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의 시작, 라메쉬 형과 비구니 스님들을 만나다.
히말라야를 다녀오고 내 청춘의 암흑기도 서서히 끝나갔습니다.
안나푸르나의 품에 안겨
가장 아름답게 빛났던 『과거의 나』가 『현재의 나』에게 이 글을 전합니다.
밤이 깊어가는 이시간,
내 안의 신이 당신 안의 신께 인사드립니다. "나마스떼"
[인연의 시작, 라메쉬 형과 비구니 스님들을 만나다]
드디어 ABC(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 트레킹이 시작되었다.
등에 35리터 묵직한 배낭을 메고 목에는 캐논 카메라를 걸고, 뜨거운 히말라야의 태양을 피하기 위해 모자를 눌러썼다. 옆에는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포터 꺼멀이 자신의 몸무게만큼이나 무거운 배낭을 네팔 전통 운송방식인 도꾸의 형태로 이마에 걸치고 전혀 무겁지 않은 듯 걸었다.
비레탄티를 시작으로 우렐리(ulleri, 1960미터)에서 1박을 하고, 3280개의 돌계단이 있는 반탄티(ban thanti, 2210미터)의 급속한 경사 지대를 지나,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전망대 중의 한 곳인 푼힐 전망대(poon hill, 3210미터) 밑 고라파니(ghorepani, 2860미터)에서 또 1박을 하였다.
그날 저녁 꺼멀과 함께 티벳 전통술 ‘창’을 나눠 마시며 서로의 가족관계와 나이 등 일상사를 이야기 하였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에 일출을 보기 위해 푼힐을 올라갔지만 날씨 때문에 아쉽게도 멋진 풍경을 보지 못하고 다시 내리막길과 계곡을 지나 타다파니(tadapani, 2630미터)에서 1박을 하였다.
네팔의 우기가 끝난 지 얼마 안되고 여행시즌이 아니어서 트레커들이 많이 없었고, 더구나 한국사람은 아예 찾아 볼 수 없었다. 첫날 우렐리에서 1박을 할 때도 그곳을 통틀어 숙박 객이 나 혼자 밖에 없었다.
트레킹의 출발시간은 보통 오전 7시 전이었고 끝나는 시간은 대략 2시 이전이었다. 히말라야는 고도가 높기 때문에 절대 무리해서 트레킹을 하면 안되고 최대한 천천히 여유 있게 걸어야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트레커들은 보통 오후 2시 정도에 도착하는 하루의 목적지를 정했고 도착해서 그 이후는 온전한 자유시간을 가지며 휴식을 취했다.
나 같은 경우 대게 목욕을 하고 밀린 빨래도 좀 하고 침대에 누워 책을 읽다가 졸리면 그냥 자곤 했다. 한 참을 자고 일어나도 오후 5시정도 밖에 안되었다. 이 시간대는 햇빛의 강렬함이 덜해져서 밖에 나가기도 좋아 다시 어슬렁거리며 사진기를 들고 마을을 한 바퀴 돌고, 배고프면 다시 돌아와서 한국 돈으로 3000원정도 하는 맛난 식사를 하고, 다시 책을 읽거나 피곤하면 또 자는 게 트레킹 후의 일과였다.
스트레스로 머리와 어깨가 단단히 굳어있는 한국의 직장인에게 이보다 더한 천국이 어디에 있을까? 하루 하루가 단순함과 여유 있음의 반복이었다. 하지만 이 하루는 경직된 직장생활의 그저 그런 하루가 아닌 새로움과 호기심이 연속되는 눈부신 하루였다.
다시 트레킹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타다파니를 출발하여 촘롱(chhomrong, 2170미터)까지 가서 1박을 하였다. 가는 도중에 장대비를 맞긴 했지만 다친 곳도 없고 컨디션도 좋았다.
촘롱은 꽤 큰 마을로 이곳에서는 국제전화도 가능하고 또한 김치찌개를 파는 식당도 있었다.
한국에 전화를 하고 싶었지만 전화비용도 만만치 않고 한국에서 직업상 전화통화를 하도
많이 하다 보니 당분간은 참기로 했다. 이곳 촘롱에서도 트레커들은 많이 보이지 않았다.
내가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꺼멀 뿐이었다. 그것도 간단한 기초영어로 의사소통을 했고 영어표현이 생각이 나지 않으면 영어단어를 적어가며 서로 이해를 했다.
이마저도 안되면 그냥 나는 한국말로 꺼멀은 네팔어로 하고 싶은 말을 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자 서로의 눈빛만 봐도 대충 각자의 마음을 어느 정도 쉽게 파악하게 되었다.
트레킹 5일차가 되어서 히말라야 롯지에 도착하였다. 이제 하루만 지나면 MBC(마차푸차레 베이스 캠프, 3700미터)를 지나 이번 여행의 목적지인 ABC에 도착하게 된다. 목적지에 가까워지자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짐을 풀고 컨디션 조절 겸 주변 경관 사진을 찍기 위해 디카를 들고 산장주위를 어슬렁거렸다.
