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큐슈의 카리스마, 코이데라는 남자

惡AI意의 보컬 코이데

한동안 나는 사람을 믿지 않았다.
학생운동과 시민단체 활동을 했던 시절이 있다. 거리에서 소리 지르고, 회의실에서 밤을 새우며 “세상을 어떻게든 조금은 나아지게 만들 수 있다”는 쪽에 몸을 던졌던 시기였다. 하지만 운동판의 더러움, 동지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이해관계와 조직 정치, 고통스러운 개인사들까지 겹치면서 나는 순식간에 패배자가 되어 그 거리를 떠났다. 내 마음속 인류애는 빠르게 인간혐오로 뒤집혔고, 세상을 고치겠다는 결심은 “그냥 나나 어떻게든 버티자”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펑크로, 현장 노동자로, 밴드 뮤지션의 삶으로 돌아왔다.

그 시기에, 내 삶에 한 남자가 들어왔다.
기타큐슈의 카리스마, 코이데라는 남자.

코이데를 처음 만난 건 2015년, 일본 최대 펑크 축제 KAPPUNK였다. 장소는 신오쿠보의 라이브하우스 Earthdom. 그날 라인업은 지금 떠올려도 숨이 막힌다. 스웨덴의 전설적인 하드코어 펑크 밴드 Mob 47, 그리고 기타큐슈에서 올라온 惡AI意. 나는 오랫동안 Mob 47을 사랑해 온 리스너였고, 드디어 라이브를 본다는 생각으로 설레며 Earthdom으로 향했다. 그런데 무대의 주인공은 예상과 달리 惡AI意였다.

보컬 코이데를 처음 봤을 때, 마치 작은 난쟁이 외계인이 서 있는 것 같았다. 키도 작고 마른 몸인데, 무대에 서는 순간 거대한 무언가가 터져 나왔다. 그의 절규하는 듯한 울부짖음, 몸 전체를 찢어내는 듯한 퍼포먼스, 숨 돌릴 틈 없는 보컬 전개. 그런데 진짜는 그 중간에 들어간 멘트였다. 마이크를 잡고 쏟아내는 그의 말은 단순한 곡 소개도 아니고, 농담도 아니었다. 혁명가의 연설 같기도 하고, 전쟁터 지휘관이 최전선에 내보내는 마지막 고함 같기도 했는데, 한편으로는 신들린 샤먼이 트랜스 상태에서 외쳐대는 주문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당시의 나는 일본어를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 그날 그의 멘트 중에서 내가 알아들은 문장은 딱 하나였다.
“FIND THE SPOT 이 한국에서 계속 하고 있다!!”
그 외의 말들은 전부 소리와 리듬, 호흡과 표정의 덩어리였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아마 Mob 47을 따라 온 크루들이었을 것이다. 그 긴 연설을 듣던 서양인 관객들이 하나둘씩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말은 통하지 않아도, 그게 진짜라는 걸 몸이 먼저 알아듣고 있었다. 내 감정도 동시에 요동쳤다.

예전에 배우 지망생 친구에게 들은 말이 있다.
“말에 진실이 있으면, 뇌가 그 말을 해석하기 전에 몸이 먼저 알아듣는다.”
코이데의 멘트가 딱 그랬다. 언어의 바벨탑이 한순간에 무너지고, 심장에서 심장으로 바로 꽂히는 메시지. 펑크 공연을 보면서 느꼈던 수많은 감동의 순간들 중에서도, 그 순간은 지금까지도 내가 꼽는 가장 위대한 장면이다. 지금도 그 장면을 떠올리면 온몸에 전율이 올라온다.

공연이 끝난 뒤, 우리는 대기실에서 처음으로 얼굴을 마주했다. 이미 SNS 상에서는 서로 알고 있던 사이였다. 코이데는 나를 보자마자 다가와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CG 상이라고 부를까요? DISCHORD 상이라고 부를까요?”
(내 SNS 이름이 CG DISCHORD다.)

일본 펑크들은 대체로 장난기가 넘치면서도 왠지 모르게 무섭다고 느껴지는 구석이 있는데, 코이데는 달랐다. 엄청 다정했고, 예의 바르고, 훨씬 어린 나에게도 깍듯했다. 악수에 응하며 그의 손을 잡는 순간, 나무껍질 같은 감촉이 전해졌다. 조경, 정원사 일을 하는 그의 손. 나도 군에서 조경 작업을 했었고 당시에도 현장에서 몸을 쓰며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손이 얼마나 많은 흙과 나무와 돌과 콘크리트를 만져왔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노동에 찌든, 진짜 우리 형제들의 손 말이다.

큐슈 펑크 씬에는 폭주족, 야쿠자와 엮인 과거를 가진 거친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런 동네에서 저 작은 체구의 남자가 모두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으며 씬의 중심에 서 있다. 그건 단순히 인기 많은 프런트맨이라는 뜻이 아니다. 그는 그 지역에서 한 명의 투사고, 샤먼이고, 진짜 펑크록커였다.

그 후로 우리는 편지를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코이데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편지에 담아 보냈다. 가정과 사회는 그를 제대로 보호해주지 못했고, 길거리에서 생활하는 불량배로 자라났다고 했다. 마음속은 악으로 가득 차 있었고, 세상이 미웠다고 했다. 그러다 차차 깨달았다고 한다.

