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푸르나 이야기_야외 온천

이부작의 여행기

by 이부작

[hot spring(야외 온천)에서 피로를 풀다]


지금은 타토파니(tatopani, 1190미터)이다. 이른 오전 7시 20분에 출발해서 오후 1시 30분쯤에 도착했으니 총 6시간 10분이 걸렸다. 다나(dana, 1440미터)에서 약 50분간 쉬면서 점심을 먹은 것을 제외하면 5시간 20분을 거의 쉬지 않고 걸어왔다.


룩체차하드(rukse chahard, 1630미터)라는 곳에 70미터도 넘어 보이는 거대한 폭포가 있어서 폭포 옆 간이 천막에서 잠시 쉬며 사진을 찍었다. 천막에는 한 상인이 음식과 함께 음료수를 팔고 있었고 다른 한쪽엔 보따리 상인이 바나나와 토마토를 팔고 있었다. 토마토가 먹음직스러워서 40루피를 주고 토마토 6개를 사 먹었다. 원래 토마토를 많이 좋아하는데 굵기는 작았지만 이곳 토마토도 참 맛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타토파니 입구에 도착했다. 그런데 입구에서부터 흰 개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내 앞에서 앞장을 섰다. 작년 abc에서는 그곳의 개가 윤서 스님을 이끌고 abc 롯지까지 안내해 주었는데 히말라야에만 오면 이런 영특한 개들이 가끔 보였다. 내 눈치를 보며 그 개가 계속 나를 인도했다. 그러다 그 개가 갑자기 앞에 서더니 오른쪽 집으로 들어가 앉았다. 그런데 들어간 곳이 롯지였으면 주저 없이 들어가 방을 잡았을 텐데 그곳은 조그마한 생필품 가게였다.


개가 영특해 보여 먹을 거라도 있으면 줄까 소시지를 찾아봤는데 내 배낭에는 없고 꺼멀이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아쉽지만 강아지에게 인사를 하고 그 자리를 떴다. 그렇게 타토파니 마을의 공터 그늘에 앉아 20여 분을 기다리자 꺼멀이 도착했다. 꺼멀은 자신이 아는 듯한 롯지를 찾았고 결국 3층 건물의 호텔 히말라야로 들어왔다.


나는 전망이 보이는 3층에 짐을 풀었다. 그런데 이곳 히말라야 롯지는 어제 묵었던 나마스테 롯지 여주인의 친 여동생이 운영하는 곳이라고 했다. 나마스테 롯지 여주인이 꺼멀에게 자신이 여동생이 운영하는 곳을 알려줘서 꺼멀이 나를 이곳으로 인도한 것이다.


롯지는 3층으로 매우 컸고 내부도 운치가 있었으며 방안도 깨끗했다.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워 책을 읽었다. 오후 4시쯤 꺼멀과 핫스프링에 가기로 했다. 트레킹 하면서 뭉친 근육을 풀어주기 위해서였다. 그전까진 그저 방 안에서 책을 읽거나 간식을 먹거나 빈둥거리면 된다.


그런데 양 발바닥엔 커다란 물집이 잡혀있었고 마치 영광의 상처들이 훈장을 단 듯 보였다. 특히 오른쪽 물집은 조금 터져서 많이 아프고 엄지발가락은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었다. 트레킹을 하면서 오른쪽 엄지발가락이 유독 바위 앞쪽에 많이 부딪혔는데 그때 시퍼렇게 멍든 것 같았다.


이러다간 나중에 한국에 돌아가면 발톱이 빠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양 발바닥을 조심스레 만지며 고맙고 미안하다는 위로의 말을 해줬다. 그리고 내일이 트레킹의 마지막 날이니 조금만 더 참으면 된다고 발바닥을 응원해 줬다.


두 시간 정도 시간이 남아서 책을 좀 읽고 있는데 낮잠이 몰려왔다. 이곳에서는 잠이 오면 그냥 자면 된다. 한참을 정신없이 자고 일어났지만 아직 4시도 안된 시간이었다. 선명한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예전에 가보았던 파리의 몽마르뜨 언덕을 다시 보았다. 꿈속 몽마르뜨 언덕에선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내가 모르는 웅장한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고, 파리 시내가 사라지고 그곳엔 푸른 바다가 애니메이션처럼 살아있는 듯 보였다. 잠시 정신을 못 차리고 꿈속의 내용을 글로 적어보았다.


