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부작의 여행기
내일 새벽에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형의 아버지께서 돌아가시자 라메쉬 형이 집안의 가장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큰누나의 아이들에게 용돈도 주고 아래 남동생도 자신이 다 뒷바라지를 했고 이제까지 조카와 동생을 뒷바라지한 돈을 다 합하면 아마도 수천만 원 이상은 들었을 거라고 했다.
형은 심지어 한국에 노동자로 와서 온갖 수모와 괄시를 당하면서 매일 야근에 특근까지 하며 번 돈 중 상당액을 매월 네팔에 보냈다고 한다. 그런데 라메쉬 형과 친한 한 스님 분이 이러한 모습을 보고 형을 나무라며 "네가 고생해서 번 돈은 네가 하고 싶은 일에 써야지 않겠냐" 조언을 해주었지만 자신보다는 네팔에 있는 가족들을 계속 먼저 챙겼다고 한다.
그래도 형은 한국에서 해볼 것은 마음껏 다 해봤다며 즐거운 이야기도 늘어놓았다.
형은 지리산, 설악산, 한라산, *울릉도 그리고 전라남도, 경상남도를 시간만 나면 돌아다녔고,
서울 구석구석 지리를 모르는 게 없다고 했고 또 나보다 더 서울 지하철 노선을 잘 알고 있었다.
(*울릉도 할배 이야기를 아래에 링크로 공유드립니다. 공감 1개, 댓글 0개로 심폐 소생 필요해요~)
그리고 한국에 있는 동안 독학으로 한글을 공부하여 지금은 한글을 읽고 쓰고 말하는데 불편함이 없었다. 그리고 지금 카트만두 집에 한글 소설책들이 많아 틈만 나면 소설책을 즐겨 읽는다고 했다. 형은 말 그대로 완전히 한국 마니아였다. 형이 결혼해서 집을 지으면 집의 형태와 생활방식을 모두 한국식으로 바꿀 거라고 했다.
병에 남아 있는 술도 다 마시고 이야기는 어느덧 막바지로 접어들었다.
그런데 지금 형이 가장 고민하는 게 바로 가족들과의 갈등이었다. 네팔 사람들은 대부분 힌두교를 믿어 형의 가족들도 모두 힌두교인데 형만은 특이하게도 불교를 믿었다. 종교의 차이는 가치관의 차이를 가져온다.
이러한 이유뿐만 아니라 가족들과 갈등이 생기게 된 다른 이유도 알려주었다.
형이 한국에서 몇 년간 일을 끝내고 네팔에 돌아왔는데 어머니와 누나가 라메쉬 형의 건강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직 얼마만큼의 돈을 벌어왔는지에 만 꼬치꼬치 캐물었다고 한다. 특히 친 누나는 욕심이 많아서 항상 돈만 챙겼는데, 이때 이후로 형은 식구들에게 실망을 했고 이후 가족들과의 사이가 더 안 좋아졌다고 한다.
그리고 또 하나의 큰 이슈가 아버지께서 물려주신 땅을 어머니와 남동생이 지금 팔아야 제값을 받을 수 있다며 땅을 계속 팔자고 조르자 형은 절대 안 되다고 했고 이로 인해 가족 간에 큰 갈등이 있었다며 불편한 심기를 보였다. 형의 생각은 정말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생겼을 때 땅을 팔 수도 있겠지만 지금 자신들이 젊기 때문에 조금만 더 노력하면 어떤 어려움도 헤쳐나갈 수 있을 텐데 왜 굳이 땅을 팔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아버지가 물려주신 땅에 대해 애착을 갖는 라메쉬 형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형, 땅 팔지 마세요, 네팔도 한국처럼 땅이 넓지 않으니 계속 가지고 있으면 나중에 훨씬 더 제값을 받을 수 있을 거에요.."
형의 고민들이 내 마음속을 아리게 했다. 형의 일들이 잘 풀리길 히말라야의 신들께 기도 드렸다.
이야기는 어느새 네팔의 정치 경제로 화제가 바뀌었다.
네팔의 정치인들이 너무 많이 썩었다며 네팔의 미래가 어둡다고 했다. 또한 네팔의 풍부한 천연자원을 개발하지 못하는 정치인들을 또 ‘돌대가리들’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네팔의 정치인들이 한국의 성공을 절대적으로 배워야 한다며 강조를 했다.
나도 네팔 정부에서 제일 먼저 외국인들에게 네팔의 첫인상을 갖게 만드는 트리뷰반 국제공항을 깨끗이 리모델링 해야 한다고 했다. 형도 내 말에 충분히 공감을 하였다. 우리는 밤늦도록 네팔의 고위 정치가라도 된 것처럼 어떻게 하면 네팔의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정치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 고민하고 토론하였다. 새벽까지 서로의 인생 이야기와 온갖 생각들을 풀어놓으니 마음속의 암 덩어리가 떨어져 나가고 그 자리가 말랑말랑한 형제애로 채워짐을 느껴졌다.
라메쉬 형과의 여행기를 쓰면서 최근 읽고 있는 류시화 시인의 책 『내가 생각한 인생이 아니야』 속 문구가 생각났다. 소제목 '나의 지음을 찾아서'에 있는 내용인데, 류시화 시인이 오랜 지인으로부터 은목걸이를 선물받았다. 그런데 네모난 펜던트에 새겨진 라틴어 문구가 마음에 들어 한동안 하고 다녔다고 한다.
플라톤의 저서 『알키비아데스Ⅰ』에서 소크라테스가 한 말이 적혀있었다.
'영혼이 자신을 알고 싶으면 다른 영혼을 마주해야 한다.'
나의 영혼을 알아준 라메쉬 형이 보고 싶다.
꺼멀의 맑고 순수한 영혼도 오늘따라 더 그립다.
https://blog.naver.com/smile_2bu/2240383295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