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 계급
I Was A Teenage Anarchist - Against Me
그 시절 펑크 씬에는 한 무리의 친구들이 있었다. 가난한 아이들, 분노한 아이들, 미래가 없는 아이들. 그들은 자신들을 혼돈 계급이라 불렀다. 당시의 나는 그 친구들만큼 가난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을 동경했고, 딱 그만큼의 부채감이 있었다. 항상 화가 나있었고 갈증이 났다. 사회의 밝은 곳에는 내가 원하는 삶이 없었고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규칙들이 싫었다.
누구나 어린 시절 동경하는 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 무리의 일원이 되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같은 길을 함께 걸어가고 싶다는 욕구가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어떤 정치조직일 수도 있고, 어떤 회사나 직업의 종류일 수도 있다. 정말 비극적 이게도 어떤 이들에게는 그것이 폭력조직이나 소위 말하는 일진 같은 무리에 대한 동경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내가 펑크 씬에 있었다는 것이고, 자연스럽게 혼돈 계급의 일원이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함께 노래하고 함께 읽고 철학을 논했다. 펑크록, 영화, 사상, 예술. 부족했을지언정 서로의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는 마치 이를 갈듯이 서로의 갈증을 달래가던 십 대 후반, 이십 초반의 젊음들이었다. 홍대 놀이터에서 만난 우리는 종종 신수동의 낡은 옥탑방에서 모였다.
주말 밤이면 펑크가 아닌, 처음 보는 예술가들과 뮤지션들, 활동가들과 한량들이 모여 몸 하나 누일 곳 없는 공간에서 쭈그려 앉아 밤새 마시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달을 가리는 구름처럼 뿌옇게 형광등을 가렸던 가득 찬 담배연기들. 돌이켜보면 때로는 지옥 같이 느껴지던 그 좁아터진 공간에서 보낸 시간들이야말로 가장 순수하게 펑크 음악을 들었던 시절이지 않았나 생각한다. 스무 살의 펑크록, 친구들, 검은 무리들. 그때 우리는 작은 부족이었고 세상의 중심에 우리가 서있다는 믿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인생은 생각보다 길다. 결국 수년 간 우리는 패배했고, 패배했고, 또 패배했다. 우리는 어렸고 서툴렀다. 서로 반목하고 상처 입히기도 했다. 15년이 훌쩍 지난 그 시절을 돌이켜보니 지금의 내 모습 또한 부끄러움 투성이다. 그 시절 내 삶에 필요 없는 것들이라고 가위질해서 오려낸 것들을, 먹고살기 위해 추례하게 하나 둘 다시 주워서 덕지덕지 기워 붙인 채 살아가고 있다.
넥타이 대신 부츠 끈을 묶는 삶, 부를 가지지 않은 삶의 버거움, 서른이 훌쩍 넘어가고 나니 삶의 자부심이었던 것들이 비로소 무게감으로 느껴지기 시작한다. 이러한 것들을 애써 외면하면서 가슴속에 가득가득한 기억들을 떠올리면서 나와 여러 친구들은 여전히 소중한 펑크록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때의 친구들 중 몇몇은 펑크를 떠났고 몇몇은 한국을 떠났다. 지금 어떤 모습이든 간에 세계 각지에서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혼돈 계급 친구들이여. 건투를 빈다. 부디 우리의 그 뜨거웠던 날들을 기억하길. 모두가 다시 시끌벅적하게 떠드는 날이 오지 않더라도.
항상 건강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