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여행기
그쳤던 비는 어느새 파란 하늘 사이에서 다시 부슬거리고, 주변의 바다는 평소보다 더 깊고, 녹음은 보다 더 짙푸르다.
천지연 폭포로 가는 길은 즐거웠다. 정말 오랜만에 지도삼아 보던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꺼내보지 않았다. 이따금 보이는 표지판만을 확인하며 길을 걸었다. 언제든 헤맬 수 있고, 때로는 온 길을 되돌아갈 수 있다는 두근거림이 지쳐가는 걸음에 힘을 주었다.
관광을 벗어나 비로소 여행을 시작한 기분이었다.
고개를 들고 걸으니 중간중간 보이는 풍경들에 주의를 기울이고, 벽 사이로 흐르는 빗물에도 감동한다. 비록 빗물에 촉촉이 젖어드는 온몸이었지만 그마저도 기분 좋은 일이었다.
매표소를 지나 나무들 가득한 폭포로 가는 길은 아름다웠다. 이제는 끝내 완전히 잿빛으로 물든 하늘을 짙은 색의 나무들이 뒤덮어 기분은 더없이 청량했다.
그리고 이윽고 도착한 폭포.
좋지 않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폭포 앞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진을 찍고 있었다. 서로가 좋은 자리에서 사진을 찍으려 줄을 서 있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그다지 큰 감동은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심심하면 찾아가 마음을 달래던 '나이아가라 폭포'의 웅장함과 나도 모르게 비교를 하게 된 탓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점차로 몰려드는 사람들에 치여 빨리 자리를 비켜줘야만 할 것 같은 조급함이야말로 천지연의 아름다움을 온전히 느끼지 못하게 한 장본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은 택시로 대신했다. 왜냐하면 우리의 일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방을 벗어두고 바로 숙소에서 나와 찾아간 곳은 전날도 찾았던 '올레시장'. 겨울 제주도에서는 꼭 한 번은 먹어야 한다는 고등어 회를 떴다. 시장의 하고많은 횟집 가운데 가장 사람이 많아 보이는 곳으로 갔는데, 재미있게도 번호표로 주걱을 사용하는 곳이었다.
고등어회를 포장해 숙소로 돌아와 먹었다. 딱새우 회도 함께였다. 하루 종일 열심히 걸었던 탓일까, 정말 몹시 맛이 있었다. 나에게는 딱새우 회는 조금 비린 느낌이 강했지만, 고등어회는 입에 잘 맞았다. 그 기름진 고소함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았다. 정말 진심으로 좋았지만, 이제 입이 너무 비려 더 이상 생선은 못 먹겠다. 내일은 생선이 아닌 다른 음식들로 식사시간을 채워야겠다.
많이 먹었고, 많이 걸었으며, 많이 얘기했다.
그렇게 평온한 여행의 하루가 또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