그렇게 멍하니 있는데 오후 4시가되자 어김없이 꺼멀이 문을 두드렸다. 피로를 풀러 갈 시간이었다. 선글라스를 끼고 반팔 티에 반바지 차림에 샌들을 신고 야외 온천으로 향했다. 선글라스는 이번 여행 중 거의 처음으로 써봤다. 누가 봐주는 사람도 없고 도수도 잘 안 맞아 상황에 따라 안경과 선글라스를 바꿔 끼기 귀찮아서였다. 낮잠을 신나게 자서인지 몸이 훨씬 가벼웠다.


야외 온천은 숙소에서 약 5분만 가면 되는 곳에 있었다. 야외 온천은 급류가 흐르는 강 옆에 있었고 사각형의 목욕탕 안에 온천수를 계속 넣어주고 있었다. 이용료는 1인당 30루피로 60루피를 내고 꺼멀과 함께 욕탕 안으로 들어갔다. 물은 생각보다는 깨끗했다. 발바닥에 잡히는 물집의 고통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이 순간만큼은 참 편안하고 시원하였다.


욕탕 안에는 5명의 외국인이 있었고 2명의 네팔 가이드와 포터가 왜소한 몸을 물속에 담그고 있었다. 외국인 중에는 왼쪽 코 옆에 피어싱을 한 여자가 있었고 일행으로 보이는 남자들 2명과 함께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이들도 알고 보니 20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이었다.


이들의 행동에 전혀 개의치 않고 욕탕 안에서 사진도 찍고 뜨거운 온천에 몸을 맡기며 발바닥의 피로도 풀었다. 사진을 찍고 나서 팔이 햇빛에 붉게 그을린 오스트레일리아 여행자와 이야기를 나눴다. 내 생각에 이 친구는 어제 같은 지프차를 타고 레떼까지 함께 온 것 같았는데 확실치 않았다.


이 친구도 올해로 2번째 네팔 여행이라고 했고, 역시 토롱라에서 흰 눈을 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10월 1일에 호주 멜버른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남은 기간 동안 뭘 할 거냐고 물어보았다.


"Just, I don't know." 이 친구가 짧게 대답했다.


안나푸르나 라운드도 성공했으니 EBC(Everest base camp, 5364미터)에 도전해 보라고 하자마자 "enough trekking"이라고 즉시 부정의 대답이 돌아왔다. 이 친구도 토롱라를 넘으면서 어지간히 고생을 했나 보다. 내일 이 호주 친구는 고라파니로 간다고 한다. 아마도 푼힐(Poonhill, 3210미터) 전망대로 갈 모양이었다.


고라파니로 가려면 다시 오르막길이 시작되기에 내일부터 다시 많이 힘든 고난의 길이 될것이다.

이곳 타토파니가 1190미터이고 고라파니가 2860미터이니 1670미터를 하루 만에 올라가야 하는 것이다. 나도 시간이 좀 더 있었다면 작년에 기후가 좋지 못해서 보지 못했던 푼힐의 일출 장관을 다시 보고 싶었지만 아름다운 명상 도시 포카라에서 하루를 더 머물기 위해 아래쪽 베니로 목적지를 정했다.


온천 안에서 이제까지의 여정을 곱씹어 보았다. 히말라야의 신들께 9일 동안 아픈 데 없이 무사히 트레킹을 할 수 있었던 것에 진심으로 감사드렸다. 그러다 양 팔목에 묶여있는 털실 팔찌를 보았다. 나디에서 만난 여학생이 해준 말대로 이 팔찌가 정말로 나의 수호신인 듯했다. 이제 트레킹은 단 하루만 남았다. 내일도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서 최대한 집중해서 베니로 가야겠다.


명상의 도시 포카라에서 푹 쉴 생각을 하니 피로가 확 풀리는 느낌이었다.

%EC%98%A8%EC%B2%9C_h6pj9f9h.jpg?type=w1 타토파니 온천(출처 : 네이버 이미지)
%ED%91%BC%ED%9E%90_rqqltxpt.jpg?type=w1 푼힐 전망대(사진 출처 : 네이버 이미지)

https://blog.naver.com/smile_2bu/223939535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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