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아서 수련을 시작하다.
다섯 번째 점검에서 좌식(坐息) 수련 승급을 했다. 드디어 앉아서 수련하게 되었다. 함께 있던 도반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축하해 주었다. 와식(臥息) 수련이 길었던 이유를 알고 있는 터라 더 그런 듯했다. 옆에서 점검을 보좌하던 지원장님의 미소는 ‘그동안 수고했다’는 의미로 보였다. 이후 차를 마시는 자리에 도반들과 함께 있었지만 홀로 동떨어져 있는 것 같았다. 그간의 시간 속에 젖어들었다. 앉게 되었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았다. 와식(臥息)을 할 때는 다시 수련을 시작한다는 기쁨이 있었지만, 앉아서 수련을 한다는 건 그와 또 다른 의미였다. 본격적인 수련의 시작이였다.
애초에 수련을 시작한 동기는 나 자신을 책임지고 싶어서였다. 나아가 가족을 비롯한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책임감도 있었다. 지금은 바뀌어 자신의 삶은 스스로 책임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를 위해 서로 어떻게 배려할 것인지가 중요했다.
나부터 책임져야겠다는 마음은 아파서 오랜 기간 누워있는 경험을 통해 형성되었다. 대학 시절 학생운동을 하다 다쳐 몇 년간 누워 지냈다. 지속되는 두통과 눈의 불편함으로 책이나 미디어매체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생각을 이어가기도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TV를 라디오처럼 듣던 때다. 어느 날 지구와 우주의 역사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들었다. 장구한 우주의 역사, 수많은 인류의 생과 사를 보며 나 자신이 너무나 작게 느껴졌다. 내가 무엇을 위해 노력했는지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마음은 차츰 허무함과 무상함에 빠져들었다. 제법 긴 시간 이어진 무상함은 몸의 고통보다도 더 깊었다. 언제 빠져나올지 알 수 없는 날들이 지속되다가 한순간 그 수렁에서 벗어났다.
‘몸이 아프고 매일 누워있으니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이다. 나아지면 바뀔 것이다.' 라며 한 번에 그간의 무거움을 내려놓았다. 생각과 마음이 일치하며 '턱'하고 내려놓아졌다. 이때의 경험은 후일 수련을 시작하는 주요한 동기가 되었다. 몸이 힘든 여건에서도 마음이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새롭게 알게 되었다. 몸을 챙기는 것 뿐만 아니라 마음도 챙겨야겠다는 의지가 생겼다.
몇 년 뒤 자연스럽게 명상을 만났다. 과거의 깨우침이 있어 그런지 진지하게 수련했다. 그 수련의 세계관은 윤회를 인정했다. 나는 이번 생이 안되면 다음 생, 다음 생에 못 이루면 그다음 생을 바쳐 나를 구하고 주변 사람을 돕겠다는 서원(誓願)을 세웠다. 그런 상황에서 수련을 못한다는 현실은 '앞으로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나'는 막막함에 들게 했다.
나름 원(願)을 세우고 시작했는데 중도에 수련을 못하게 되면서 나 자신과 주변 사람에 대한 책임은 고사하고 ‘이 생을 어떻게 보낼까’가 고민이었다. 그 시간을 지나 지금 다시 앉아서 수련한다는 것은 새로운 삶을 부여받는 것 같았다. 멈추었던 시간의 엔진이 가동되는 듯한 기분이었다.
가수가 목을 다쳐 노래하기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가 나아졌을 때 이런 기분일까?
운동선수가 부상을 입어 재활을 통해 극적으로 회복하였을 때가 이와 비슷할까?
길이 다르니 비교하긴 어렵다. 그만큼, 어쩌면 그 이상으로 절실했다.
나를 책임진다는 것은 나의 몸과 마음을 다스리는 것에서 시작하여 내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를 아는 것이라고 여겨진다. 이를 통해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게 될 것이다.
20대에 멈추었던 엔진을 나이 서른에 다시 가동한다.
새롭게 출발한다. 나를 찾아가는 여행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