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을 시작한 지 3주쯤 지났을 무렵, 지원장님의 도움 없이 혼자 수련하였다. 처음에는 상반되는 마음이 들었다.
‘혹시 기운이 뜨면 어쩌지?’ 하는 걱정과 ‘이제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나 보다.’ 하는 안도감이 공존했다.
어떤 일이 좋기도 하면서 부담스러운 경우가 있듯, 수련도 그랬다. 나중에 깨달은 사실은 '수련은 그런 복합적인 마음을 안고 할 때가 제법 있다'는 것이다. 마음을 온전히 비운 상태에서 수련하는 것이 이상적이지만, 초심자에게는 쉽지 않다. 하지만 있는 그대로 수련하다 보면 불안정한 기운이 안정되면서 자연스럽게 마음이 정리되는 경우가 많다.
도장에서 조심스럽게 수련을 이어가던 어느 순간, 문득 그런 마음조차 잊고 수련에 몰입해 있는 나를 발견했다. 여전히 머리의 무거움이나 가슴의 답답함, 열감은 남아 있었지만, 예전보다 절반가량은 옅어졌다. 그러면서 안정감도 개인차와 수련의 흐름에 따라 차이가 있다는 점을 인식했다.
예전에는 몇 시간씩 고요하게 앉아 있을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30분 수련도 아주 조심스럽게 하고 있었다. 그 차이가 아쉽기는 했지만, 곧 스스로 털어버릴 수 있었다.
이런 마음가짐은 이전 경험에서 얻은 내 나름의 깨달음 덕분이다. 대학시절 학생운동을 하다 다쳐 3년 정도 누워 지낸 적이 있었다. 목과 허리 통증으로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고, 두통과 눈의 불편함 때문에 책조차 보기 어려운 때였다. 계속 누워 지내며 공상과 번민 속에 버티는 시간이었다. 나를 다치게 한 사람들에 대한 분노는 버거움을 더 가중시켰다.
시간이 지나며 어느 순간 돌아보니 그 감정으로 고통받은 사람은 나 자신이었다. 스스로를 위해 무엇인가 방법을 찾아야 했다. '심리상담가들은 흔히 용서해야 편해진다'라고 하는데 나는 그보다 내려놓는 방법을 깨우쳤다. 과거를 되돌아보지 않고 무심해지는 편이 나았다. 당시에 수련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견디기 위해 스스로 뒤돌아보지 않는 방법을 체득하였다.
다음 날은 점검날 배웠던 배풀기를 하고 수련을 했다.
배꼽 주변에 단단한 느낌이 있었고, 누르면 둔중한 통증이 느껴졌다. 주로 천추혈(대장 관련 경혈)과 중완혈(위장 관련 모혈) 부위였다. 오랜 시간 몸이 불편하면서 생긴 복부의 뭉쳐진 적(積)때문이었다. 약 5분 정도 마사지를 하고 호흡을 시작하자, 아랫배 쪽으로 호흡이 부드럽게 내려갔다.
호흡이 아래로 내려갈 때 느끼던 명치와 위장 사이의 저항이 줄어드니 복부가 어떻게 부푸는지 모를 정도였다. 배가 편안히 불러지고 수축하며 단전에 집중도 수월해졌다. 수련을 시작한 지 20분쯤 되었을 때 아랫배에 무거운 기감이 들었다. 주먹만 한 크기로 기운이 부드럽게 뭉쳐 있는 듯했다.
‘이것이 단전인가? 아니면 기운이 단전에 모이고 있는 느낌인가?’ 신기했다.
수련을 마치니 안정감이 더 커졌다. 마음에는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 들었는데 가만히 있으니 뿌듯함이 피어올랐다.
수련 체험을 지원장님에게 말했다. 지원장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유를 알려주었다.
“단전에 기운이 조금 찬 것 같습니다. 기운이 모이니 뭉쳐지는 듯한 감각이 생겼을 것이고, 마음에도 그만큼 힘이 생기고 안정감이 느껴졌겠지요. 이것이 바로 마음과 기운이 함께 닦이는 과정입니다.”
기감과 마음의 변화를 연결해 설명해 주었다. 기수련이지만 마음수련도 함께 되는 이치였다.
이전에 공부했던 내용이 떠올랐다.
수련에서 자주 쓰이는 말로 ‘쌍수(雙修)’가 있다.
정혜쌍수(定慧雙修), 성명쌍수(性命雙修), 심기쌍수(心氣雙修)이다.
정혜쌍수는 고요함(정定)과 지혜(혜慧)를 함께 닦는 수행을 말한다. 고요한 마음에서 깊은 통찰이 일어나는 원리를 말한다.
성명쌍수는 ‘성(性)’은 본성, ‘명(命)’은 생명으로, 정신적 깨달음과 육체적 단련을 함께 추구하는 수행 개념이다.
심기쌍수는 마음(심)과 기운(기)을 동시에 닦는다는 뜻으로, 수련에서 마음의 집중과 가(에너지)의 흐름이 하나로 어우러질 때 이루어진다.
기운이 모이며 마음이 가라앉고, 충만해지는 경험은 몸과 마음의 변화가 함께 일어나는 증거라고 여겨졌다. 작지만 의미 있는 심기쌍수의 체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