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도병 이우근 님을 아시는지요?

이부작의 생각

by 이부작

지난 일요일,

6.25도 곧 다가오고 아이들에게 의미 있는 체험을 해주고 싶어 친한 가족과 함께 임진각을 방문했습니다. 원래는 제3땅굴을 견학하려고 했지만, 대기 인원도 많고 시간도 여의치 않아 옆 건물에 있는 곤돌라를 타고 DMZ로 넘어갔습니다.


약 3~4분간의 짧은 곤돌라를 타고 임진강을 넘어서 전망대에 도착한 우리는 사전에 예매한 ※ 캠프 그리브스 역사 공원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올해 날씨 중 가장 더운 한낮에 땀을 흘리며 오르막길을 몇 분 올라 예전 미군의 볼링장을 전시 공간으로 바꾼 갤러리 그리브스를 방문했습니다.


전시실에 들어서자 시원한 에어컨이 더위를 식혀주었습니다. 그리고 입구 왼쪽의 미 종군 기자 존 리치의 사진을 보며 전쟁의 참혹함을 느꼈고 한국전쟁 사진으로 여생 최초의 퓰리처상을 수상한 마거리트 하긴스의 사진들을 보면서 존경심을 느꼈습니다.


그러다 전시관 왼쪽을 구경하고 오른쪽 어느 학도병의 이야기가 있었지만 무심코 지나쳐 출구로 나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제 눈에 16이란 숫자가 들어왔습니다. 잠시 멈춰 서서 학도병 이우근 님의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큰 충격과 감동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은 혹시 학도병 이우근 님을 알고 계시는지요? 아마도 대부분 잘 모르실 겁니다.

저도 어제까지는 전혀 몰랐던 분입니다. 아니 솔직히 학도병에 대해서는 예전 '포화속으로' 영화에서 봤던 6.25 때 우리 대한민국을 위해 싸우다 전사하신 나이 어린 국가유공자 중 한 분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전시관의 이우근 님 편지를 보고 이 모든 생각이 깨졌습니다. 제가 너무나 무지했습니다.

대한민국을 위해 꽃다운 나이에 목숨 바친 학도병분들께 무한한 존경과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아래는 '학도병 이우근 님 이야기'와 이우근 님이 '어머님께 보내는 편지' 내용입니다.

여러분께 부탁드립니다. 아래 글과 편지를 마음으로 읽어봐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캠프 그리브스 역사 공원은 한국전쟁 이후 미군이 실제 사용했던 군사 시설을 복원하여 DMZ의 역사와 평화의 가치를 체험할 수 있는 특별한 공간입니다. 경기도 파주시 적십자로 137에 위치하며, 다양한 전시와 체험 프로그램을 제공합니다. 이곳에서는 갤러리 그리브스라는 전시 공간을 통해 한국전쟁과 정전협정, UN 파병 부사관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접할 수 있습니다. 또한, 곤돌라를 타고 DMZ로 이동하여 평화누리 관광지와 연결되는 코스를 즐길 수도 있습니다.

갤러리 그리브스의 면적은 2,760㎡(실내외 약 835평)입니다. 이 공간은 과거 미군 볼링장을 리모델링하여 정전 70주년 기획 전시 공간으로 꾸며졌으며, 학도병 스토리와 정전 협정서 전시 등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방문을 원하시면 공식웹사이트에서 예약 및 방문 안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운영 시간은 09:00~17:00이며, 입장 마감은 16:10입니다. 매주 월요일과 명절 당일에는 휴관하니 참고하세요


[학도병 이우근 이야기]

6.25 전쟁에 16세의 나이에 학도병으로 참전하여

1950년 8월 11일, 포항여중 전투 중 포항여자중학교 앞 벌판에서 전사했다.

당시 동성중학교 3학년이던 이우근 학도병(1934~1950)의 옷 속 수첩에서

핏자국에 얼룩진 그의 일기와 어머니께 전하는 편지가 발견되었다.


이 이야기는 2010년 개봉한 영화 <포화속으로>의 모티브가 되었으며

그의 일기와 편지는 전쟁이 가져오는 파괴에 대한 두려움, 언제 목숨을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조국을 위해 담대히 전쟁 속에 몸을 던진 어린 학도병의 당시

심경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어머니께 보내는 편지]

이우근

1950년 8월 10일 쾌청


어머니! 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것도 돌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十여 명은 될 것입니다. 저는 二명의 특공대원과 함께

수류탄이라는 무서운 폭발 무기를 던져 일순간에 죽이고

말았습니다. 수류탄의 폭음은 저의 고막을 찢어 놓고 말았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제 귓속은 무서운 굉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어머니, 괴뢰군의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팔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너무나 가혹한 죽음이었습니다. 아무리 적이지만 그들도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더욱이 같은 언어와 같은 피를 나눈

동족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고 무겁습니다.


어머니! 전쟁은 왜 해야 하나요.

이 복잡하고 괴로운 심정을 어머니께 알려드려야 내 마음이

가라앉을 것 같습니다.


저는 무서운 생각이 듭니다.

지금 저 옆에는 수많은 학우들이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듯, 적이

덤벼들 것을 기다리며 뜨거운 햇볕 아래 엎디어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엎디어 이 글을 씁니다. 괴뢰군은 지금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언제 다시 덤벼들지 모릅니다. 저희들 앞에 도사리고

있는 괴뢰군 수는 너무나 많습니다.

저희들은 겨우 七一명 뿐입니다. 이제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면 무섭습니다.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고 있으니까 조금은 마음이 진정되는 것

같습니다.


어머니! 어서 전쟁이 끝나고 어머니 품에 안기고 싶습니다.

어제 저는 내복을 제 손으로 빨아 입었습니다. 비눗내 나는 청결한

내복을 입으면서 저는 한 가지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어머니가

빨아주시던 백옥 같은 내복과 제가 빨아 입은 그다지 청결하지 못

한 내복의 의미를 말입니다. 그런데 어머니,

저는 그 내복을 갈아입으면서, 왜 수의를 문득 생각 했는지

모릅니다.


어머니, 어쩌면 제가 오늘 죽을지도 모릅니다. 저 많은 적들이

저희들을 살려두고 그냥은 물러갈 것 같지가 않으니까 말입니다.

어머니, 죽음이 무서운 것은 결코 아닙니다. 어머니랑, 형제들도

다시 한 번 못 만나고 죽을 생각하니, 죽음이 약간 두렵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살아가겠습니다. 꼭 살아서 돌아가겠습니다.

왜 제가 죽습니까, 제가 아니고 제 좌우에 엎디어 있는 학우가 제

대신 죽고 저만 살아가겠다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천주님은 저희 어린 학도들을 볼쌍히 여기실 것입니다.


어머니, 이제 겨우 마음이 안정이 되는군요.

어머니, 저는 꼭 살아서 다시 어머니 곁으로 달려가겠습니다.

웬일인지 문득 상추쌈이 먹고 싶습니다. 그리고 옹달샘의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냉수를 한없이 들이키고 싶습니다.


아, 놈들이 다시 다가 오는 것 같습니다.

살아서 다시 또 쓰겠습니다.

어머니 안녕! 안녕!

아, 안녕이 아닙니다.

다시 쓸 테니까요.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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