그런데 앞 롯지에서 너무나 정겨운 한국말 소리가 들렸다. 마치 이산가족을 만나러 가는 냥 반가운 마음에 그 쪽으로 뛰듯이 걸어갔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곳엔 네분의 한국인 비구니스님들과 한국인 여자 대학생 한 명이 있었다.
여자 대학생은 호주로 어학연수를 갔다가 네팔로 여행을 와서 겁 없이 혼자서 트레킹을 하고 있었다.
물론 네팔인 포터가 있었지만 젊은 나이에 이렇게 도전할 수 있다는 게 참으로 대단해 보였다.
"안녕하세요, 스님"
그분들 중 연배가 있어 보이는 스님께 먼저 인사 드리고 다른 분들께도 일일이 인사를 드렸다.
"안녕하세요, 머나먼 히말라야에서 한국 분을 만나게 되네요.. 그런데 혼자 오셨어요?"
그분들도 나를 반갑게 대해 주셨다.
“네, 혼자 트레킹 중입니다. 스님들께서도 트레킹 중이신가 봐요?”
“네, 저희들은 불교 대학에서 만난 동기들인데요, 약 3개월 일정으로 부처님이 태어나신 룸비니 동산(부처님의 8대 성지 중 하나로 석가 탄생지라고 전하는 원림(園林)의 이름. 지금 네팔령(領)인 루만디에 있다.)과 인도의 불교유적지들을 성지순례 겸 여행하고 있습니다.“
스님의 법명은 윤*이셨다. ABC의 수많은 롯지들 중에서 외딴 이곳 히말라야 산장에서 이렇게 네 분의 비구니 스님들을 만나게 되다니, 이게 불가에서 말하는 전생의 인연이 아닐까 생각해봤다.
의자에 잠시 앉아 스님과 이제까지의 여행기와 앞으로의 계획들을 이야기하는 도중에 그런데 배 바지를 입은 덩치 큰 네팔인이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그러면서 "안녕하세요~" 라며 완벽하진 않지만 또박또박 한국말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순간 당황스러웠지만 반가운 마음에 두 손을 모아 "나마스떼" 라며 네팔 인사로 답했다. 나마스떼는 합장하면서 머리를 살짝 숙여 인사하는 인도와 네팔의 인사법이다.(나마스떼 : 내 안의 신이 당신 안의 신에게 인사를 드린다)
그의 이름은 라메쉬이며 나이는 38살이고 180센티가 넘는 키에 늠름한 풍채가 있어 보였다. 얼굴은 우리나라의 하회탈을 빼 닮아서 무척 정이 갔고, 얼굴 중 특히 서글서글한 눈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그를 처음 본 순간 참 좋은 사람이라고 느껴졌다. 그도 나의 인상에 대해서 좋은 느낌을 갖는 듯 했다. 그는 내게로 와서 나의 여행일정을 한국말로 다시 물어보았다.
"휴가기간이 길지 않아서 ABC 트레킹을 끝내고 바로 돌아가야 해요. 히말라야 트레킹을 길게 못하는 게 참으로 아쉬워요"
중간에 계신 윤* 스님도 우리의 대화에 참여하였다.
"ABC도 지금까지는 참 좋았던 것 같아요, 그래도 작년의 트레킹에 비하면 약간은 아쉬운 점이 있어요…"
"아, 스님께서는 작년에도 히말라야에 오셨나 봐요? 작년에는 어디를 가셨는데요?"
"AR(안나푸르나 라운드) 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아니요, 전 이번에 시간이 없어서 ABC만 관심을 갖고 공부를 했습니다."
"AR은 말 그대로 안나푸르나의 주위를 따라 트레킹을 하는 것인데요, 최고높이 5416미터의 토롱라를 지나야 하고, 보통 트레킹 기간이 15일에서 20일 정도 걸리지요"
그때 라메쉬 형이 말했다.
"It's the best trekking course in the world.
정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트레킹 코스중 하나예요. 중간에 사막 같은 곳도 있고요, 5천 미터 높이에 호텔이 있다고 생각해봐요. 여기 ABC도 괜찮지만 나중에 꼭 한 번 AR를 도전해 보세요"
그러면서 지도를 가져오겠다며 갑자기 자리를 떴다.
"아, 5천 미터면 엄청 높은데요, 스님께서는 AR트레킹을 잘 마치셨나 보네요?.."
"작년엔 혼자 왔지만 저기 라메쉬 보살님이 가이드를 잘 해줘서 무사히 끝낼 수 있었어요,
작년에 너무 좋아서 옆의 스님들께 트레킹한 이야기를 해드렸더니 이 분들이 너무나 가보고 싶어 하셔서 함께 오게 됐죠"
잠시 후 라메쉬형이 돌아와 트레킹 지도를 펼쳐서 AR코스를 설명해주었다. 라메쉬형과 스님의 안나푸르나 라운드 트레킹 이야기에 나는 아이처럼 완전히 몰입되어 버렸다. 그리고 이야기가 끝날 때쯤 내년에는 무조건 AR을 해야겠다는 목표가 생겨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