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

이부작의 책 추천

by 이부작

이꽃님 작가님의 팬이 되었습니다.

'여름을 한입 베어 물었더니'를 읽고 와~~~하며 감동을 받고 곧바로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 책을 빌려왔습니다. 이 책을 지난 베트남 가족여행 2일차 새벽에 모두 읽고 혼자서 눈물을 찔끔 흘렸습니다. 책을 덮고 마음엔 먹먹함과 함께 어떻게 작가님께서 이런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 부럽고 존경스러울 따름이었습니다. 여기에 필사하듯 마지막 단락에 있는 편지를 한 글자씩 마음 담아 적어봅니다. 글 이웃님들께서 혹시 이 책을 읽어보시지 않으셨다면, 꼭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추천*1000000입니다^^


▶ 월요일 : 행운의 '월'척을 낚는 행복한 '월'요일 되세요~


보내지 못한 편지

은유에게


안녕, 은유야. 잘 지내고 있는 거지?

언젠가부터 네 편지가 오지 않아, 하염없이 기다리기만 했어.

기다리고 기다리다 보니 벌서 이렇게 시간이 흘러 버렸네. 요즘은

네가 보냈던 편지들을 다시 꺼내 읽고 있어. 언젠가 갑작스럽게

편지가 왔듯이 어느 날 갑자기 편지가 끊어져 버릴 수도 있다는 걸

왜 몰랐을까. 이럴 줄 알았으면 더 자주, 더 많이 편지 쓰는 거였는데.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어디 아픈 데는 없고? 여전히 잘 지내고

있는 거지? 괜찮은 거지?

질문이 너무 많았나. 그래도 네가 이해해 줘. 궁금한 게 수천 개는

더 되는데 간신히 참고 이 정도만 물은 거니까.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데, 아마 이번 편지가 마지막일 것 같아.

나한테 사정이 조금 생겼거든.

마지막으로 왔던 네 편지가 생각나. 너는 셀럼 반 걱정 반으로

네 아빠의 편지를 읽을 준비를 하고 있었지.

걱정이다. 현철이가 그리 글솜씨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서,

너한테 어떻게 설명했을지 잘 모르겠어. 뭐라고 쓰여 있었든 한 가지

확실한 건 넌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아이라는 거야.


처음 너한테서 편지가 왔던 날이 떠올라. 참 이상한 일이지.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우리에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 믿을 수가

없어. 그렇게 믿을 수 없는 일이 계속해서 이어졌는데 어째서

한 번도 눈치채지 못한 걸까.

어쩌면 우린 너무 많은 기적을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사는지도

모르겠어.

엄마가 딸을 만나고, 가족이 함께 밥을 먹고, 울고 웃는 평범한 일상이

분명 누군가한테는 기적 같은 일일 거야. 그저 우리가 눈치채지

못하고 있을 뿐이지.

나 역시 마찬가지야. 현철이에 대한 내 마음을 알아채던 순간에도,

나에게 너라는 생명이 찾아왔던 순간에도 나는 행복에 취한 채

내게 어떤 기적이 찾아왔는지 알지 못했으니까.


은유야. 내가 조금 아프대.

이렇게 되고 나니까 후회되는 일이 많아. 왜 널 알아보지 못했을까.

조금만 더 빨리 알아챘으면 좋았을 텐데.

처음엔 왜 나한테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건지 답답하더라.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이러는 걸까. 내가 마음을 믿게 먹어서

였을까. 네 말을 듣지 않고 술을 많이 먹어서였을까. 세상에 나쁜

사람들 전부 잘 먹고 잘 사는 것 같은데 왜 나한테만, 왜 하필 나한테만

이런 일이 벌어질까······.

누굴 원망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나는 원망과 후회로 가득 찬

날들을 보내야 했어, 한참을 그렇게 보내고 나니, 네 생각이

나더라.

우리 은유.

먼 미래에서 날 기다리고 있을 내 딸.

네 생각을 하니 내 슬픔이 너에게 갈까 봐 슬퍼할 수 없었어.

네가 몸을 움직일 때마다 내 배 속에 너라는 생명이 있다는 걸

하루에도 몇 번씩 느낄 수 있었으니까.

그러고 나니까 그제야 알겠더라. 뒤엉켜 있던 퍼즐들이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는 걸.

그 먼 시간을 건너 네 편지가 나한테 도착한 이유를.

너와 내가 사는 세계의 시간들이, 그 모든 순간들이 모여,

있는 힘껏 너와 나를 이어 주고 있었다는 걸.

참 신기하게도. 참 고맙게도.


만약에. 정말 만약에 혹시라도 내가 너를 보지 못하고 간다고 해도

너는 조금도 슬퍼하거나 아파할 필요 없어.

우리는 벌써 한 번의 기적을 만났고 그 기적이 우리를 평생

둘러싸고 있을 테니까.

나는 내 선택에 조금의 후회도 없어. 네가 미래에 얼마나 근사하게 자랄지,

얼마나 좋은 사람들 곁에서 멋진 꿈을 꾸고 있을지

다 알고 있으니까. 그걸 보지 못해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네가

보내 준 이 편지들로 충분히 견딜 수 있을 것 같아.


은유야. 아빠 너무 미워하지 말아 줘. 아빠도 너무 아프고

힘들어서 그랬을 거야. 생각보다 마음이 여린 사람이잖아. 아빠만큼

널 사랑하는 사람도 없어. 네가 처음 우리 곁으로 오던 날,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좋아하던 사람이니까. 혼자 힘들어하지

말고 아빠한테 기대 줬으면 좋겠다. 아빠는 무슨 일이 있어도

널 지켜 줄 거야.

혹시 이 편지 받게 되면, 아빠한테 내가 미안해하고 있다고

전해 줄래? 혼자 두고 가서 너무 미안하다고. 곁에서 늘 소주 한잔

기울이는 친구가 되어 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내 딸이자, 친구이자, 미래의 꿈이었던 은유야.

나는 내 마지막 순간에도 조금만 더 살게 해 달라는 기도 대신,

이렇게 너를 알게 해 준 신의 배려에 감사하다고 기도할 거야.

이렇게 배 속에라도 널 품고 있게 해 줘서 감사하다고. 당신의

배려 덕분에 내 딸을 만날 수 있었다고. 내 딸이 예쁜 꿈을 키우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걸 알게 해 줘서 감사하다고.

비록 엄마와 딸로 만나진 못했지만 대신 우리는 그보다 더 많은

관계로 만날 수 있었으니까 이걸로 충분히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고.

그렇게 기도하고 조금 시간이 남으면, 나한테 약간의 시간이

허락된다면······그땐 네 얼굴 한 번만 볼 수 있는 시간을 달라고 할게.

딱 한 번만 볼 수 있으면 그걸로 만족하겠다고.

그리고 나는

나는 네 곁으로 갈게.

네가 뭔가를 잘 해내면 바람이 돼서 네 머리를 쓰다듬고,

네가 속상한 날에는 눈물이 돼서 얼굴을 어루만져 줄게.

네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날에도, 시험을 잘 친 날에도, 친구랑

다툰 날에도, 슬프거나 기쁘거나 늘 네 곁에 있어 줄게.

엄마는 늘 네 곁에 있을 거야. 아주 예전부터 그랬던 것처럼.

이 편지가 그랬던 것처럼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


2002년 11월 16일

아주 따뜻한 곳에서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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