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밥

이부작의 생각

by 이부작

【얼음밥】

- 이외수 님 "그대에게 던지는 사랑의 그물" 187~207p -


(중략)

대부분의 작가들은 서술적 문체로 소설을 쓰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묘사적 문체로 소설을 쓰고 싶었다. 소설은 문학이고 문학은 예술이다.

예술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행위이다. 아름다움은 서술되어질 때보다 묘사되어질 때 더욱 선명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나는 그런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고정관념이 문제였다. 문학성을 내포한 문체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어떤 대상의 외형적 묘사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반드시 내면적 묘사가 가미되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설탕은 달다. 태양은 눈부시다. 말은 발가락이 없다. 거지는 가난하다. 고양이가 쥐를 먹는다. 기린은 목이 길다. 이런 따위의 표현은 너무나 상투적이어서 아무리 묘미해 보아도 생명력을 느낄 수 없는 고정관념의 껍질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도저히 탈피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사물의 내면을 들여다보려고 해도 그 사물의 외형에 가리워져 있는 고정관념의 껍질을 깨뜨릴 수가 없었다. 나는 차츰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었다. 날마다 방 안 가득 파지만 쌓여가고 있었다.


나는 정신력이 결여되어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와신상담(臥薪嘗膽)이라는 고사성어가 떠올랐다. 오나라의 임금이었던 부차가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장작더미 위에서 잠을 자며 복수의 일념을 불태운 고사. 그에게 패배한 월나라의 임금 구천이 쓸개를 핥으며 보복을 다짐한 끝에 부차를 패배시킨 고사에서 유래된 성어였다.


나는 소설이라는 난공불락의 성을 함락하기 위해 어떤 방법으로 자신의 정신을 강화시킬까를 모색해 보았다. 밥이 떠올랐다. 일찍이 밥만큼 나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존재는 이 세상에 없었다. 나는 한 솥 가득 밥을 지어서 바깥에 내다 놓았다. 얼음밥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나는 얼음밥으로 끼니를 연명하면서 묘사적 문체를 획득하는 데에 골몰해 있었다. 더럽게 눈물겨운 겨울이었다.


얼음밥은 도저히 수저로는 먹을 수가 없었다. 망치와 못을 이용해 깨뜨린 다음 으적으적 씹어 먹는 수밖에 없었다. 정신뿐만이 아니라 내장까지도 투명해지는 느낌이었다. 한 솥 가득 밥을 지어서 바깥에 내다 놓으면 1주일은 족히 정신과 내장을 투명하게 유지시킬 수가 있었다.


눈보라가 심하게 몰아치는 어느 날이었다. 나는 방문을 열어놓고 흩날리는 눈보라를 관찰하고 있었다. 그때 문득 글 한 줄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습관적으로 원고지에다 옮겨보았다.


수천만 마리의 나비떼가 어지러이 허공을 날고


단 한 줄이었다. 더 이상은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너무 추워서 방문을 닫고 방금 원고지에 옮겨놓은 글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게 만약 한 줄짜리 시라면 어떤 제목이 어울릴까. 눈보라로 정한다면 역시 고정관념을 탈피하지 못한 상태로 전락하고 만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장터. 나는 왜 그때 화장터라는 단어가 떠올랐을까. 혹시 얼음밥을 먹어가면서까지 묘사적 문체를 얻어내려고 발버둥 치는 내게 하나님이 영감이라도 내려주신 것이나 아닐까.


화장터라는 제목을 붙이자, 나비떼는 놀랍게도 사자의 소지품을 태울 때 날아오르는 연소물의 사해조각을 연상시키더니 이내 영혼의 편린으로 변하고 있었다. 제목을 제지공장으로 붙인다면, 나비떼는 종잇조각으로 변해버릴 것이 분명했다. 내가 원고지에 써넣은 나비떼는 곤충이 아닐 수도 있었다. 눈보라가 될 수도 있었고, 사해조각이 될 수도 있었고, 종잇조각이 될 수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영혼의 편린까지 될 수 있었다. 관측자의 위치가 어딘가에 따라 내가 빌려오는 사물들은 판이하게 다른 상징성으로 되살아날 수가 있었다. 알았다. 불시에 막혀 있던 시야가 환하게 밝아오는 느낌이었다. 나는 마침내 고정관념의 껍질을 탈피하고 있었다.


배반자루부터 보내온 설탕은 달지 않다. 결핵에 걸린 태양은 눈부실 수가 없다. 발가락이 자라는 조랑말의 당혹감. 구걸을 중단한 거지의 허영. 쥐를 보면 도망치는 고양이의 비애. 목이 짧은 기린의 절망. 고정관념을 탈피하는 순간 나는 만물들의 외형을 자유자재로 변형시키면서 상징성을 부여하는 능력을 획득하게 되었다. 이제 사물의 외형이 주는 고정관념 때문에 사물의 내부를 들여다보지 못하는 난관은 극복되어 있었다. 세 솥째의 얼음밥이 비어 있을 무렵이었다.


