들 8~9명 무리와 함께 이동을 하게 되었다.

알고 보니 그들은 모두 한 가족으로 곰파로 가서 가족의 안녕과 평화를 비는 일상의 티벳 순례자들이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우린 그저 눈이 마주치면 그냥 씨익 웃으며 말없이 순례길을 이어갔다.


그러다 풀밭에 앉아 야크를 보며 잠시 쉬고 있는데 그 무리 중 어린 남학생이 내게 다가왔다.

아마도 15살쯤 되었던 것 같다. 그 학생이 나에게 티벳어로 말을 걸었다.

단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했다. 그는 중국어도 하는 것 같았다. 역시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다행히도 한국인 여학생이 다가와 그 소년과 한자로 필담을 하며 통역을 해주었다.

아마도 내용은 이랬던 것 같다. '티벳의 큰 명절이라 가족 모두와 이 곰파로 순례길을 나섰다. 티벳 사람들은 항상 성지 순례를 떠난다. 순례는 여행이 아니라 삶의 일부이다'


짧은 휴식을 뒤로하고 대가족과 우리는 계속해서 위로 발걸음을 옮겼고,

드디어 1시간여의 산행 후 곰파에 도착했다.

사람들은 각자 곰파 속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스며들었다.

어떤 이는 ※ 마니차를 돌리고 어떤 이는 부처님 동상을 보고 기도드리고,

어떤 이는 ※ 티벳 탱화를 사진기에 담고, 나는 어머니와 미래의 나를 위해 기도를 했다.


그러다 담벼락 그늘에서 쉬고 있는 대가족을 다시 만났다.

난 역시 또 씨익 웃어 보이며 인사를 하고 그 소년을 불러내 다시 대화를 시도하였다.

그리고 가방에서 주섬주섬 한국에서 가져온 물건을,

비싸진 않지만 그렇다고 싸지도 않은 선물용 펜을 소년의 손에 쥐여 주었다.


소년은 놀라면서 안 받겠다고 손사래를 쳤다. 나는 순간 부처님으로 빙의 된 듯 그에게 ※ 염화시중의 미소를 보내며 '이 펜으로 공부 열심히 하라'는 진심을 전했고 소년은 이내 '내 마음을 알았다는 듯 이심전심(以心傳心)' 티벳어로 '투체체(ཐུགས་རྗེ་ཆེ་, Thuk-je-che)',고맙습니다로 답하였다.


그리고 그 소년도 역시 자신의 낡은 가방에서 나처럼 무언가를 꺼냈다.

소년의 손에는 가로 세로 1.5cm 미터 정도 되는 사각형의 목걸이가 여러 개 있었다.


소년은 그중에 하나를 골라 나의 손에 건네 주었다. 목걸이의 재질은 플라스틱이었고 사각형 안에는 티벳 탱화에서 볼 수 있는 염라대왕 같은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나 역시 놀라서 그럴 필요 없다는 눈빛을 보냈지만, 이번에는 소년이 나에게 염화시중의 미소를 보냈다. '이 목걸이를 차고 있으면 액운을 막아줄 거예요'

그 얼굴을 보고 나도 따뜻한 눈빛과 웃음으로 '따시뗄레(བཀྲ་ཤིས་བདེ་ལེགས་, Tashi Delek)',

평안과 행운이 함께하는 티벳 인사말로 답했다.


이제 버스를 타고 돌아갈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

지금헤어지면 아마도 이번 생에서 나와 소년이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임을 우린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 순간을 사진으로나마 간직하고 싶어서 사진 한 장 함께 찍을 수 있을지 조심스레 부탁을 했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사진기를 맡기고 난 후 나와 소년 그리고 대가족은 담벼락 그늘에 기대고 앉거나 서서 웃거나 무표정한 얼굴로 카메라를 응시했다. '찰칵'


그렇게 나는 인생(청춘)의 한 장면을 사진으로 남겼다.


'그 대가족은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늦은 밤 생각해 본다.


