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일일재활

공원과 사랑에 빠지다

by 송현탁


나이가 서른이 되어갈즈음에 깨닫게 되는 건 새롭게 취향을 결정하는 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왠만한 것들은 경험해봤고, 그것들을 자신의 기준으로 재단해놓은 상황에서 무언가 새로운 걸 찾기가 쉽지는 않다. 그래서 오히려 이때 좋아하게 된 것은 과거 선택지가 한정되어서 좋아하면서 지금까지 좋아하던 것들과는 다르게 진짜로 좋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의 경우는 그렇게 좋아하게 된 것이 공원이다.


나는 원래 공원이라는 공간의 의미를 크게 느끼지 못했다.

공원이라는 곳에 일부러 간 적도 없었고, 혹시나 가더라도 거기에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었다. 과거의 내가 느끼던 공원을 지금 다시 떠올려보면 왠지 모르게 녹색보다는 콘크리트가 떠오르고 북적거림보다는 황량함이 느껴졌다.


나의 그런 생각을 바꿔준 것은 도쿄 여행이었다.

나는 여행을 가서 목적지 없이 발이 향하는 곳으로 가던 날이었다. 오래 걸었기에 자연히 쉬고 싶어졌지만 애석하게도 도시의 빌딩숲에서 마냥 쉴 수 있는 곳은 별로 없었다. 그러던 와중 눈 앞에 공원이 있어서 자연스럽게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난 거기서 공원이라는 것에 사랑에 빠졌다.


공원의 한 가운데는 잔디밭이 있었다. 잔디밭을 정중심으로 햇빛이 내려쬐고 있었다. 햇빛이 오로지 이 공원만을 위해서 햇빛을 내려주고 있었기 때문에 12월이라는 날씨임에도 춥다는 느낌보다는 따뜻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조금 걷다보니 공원 내에 스타벅스가 있어서 커피를 시켰다. 스타벅스는 2층 야외 플로어가 있어서 그곳으로 올라갔다. 그곳에 올라가니 잔디밭을 내려다보는 풍경이 펼쳐졌다.

일요일이라 사람들이 북적북적했다. 어린 아이가 있는 가족, 커플 등 많은 유형의 사람들이 돗자리를 깔고 잔디밭에서 하하호호하고 있었다. 나는 그 광경이 왠지 기존에는 눈에 담지 못했던 일종의 낙원과도 같은 풍경으로 느껴졌다.

따뜻한 햇살, 환한 잔디밭, 사람들의 웃음소리. 그것들은 복합적으로 내 신경들을 건드렸고 나는 결론적으로 공원이라는 존재와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참고로 내가 사랑에 빠진 공원은 신주쿠중앙공원이다. 몰랐었는데 이 글을 쓰면서 조사하다보니 내가 가기 얼마 전에 리뉴얼 공사를 했다고 한다. 새옷과 새분장을 한 사람에게 빠지게 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이후 나는 꼭 여행에 공원을 일정에 넣게 되었다. 그러면서 좋은 공원과 싫은 공원, 그리고 내가 왜 한국에서는 공원을 좋아하지 못했었는지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첫번째로 좋았던 공원은, 최근에 갔던 곳들 중에서는 신주쿠교엔이 있다. 여행 중 한산한 평일 오후에 갔었는데 이 공원과도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입장료 500엔이라는 부하가 있음에도 내가 만약 도쿄에 산다면 주마다 한 두번씩은 꼭 방문할 것 같은 느낌이다. 도시 중앙에 펼쳐진 광활한 잔디밭은 보기만 해도 가슴을 정화시켜 주는 느낌이었다.


그와 반대로 싫었던 공원들은, 아무래도 삿포로의 오도리공원이었다. 삿포로의 필수 관광 코스이자 유명세가 남다른 공원이지만 난 가고난 이후에 매우 실망했다. 공원 중간중간에 도로와 횡단보도가 있고 공원을 거닐려면 횡단보도의 신호등을 기다려야 한다니, 공원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공원의 기준에서는 NG인 느낌이다.


그와 반대로 거기서 조금만 오도리공원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면 있는 나카지마공원은 매우 좋았다. 공원 가운데에 있는 호수가 특히 아름답고 좋은 곳이었다.


마지막으로 내가 왜 한국에 있었을 때에는 왜 공원을 사랑하지 못했을까. 그 이유를 생각해본다면 한국의 공원은 어딘가 구색맞추기라는 느낌이 든다.


일례로 내가 살고 있는 포항의 공원들을 찾아본다면,


첫번째로 환호공원. 스페이스워크라는 전국구 관광장소가 있긴 하지만 그것말고는 마음에 내키는 게 별로 없었다. 애초에 공원이 산에 있다. 스페이스워크에 가본다면 알겠지만 상당히 높은 오르막을 올라가야 된다. 내 기준에 공원은 평지에서 거닐 수 있어야된다.


두번째로 철길숲. 이곳은 면적이 너무 좁다. 내가 오도리공원에서 느낀 감정과 똑같은 느낌이다. 적어도 횡단보도는 없지만 공원이라는 개별적인 장소가 아니라 그냥 도시 빈공간에 끼워맞춘 느낌이다.


그 밖에도 강변공원이나 다른 공원들도 있지만 내 성에 차는 공원은 하나도 없다. 이런 공원들만 가다보니 내가 공원이라는 존재와 사랑에 빠질 수 없었던 모양이다.


적어도 포항의 공원은 너무 경제적인 논리로 있다. 비단 포항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전국 어딜 가도 똑같을 지도 모른다. 도시 한 가운데에 공원을 만들 부지를 용납하지 않는다. 그래서 공원을 산에 짓거나, 아니면 좁은 곳에 짓거나, 아니면 도시와 떨어진 외곽에 짓거나, 일반 건물들을 지을 수 없는 강변에 짓는다.


내 기준에서는 공원은 넓은 부지와 많은 이용객으로 완성된다고 본다. 하지만 현재 사회에서는 넓은 부지를 얻으려면 도시의 외곽으로 나가야되고 도시의 외곽에 공원이 만들어지면 이용객이 형편 없이 적어진다. 그리고 우리들은 공원을 보고 세금 낭비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여러모로 내가 좋아하는 공원을 만들려면 사회 전반적으로 큰 이해가 필요한 것 같다.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좋은 공원이 있으면 도시의 격과 시민들의 삶의 질이 오를 것이라는 것을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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