惡AI意. 한자로 쓰면 ‘악의’. 하지만 일본어 발음으로 읽으면 ‘아이(あい)’, 즉 사랑이다. 자기 마음속의 악을 물리칠 수 있는 것은 사랑뿐이라는 의미로 밴드 이름을 지었다고 했다. 가장 거친 소음과 폭력성이 드러나는 하드코어 펑크라는 틀 안에 이런 이름을 걸어놓은 인간.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펑크의 순기능을 믿게 된다. 소음과 분노만 있는 줄 알았던 세계에서, 이런 순수하고 멋진 이야기들이 툭 튀어나오는 순간들. 그럴 때마다 나는 왜 내가 펑크와 하드코어를 좋아하게 되었는지, 어쩌다가 이 문화에 미쳐서 빠져 살고 있는지 다시 깨닫게 된다.

惡AI意의 2000년도 앨범 제목은 〈A hope on the concrete〉다.
콘크리트 위의 하나의 희망.

나는 오래전부터 이 제목을 좋아했다. 도시의 콘크리트, 회색 바닥, 잡초 하나 자라기 힘든 환경 위에 놓인 작은 불빛 하나. 이 말 속에는 우리가 살아가는 악조건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꺼지지 않으려는 마음이 동시에 담겨 있다.

2024년 7월, 뜨거웠던 여름. 나는 마침내 그를 한국으로 초대할 수 있었다. ATTACK SS와 惡AI意의 한국 투어. SCUMRAID의 드러머 이주영 씨와 함께 기획한 투어였다. 두 밴드의 친구들까지 같이 한국에 방문하여, 한·일 양국의 펑크들이 몰려다니며 뜨거움과 왁자지껄한 웃음 속에서 3일이 전쟁처럼 지나갔고, 라이브는 뜨거웠다. 투어 마지막 날, 코이데는 조용히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삶이 너무 힘들어서, 솔직히 생을 마감하고 싶었던 시기가 있었다고. 그때 내가 보낸 한국 투어 제안을 받고 “그날까지는 살아보자”고 버티며 일상을 견뎠다고 했다. 한국에 와서 받은 에너지로 계속 살아갈 거라고, 자신을 살려줘서 고맙다고, 전생이 있었다면 분명 우리는 친형제였을 거라고 했다. 나는 진심으로 그 말을 믿고 싶다.

코이데에게서 오는 편지는 항상 뜨거운 시 같다. 세상에서 가장 투박하고, 동시에 진심과 따뜻함으로 가득 찬 문장들. 그가 언젠가 꼭 책을 냈으면 좋겠다고 나는 진심으로 생각한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그 진심으로 가득 찬 문장들을 세상에 내보여야 할 자격도, 의무도 있다.
그의 편지 중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저는 영웅이 아닙니다. 그런 말을 듣게 되어 정말 영광이고 감사한 일이고 기쁘지만요.

내가 만약 히어로라면,
당신도 저에게는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사실, 이 현실사회에 친숙하지 않은, 마음의 망설임이 많은 겁쟁이입니다. 당신들이야말로, 나를 강하게 칭찬해 주고 있습니다.

나는, 그냥 남자로,
길거리에서 하루하루를 일하고 살아요.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고,
그런 가운데 끝이 없을 것 같은 아주 우스꽝스러운 자문자답을 반복하기도 하면서 울고 웃으며 살고 있습니다.

요즘은 내 주변도
나이를 먹기 시작했는지,
매일의 분노나, 의문,
진심어린 분노나 눈물의 이야기를 입에 담는 사람이 적어졌습니다.
그 자체는 어쩔 수 없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나는, 당신이나 당신과 같은 인간을 만납니다.
자신의 마음의 불꽃을 위한,
작은 불꽃을 절대 끄지 않도록 매일매일 열심히 하는 사람을 만납니다.
그것은 저의 희망입니다.

이것은,
콘크리트 위의 하나의 희망입니다.”

이 구절을 읽는 순간, 나는 알았다.
아, 이것이 내가 앞으로 써야 할 이야기의 이름이구나.

그래서 나는 코이데에게 이야기를 꺼냈다.
〈A hope on the concrete〉를 내 밴드 FTS의 신곡 제목으로 이어받고 싶다고. 한국어로 〈콘크리트 위의 희망〉이라는 곡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는 흔쾌히 좋다고 했다. 惡AI意의 멤버들 모두가 기대하고 있다고. 그렇게 한 남자의 불행했던 어린 시절과 거리에서 자라난 분노, 그 안에서 어렵게 길어 올린 사랑이라는 결심이, 바다를 건너와 내 삶의 언어와 노래 제목이 되었다.

나는 완벽한 인간이 아니다. 의협을 믿던 시절도 있었고, 인간혐오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시기도 있었다. 지금도 그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 그래도 하나만큼은 버리지 않았다. 나와 같은 속도로, 각자의 콘크리트 위에서 버티는 사람들을 향한 애정이다. 마음 속의 작은 불꽃을 끄지 않으려 발버둥치는 사람들. 그들을 위해서라면, 나는 여전히 소음을 만들고, 무대 위에서 땀을 흘리고, 소리치며, 내가 가는 길을 믿고 싶다.

기타큐슈의 카리스마, 코이데라는 남자는 내게 그런 존재다.
작고 마른 몸으로, 노동자의 손으로, 야쿠자와 폭주족이 뒤섞인 동네의 중심에서, 여전히 ‘악의’와 ‘사랑’을 동시에 부르짖는 사내.

어제, 2025년 12월 12일, FTS가 〈콘크리트 위의 희망〉을 무대에서 처음 연주했다. 노래하면서 나는 그를 떠올렸다.
6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작고 마른, 그러나 누구보다 뜨겁게 타오르는 남자가, 같은 리듬에 맞춰 고개를 끄덕이고 있으리라고.

앞으로도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거리에서, 콘크리트 위의 하나의 희망으로 서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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