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을 보며
도서관에서 운영하는 글쓰기 모임을 할 때입니다.
자연의 풍광을 표현하는 연습을 위해 정원으로 나갔습니다.
강사님은 숲해설가이기도 하여 풀과 나무, 꽃들의 이름, 특징에 대해 세세하게 설명하였습니다.
아는 재미가 따르니 정원의 소나무, 철쭉이 다시 보였습니다. 이야기를 가지는 것은 사물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는 듯합니다. 소나무의 암꽃을 처음 보았습니다. 옆에 핀 수꽃도 처음 보긴 마찬가지였습니다.
송홧가루가 꽃술에서 흩날리는 모습은 고운 분가루 같았습니다, 살짝 입김을 부니, 녹색가루가 공중에 확 퍼져갔습니다.
철쭉을 보며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진달래와 철쭉이 비슷해요.”
“진달래와 철쭉은 같은 종속이에요. 두 꽃은 얼핏 보면 많이 닮았어요. 분홍빛 꽃잎이 다섯 장씩 벌어져 있고, 봄이면 나란히 산길을 물들이지요.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종종 헷갈려 합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다릅니다.
진달래는 이른 봄, 앙상한 가지에 먼저 꽃부터 피웁니다. 마치 꽃이 가지에 앉아 기다리고 있다가, 뒤늦게 초록 잎이 따라 나오는 듯하지요. 반면 철쭉은 꽃과 잎이 함께 피어나 마치 꽃잎 사이로 잎이 밀려 올라오는 것처럼 보입니다."
강사님은 꽃잎을 손으로 가리키며 차이을 설명했습니다.
"또 한 가지, 결정적인 차이도 있어요. 진달래는 화전으로 부쳐 먹을 수 있을 만큼 무해하지만, 철쭉은 먹으면 안 됩니다.”
모두들 웃었습니다.
“여의도 윤중로에서 보던 벚꽃잎의 색과 진해의 꽃잎의 색이 달라요, 분홍빛이 다른 것 같아요”
강사님의 설명에 빠져있던 다른 수강생이 물었습니다.
“같은 왕벚나무인데 잎이 다릅니다. 윤중로에는 꽃잎이 다섯 장인 '왕벚나무'가 많아요. 햇빛에 비치면 거의 흰빛에 가까운 연분홍색이죠. 반면 진해에 핀 벚꽃은 꽃잎이 여러 겹으로 포개져 있는 '겹벚꽃'이나 진한 분홍빛이 도는 품종들이 섞여 있어서 훨씬 화사하고 풍성해 보여요. 품종에 따라 꽃잎 수, 색감, 피는 시기까지 다 다르답니다. 같은 벚꽃이라도 장소마다 느낌이 다른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봄이면 자주 보아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왜 그런지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꽃을 궁금해지고 좋아하는 모습을 볼 때 떠오르는 물음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왜 꽃을 좋아할까?
꽃을 선물로 받을 때 좋아하면서도 현금이나 실용적인 선물로 주길 바라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봄이 되면, 많은 상춘객들이 번거로움을 감수하면서 꽃구경을 갑니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처럼, 한순간 피었다 지는 꽃을 왜 그토록 좋아할까요?
친구들이 모였을 때 누군가 말했습니다.
“요즘은 꽃이 참 이뻐 보이네,”
“나이 들어서 그래”
또 다른 지인의 풀이입니다.
같은 꽃이라도 나이 들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일까요?
삶의 연륜이 쌓이면서 자연을 보는 눈이 깊어지고 생물을 더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일까요?
그렇기도 하겠지만 자신을 꽃에 비추어 좋아하게 되는 듯합니다. 대상을 볼 때 자신을 투사하여 본다고 하지 않습니까?
꽃을 좋아하는 이유는 자신도 그 꽃처럼 밝게 피어나고 싶은 바람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명상은 자신이 고요해지는 과정이면서 동시에 밝아지는 과정입니다. 수련을 할 때 자신의 내면에 밝은 에너지가 일어나면 그 형상이 마치 빛의 꼿이 피는 듯합니다. 그럴 때 마음은 충만감과 환희심이 젖어듭니다. 명상을 하지 않는 사람도 그러한 마음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무언가를 순수하게 사랑할 때입니다. 기분이 좋을 때입니다. 이때 그 사람의 기운과 내면의 빛은 마치 꽃이 피어나듯이 확장됩니다.
내면에 잠재되어 있던 영성과 신성이 깨어날 때도 꽃처럼 환하게 온전히 피어납니다.
사람들이 꽃을 좋아하는 것은, 어쩌면 자신의 밝음과 아름다움을 찾으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