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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집안일 하는 남자 Feb 01. 2022

제주도 넷째 날(상)

제주도 여행기

오늘 하루는 좋은 날씨와 함께 시작했다. 정말 좋은 날씨였다. 구름 한 점 없다고까지는 할 수 없었지만, 작은 구름 조각 몇 개가 드문드문 보일뿐 하늘은 파랬고, 높았다. 


가볍게 숙소에서 아침밥을 먹고 나와 걱정 없이 맑은 햇살을 누려본다. 숙소 근처에 위치한 이중섭 거리로 나가 마치 처음 보는 듯한 마음으로 거리를 구경한다. 내친김에 이중섭 미술관을 찾아가니, 코로나로 인해 예약된 인원만 입장 가능하다 하여 그 자리에 서서 핸드폰으로 온라인 예매를 진행했다. 예약 날짜는 내일로 잡았다. 


다가오는 점심, 오늘은 정말이지 해산물을 먹고 싶지는 않았다. 사실 오늘 아침에 먹은 것도 엊그제 사온 갈치조림에 햇반이었다. 입에서 풍기는 비린내가 지긋지긋했다. 조금 다른 걸 먹고 싶었다. 마침 '서양 국수 공방'이라는 재미난 이름을 갖고 있는 가게가 보여 들어가 보았다. 서양 국수라는 이름에 걸맞게 파스타를 메인으로 파는 가게였다. 맛은 전반적으로 나쁘지 않았다. 로제 파스타를 시켰는데, 한국 사람들 입맛에 맞게 적당히 잘 익은 면이 나왔고, 개인적으로 소스의 매운맛이 마음에 들었다. 물론 매운 음식을 못 먹는 아내는 꽤나 힘들어했다. 같이 주문한 치즈가 올라간 감자튀김도 몹시 맛있었는데, 캐나다에서 즐겨먹던 푸틴이 생각나는 맛이었다. 


점심을 마치고 우리가 찾아간 곳은 그렇게나 벼르고 벼르던 자전거 대여소. 전기 자전거도 빌려주는 곳이어서 제주의 잘 정비된 자전거 코스를 편안히 누려볼 생각이었다. 그전에 길목에서 커피 한 잔. 돌하르방 간판이 커다랗게 걸려있는 카페에 갔다. 3층으로 되어있어 테라스에서 커피를 마시며 바다 구경을 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11월의 제주에서 하기에는 조금 추웠지만, 내리쬐는 햇살을 조금이라도 느끼고 싶었기에 굳이 밖으로 나갔다. 차가운 바닷바람, 얼음이 동동 뜬 아메리카노, 따뜻한 태양. 나름 즐거웠다. 


마음의 준비를 마치고 드디어 도착한 자전거 대여소. 처음 계획은 나는 일반 자전거를 타고, 아내는 전기자전거를 타게 할 생각이었지만, 사장님이 추천해주신 코스를 보고 난 후 마음 이 바뀌었다. 오르막이 산적해있는 길을 오로지 내 허벅지 하나 믿고 간다는 건 무모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두 대의 전기 자전거를 헬맷과 함께 빌리고, 가벼운 안전교육을 받은 후 출발하였다. 목적지는 바로 쇠소깍. 연못의 끝에서 바다와 담수가 만나는 곳이라는 아름다운 관광지라고 한다. 


처음 타보는 전기자전거에 대한 감상은 조금 미묘했다. 캐나다의 창고에는 내가 내내 타 오던 로드바이크가 있다. 중고로 구입한지는 채 1년이 안됐지만, 모델은 90년대에 나온 오래된 클래식 바이크이다. 이래 저래 돈을 들이고, 유튜브로 독학을 하며 내 몸에 맞춰놓았던 탓에 정이 붙은 녀석이다. 분명 그 자전거에 비하면 전기자전거는 편했다. 페달을 밟으면 돌아가는 모터의 힘 덕분에 자전거는 가파른 언덕 위에서도 편안함을 제공했고, 그 편안함 아름다운 제주의 풍경을 온전히 즐길 수 있게 도와주었다. 


하지만 그래서 정말 좋았느냐 하면 그건 좀 애매했다. 일단 모터가 돌아가며 느껴지는 추진력이 너무도 어색했다. 마치 뒤에서 누군가가 나를 밀어내는듯한 그 감각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다. 나의 통제를 벗어난 무엇인가에 올라타 있는 기분에 내내 불안감이 들었다. 익숙하지 않음에서 오는 불편함이라고 생각하면 당연한 것이겠지만, 자전거를 탄다라는 기분은 들지 않아 아쉬웠다. 물론 여정 내내 등장한 무지막지한 오르막들을 오를 때면 굳이 전기자전거를 추천해주신 사장님의 배려에 감사함이 절로 들었다. 


그렇게 대략 50분가량 쇠소깍으로 가며 마주한 풍경들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파란 바다가 보이고, 언덕을 오르고, 가로수 가득한 길을 지나, 한적한 시골의 풍경을 마주한다. 지겨울 틈이 없는 여정이었다. 지나온 거리에 비해 체력도 제법 보존되어, 그야말로 아쉬울 것 없이 단맛만 빼먹는 것 같은 여정이었다. 그리고 이윽고 도착한 쇠소깍 주차장. 분명히 저 아래로 보이는 강이 쇠소깍 같은데, 쇠소깍이라 이름이 붙은 포인트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찾아보고자 잠시 자전거를 세우고, 뒤에서 오는 차를 피하기 위해 안장에서 내려와 자전거를 보도블록 위로 옮겼다. 가볍게 검색을 해 보았지만 그럴싸한 결과는 얻을 수 없었고, 그냥 여기가 쇠소깍인 걸로 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저 멀리 바다가 보이고, 가까이의 협곡 아래고 강이 흐른다. 새파랗게 투명한 수면 위로 배를 타고 노는 사람들도 보인다. 주변의 돌과 나무가 어우러져 마치 선계를 보는 듯했다. 물론 주변의 무수한 관광객만 없었다면 말이다. 시간을 들여 볼만한 풍경이었다. 잠시 감상의 시간을 갖은 뒤 근처에 보이는 빵집으로 자전거를 끌었다. 감자 빵을 파는 곳이었는데, 꽤 맛있었다. 빵을 잘 갈무리하고 이제 다시 돌아가려 자전거에 올라탔다. 그리고 다시 출발을......


"여보, 이거 안돼."


문제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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