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두렵던 아이

열 살 무렵부터였다.
나는 남들보다 조금 일찍, 그리고 조금 과하게 깨어 있었다.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모델건을 들고 총싸움을 할때.

공을 차며 축구를 할 때.
나는 그 옆 모래바닥에 앉아 딴 생각을 했다.

‘내가 죽으면, 나라는 존재는 어디로 가는 걸까?’

고통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칼에 찔리든, 사고가 나든, 아프고 끝나는 건 그냥 생리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진짜 무서워한 건,
오랫동안 응축돼 온 생각과 기억과 감정이
어느 순간 스위치 꺼지듯 OFF 되는 장면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라는 건 애초에 상상이 안 됐다. 숨이 막혔다.
우주가 있다면, 그 이전엔 뭐가 있었을까?
시간이 시작되기 전의 시간은 또 뭐지?
이런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다.


나는 내 의식의 “지속”을 믿고 싶으면서도,
언젠가 생명이 다하면 그 지속이 끊겨 버린다는 예정된 진실 때문에 매일 밤이 불안했다.
자다가 벌떡 일어나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죽음을 하나씩 떠올리며 혼자 울던 밤도 많았다.


엄마에게 이런 얘기를 꺼내면 돌아오는 대답은 늘 비슷했다.
“앞으로 천년만년 살 애기가 왜 벌써 그 걱정을 해.”
나는 깨달았다.
아, 이건 어른들에게도 아직 없는 답이구나.
그러면 일단 혼자 버텨야 하는 질문이겠구나.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나는 방향을 바꿨다.
답을 찾는 대신, 생각을 끊는 연습을 했다.
머리가 너무 돌아가면, 삶이 버거워진다.
수학 문제 풀듯이 죽음을 계속 따라가다 보니 결국 “나라는 존재는 사라진다”는 결론만 반복해서 마주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의도적으로,
생각의 선을 잘라 버리는 습관을 들였다.
“여기까지 생각했으면 됐다. 그만.”
그렇게 ‘과잉 의식’을 벽에다 부딪혀 멈추는 법을 배웠다.
이건 도피이자 생존이었다.

생각을 멈추자, 처음으로 일상이 조금 가벼워졌다.
친구들과 농담도 하고, 게임도 하고, 운동도 하고, 비로소 현재라는 걸 살기 시작했다.

그러다 내가 만난 게 펑크였다.
펑크는 철학 책이 아니었다.
그러나 내게는 아주 거친 형태의 실천적 형이상학처럼 다가왔다.

세상은 우리에게 시간을 숫자로 나눠 주고 그 숫자에 맞춰 살아가라고 강요한다.

몇 학년엔 뭘 해야 하고,
몇 살엔 뭘 이뤄야 하고,
어느 시점까지는 결혼해야 한다고 말했다.
몇살 시점에는 어느 정도의 자산을 모아야 하고, 자녀가 생기면 자녀에게 배당되는 시간에 또 자신의 삶을 맞춰야 한다.
어린이집, 유치원, 학원, 학교, 대입시험, 취직 등등.

그 모든 규격화된 시간들이
어릴 적부터 내가 두려워하던 “끝”과 묘하게 닿아 있었다.
“언제까지 못하면 실패.”
그 말은 뒤집으면
“그 시점을 넘어서면 너는 더 이상 쓸모 없다.”는 선언처럼 들렸다.


펑크/하드코어는 거기에 대고 이렇게 소리쳤다.


"좆까. 지금부터 씨발 내가 이 90초 안에,
내 삶 전부를 쏟아 붓겠다."

라이브 공연장에서 연주가 시작되면 밴드고 관객이고, 과거의 불안, 분노, 상처가 죄다 몸 안에서 끓어올라서 미쳐버릴 때가 있다.
그 에너지는 소음, 땀, 충돌과 섞여 다음 몇 년을 버티게 해 줄 힘으로 변한다.
한바탕 연소되고 나면 그 순간들은 다시 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 순간이 만들어낸 어떤 것은 다음의 신곡, 다음 라이브, 다음 날의 나에게 남는다.

이것이 베르그송이 말한 “지속”이구나. 나는 내게 알맞은 명분을 찾았다.

대학 시절, 베르그송의 책을 읽었다.
시계로 잴 수 있는 시간과, 살아 있는 시간은 다르다고.

우리가 사는 진짜 시간은 “하나, 둘, 셋” 하고 세는 칸이 아니라.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욕망이 한 덩어리로 뒤섞여 흐르는 어떤 것이라고.

그 문장을 읽은 순간, 어릴 때부터 나를 괴롭히던 공포가 조금 다른 얼굴을 하고 다시 나타났다.
죽음은 그 흐름의 끝일까?
아니면 우리가 쓰고 있던 하나의 챕터가 닫히는 것뿐일까?


대답은 여전히 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알게 됐다.
적어도 살아 있는 동안의 시간은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조금씩 다른 나를 만들어내는 창조적 진화라는 것.
내가 처음 마이크를 잡았던 순간.
처음 가사를 썼던 순간.
처음 누군가에게 내 노래를 들려줬던 순간들은
모두 별개의 사건 같지만.
실은 같은 한 줄기 흐름 위에 박힌 별들이다.
그 별들을 이어보면
“죽음이 무서운 아이”에서
“모든걸 태워 버리겠다고 외치는 펑크록커”까지
나름대로 일관된 별자리가 나온다.

나는 원래 세상이 좀 단순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모두가 비슷한 속도로 살아가고, 적당히 고민하고, 적당한 때에 웃고 울고, 그래서 누구도 너무 앞서거나 뒤처지지 않는 세계.
하지만 실제 삶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또래보다 조금 더 많이 질문했고,
조금 더 깊게 두려워했고,
조금 더 오래 버티면서 살아남았다.
그 결과로 남은 게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태도가 남았다."

죽음의 공포를 완전히 지워 버리진 못했지만, 그 공포 때문에 지금의 나를 더 진하게 살아야 한다는 의지가 생겼다.
펑크는 그 의지를 소음으로 번역해 주는 언어가 됐고, 철학은 그 소음 뒤에 숨은 논리를 나 혼자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는 도구가 됐다.

이제 나는 가끔씩만 이렇게 상상한다.
언젠가 정말로 내 의식이 꺼지는 순간이 온다면,
그 마지막 1초는 어떤 느낌일까.
공포일까, 해방일까,
혹은 그냥 아무 생각도 나지 않은 채
“아, 피곤하다” 하고 그냥 뒈져버릴까.
모른다.
앞으로도 모를 것이다.

그래도 최소한, 그 1초 직전까지의 생은 내가 쌓아 올린 기억과 욕망, 분노와 음악, 글과 사람들로 꽉 차 있었으면 좋겠다.


베르그송 식으로 말하면, 모든 순간은 과거 전체를 품고, 동시에 미래를 향해 열려 있는 새로운 시작이다.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단순하다.
내 순간들을 가능한 한 시끄럽고, 정직하고, 진심으로 채워 넣는 것.

죽음 이후의 의식은 여전히 미지수지만, 여기 삶의 지속만큼은 내 손으로 끝까지 밀어 붙여 볼 생각이다.

그리고 이런 내 삶이 좋아져서 걱정이 없어진지도 오래다.


나는 그래서 이런 마음으로 다음에 예정된 무대를 또 오를 것이다.
'죽음이 두렵던 아이' 가 아닌, 한 '펑크록커'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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