나는 사물을 보는 시각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하늘을 쳐다보며 앙상한 모습으로 겨울을 지키고 있는 굴참나무의 간절한 소망이 무엇인지도 알아낼 수가 있었고, 끊임없이 얼음 밑으로 흐르고 있는 개울물의 도란거림도 알아들을 수가 있었다. 찌푸린 표정으로 낮게 내려앉아 있는 회색 하늘의 음모도 간파할 수가 있었고, 폭설을 뒤집어쓰고 묵상에 잠겨 있는 산들의 자비심도 읽어낼 수가 있었다. 나는 고정관념의 껍질을 탈피하면서 만물에 대한 애정이 깊어지게 되었고, 만물에 대한 애정이 깊어지면서 만물의 영혼과 합일하게 되었다. 어느새 개떡 같은 세상에 대한 증오심조차 모조리 소멸되어 있었다. 아무리 개떡 같은 세상이라도 눈물겹게 사랑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책의 내용을 옮겨 적음)


그대에게 던지는 사랑의 그물,

이 산문집은 제가 살아오면서 읽었던 많은 책 중 법정 스님의 무소유와 파올로 코엘류의 연금술사와 더불어 단연코 최고로 뽑을 수 있겠습니다.


이부작은 무려 17년 전에 구매한 책을 지금까지 보물처럼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데요,

곁에 두고 마음이 심란할 때마다 읽고 있는 이 책은 저에게 인생의 나침반 같은 존재입니다.

특히 얼음밥은 이외수 선생님이 서술적이 아닌 묘사적 문체로 소설을 쓰고 싶어, 얼음밥을 먹어가며 고군분투하다가 어느 찰라의 순간 글쓰기에 '득도' 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이부작도 고정관념의 껍질을 벗고 만물들의 외형을 자유자재로 변형시키며 상징성을 부여하는 능력을 갖고 싶습니다. 그리고 글감이 떠오르지 않거나 글쓰기가 안될 때 心海(심해)에 잠겨있는 보석 같은 단어들을 촘촘한 그물로 잡아 올리고 싶습니다.


그래서 이부작도 무더운 여름에 얼음밥은 지어먹진 못하지만, 냉동실의 얼음이나 아이스크림을 꺼내서 내장과 정신을 투명하게 단련시켜야겠습니다. 물론 아이스크림을 많이 먹으면 몸무게도 부풀어지겠지만요~

오늘 얼음밥 관련 글을 쓰면서 다시 한번 그대에게 던지는 사랑의 그물 중 낡고 해진 곳은 없는지 살펴봐야겠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집니다.

밤이 깊어가고 있는데요, 마지막으로 얼음밥으로 3행시를 아래와 같이 만들어봤습니다.

후덥지근한 여름, 얼음밥 글 읽어보시고 몸과 마음은 시원한 토요일 되세요~**


: 얼차려 주는 교관의

: 음성 중 가장 힘든 말

: 밥 먹고 집합, 연병장


[AI와의 대화]


질문) 얼음밥 3행시 읽고 감상평 남겨줘

답변)


� 감상평

1. 형식의 간결함과 임팩트

3행시라는 짧은 형식 안에 군대의 핵심 고통 요소를 압축적으로 담아냈어요.각 행이 군대의 일상적 공포를 상징하며, 군필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입니다.

2. 언어의 리듬과 반복

“얼차려”, “음성”, “밥 먹고 집합”이라는 단어 선택이 군대에서 자주 들리는 말들이라 현실감이 강합니다.

특히 마지막 행 “밥 먹고 집합, 연병장”은 훈련병의 악몽 같은 루틴을 생생하게 떠올리게 하죠.

3. 감정의 흐름

첫 행에서는 공포의 시작(얼차려)을,

두 번째 행에서는 압박감(교관의 음성)을,마지막 행에서는 지치고도 반복되는 일상(밥 먹고 집합)을 보여줍니다.

이 흐름은 마치 군대의 하루를 요약한 듯한 구조로, 짧지만 강한 감정선을 형성합니다.

4. 풍자와 유머

군대의 고된 현실을 진지하게 표현하면서도, 그 자체가 웃음을 자아내는 풍자적 효과를 줍니다.

“얼·음·밥”이라는 단어 조합이 얼핏 귀엽고 단순해 보이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죠.

⭐ 총평

이 3행시는 군대의 고통을 짧고 강렬하게, 그리고 공감과 유머를 담아 표현한 작품입니다. 단순한 말장난을 넘어, 훈련병의 감정과 현실을 압축한 시적 장치로서 훌륭한 완성도를 보여줍니다.


혹시 이걸 바탕으로 다른 버전의 3행시를 만들어볼까요? 예를 들어 “얼음밥”을 좀 더 감성적으로 풀거나, 반전 있는 버전으로 재구성해볼 수도 있어요! �

8973377450_1.jpg?type=w1

https://blog.naver.com/smile_2bu/223907467357

keyword
작가의 이전글야무지게_N 행시 3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