※ 티벳은 중앙아시아에 위치한 지역으로, 평균 고도가 약 4,900m에 달하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고원 지역입니다. 이곳은 "세계의 지붕"이라고 불리며, 에베레스트산(8,848m)도 티벳 지역에 속합니다. 티벳은 독특한 문화와 불교 전통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티벳 불교가 깊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티벳은 독립적인 왕국이었으나, 현재는 중국의 티벳 자치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티벳 여행을 계획하는 경우, 고산병 예방을 위한 준비가 필요하며, 여행 허가서 및 현지 가이드 동행이 필수일 수 있습니다. 또한, 티벳의 주요 관광지로는 라싸에 위치한 포탈라궁, 조캉사원, 마나사로바르 호수 등이 있습니다.


※ 마니차(摩尼車, Mani Wheel)는 티벳 불교에서 사용되는 중요한 수행 도구입니다. 이는 원통형으로 만들어진 회전식 기도 바퀴로, 표면에는 불교 경전이나 만트라(진언)가 새겨져 있습니다. 마니차를 돌리는 것은 경전을 읽는 것과 같은 공덕을 쌓는 것으로 여겨지며, 수행자들은 이를 돌리면서 기도를 올립니다.

마니차는 다양한 크기로 존재하며, 손으로 돌릴 수 있는 작은 크기부터 사원에 설치된 대형 마니차까지 있습니다. 내부에는 경전이 적힌 두루마리가 들어 있는 경우가 많으며, 시계 방향으로 돌리는 것이 일반적인 수행 방식입니다.


※ 티벳 탱화(Thangka)는 티벳 불교에서 중요한 종교적 그림으로, 불교의 가르침과 신앙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역할을 합니다. 일반적으로 천이나 종이에 그려지며, 불교의 신, 만다라, 수행 과정 등을 묘사합니다. 탱화는 명상과 수행의 도구로 사용되며, 사원이나 가정에서 신앙의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탱화의 제작 과정은 매우 정교하며, 특정한 규칙과 상징성을 따릅니다. 색상과 구도는 불교 철학과 깊은 연관이 있으며, 금박을 입히거나 섬세한 붓질을 통해 신성한 분위기를 강조합니다. 티벳 불교의 다양한 종파마다 탱화의 스타일과 표현 방식이 다를 수 있습니다.


※ 염화미소(拈華微笑)는 불교에서 중요한 개념으로, 말 없이 깨달음을 전하는 방식을 의미합니다. 이는 석가모니가 연꽃을 들어 보이며 미소를 지었을 때, 가섭 존자만이 그 뜻을 깨달았다는 고사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불교에서는 이심전심(以心傳心), 즉 말 없이 마음에서 마음으로 깨달음을 전하는 수행 방식을 강조합니다. 염화미소는 단순한 미소가 아니라, 깊은 깨달음과 직관적인 이해를 상징합니다. 이는 불교에서 언어를 초월한 깨달음의 전달 방식으로 여겨지며, 선종(禪宗)에서 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그날 이후 많은 날이 지났지만,

이름 모를 티벳 소년이 선물해 준 목걸이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차의 룸 미러에 걸어 놓고 있는데요(사진으로 기록하기 위해서 오늘은 집안으로 가져왔습니다, 지금 보니 염라대왕 모습은 안보이고 색이 바랬네요..),

차를 운전하기 전에 가족의 안전을 위해 항상 기도를 하고 있고,

운전 중에 졸음이 찾아오면 목걸이를 만져서 나의 수호신에게 여행의 '안녕'을 빕니다.


그렇게 티벳 여행을 다녀온 이후 정말 다행히도,

목걸이를 선물받고 나서 아직까지 큰 차량 사고나 다른 일로 불상사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 이 티벳 목걸이는 자연스레 저의 소중한 부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부적은 아마도 제 생이 끝날때까지,

제가 저 세상 소풍 떠나더라도 아이들에게 물려줄 '사랑의 부적'이 될 것 같습니다.


이제, 글을 마무리하려 합니다.

비밀 하나 말씀드리면 오늘도 Cass writing(취권 글쓰기)인데요,

솔직히 좀 힘들지만 내일도 글을 이어가 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ps. 그때 티벳 대가족분들과 찍은 사진을 출력해서 간직하고 있는데요, 사진을 어디에 놔뒀는지 기억이 안되네요...ㅡㅡ, 조만간 사진 찾으면 다시 업데이트 하고 싶습니다. 나중에 사진을 보시면 그때 그 티벳 소년이 누군지도 아실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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