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이 짧아요

by 솔내


호흡의 깊이가 유지되며 단전의 집중력도 향상되었다. 반면 호흡의 길이는 여전히 짧았다. 조금만 길게 하려면 가슴의 압과 열이 오를 듯하여 다시 진정시키고 원래 호흡길이로 수련하였다. 그 와중에도 가끔씩 단전에서 기운을 끌어당기며 절로 호흡이 길어질 때가 있었다. 내가 숨을 쉬는 것이 아니라 단전 자체가 숨을 쉬는 것 같았다.


똑같이 숨 쉬며 수련하는 것 같은데 '어떨 때 잘 되고 안되는지'를 아직 알 수 없었다. 잘 되는 날을 기준으로 하다 보면 오히려 호흡이 부담이 될 때가 있고, 잊고 편하게 하다 보면 뜨문뜨문 잘 되니 그 원리가 무엇인지 알기 어려웠다. 내려놓고 하면 잘 되나 싶어 마냥 잊고 하면 집중이 안되고 멍하게 있다가 마무리될 때도 있었다.


들숨과 날숨의 전체 호흡길이가 짧은 것도 아쉬웠지만 또 다른 과제는 들숨과 날숨의 비율이었다. 나는 오래전부터 요가를 했기에 내쉬는 숨이 더 길었다. 요가 자세는 유연성을 위한 스트레칭 동작이 많고 이완을 유도하기 위해 내쉬는 숨에 비중이 높았다. 인도의 더운 환경에서 에너지를 조절을 하려는 요인도 있어 보였다. 석문호흡은 이와 반대였다. 들이쉬는 숨의 비중이 더 높았다. 이는 축기(蓄氣) 때문이었다. 기운을 쌓기 위해서는 들숨이 긴 것이 효율적이다. 처음에는 5:5 정도로 하다가 6:4 정도로 들숨을 늘려가라고 했다. 좌식 수련을 하며 어떤 느낌인지 차츰 알 수 있었다. 들숨이 길 때 단전에 기운이 차는 느낌이 달랐다. 아래에서 호흡을 끌어당기는 듯한 느낌이 차츰 강해졌다. 마치 아랫배에 공간이 있는 듯했다.

수련을 거듭할수록 단전의 기감은 묘했다. 주로 기운의 덩어리처럼 뭉쳐진 듯이 느껴졌다. 때론 묵직하기도 했다. 근래는 단전이 작은 공간으로 인식될 때가 있으니 상반된 두 느낌이 교차했다. 이런 경험 속에서도 날숨이 긴 습관은 쉬 바뀌지 않았다.


돌아보면 처음 요가호흡을 익힐 때는 들숨과 날숨 비율을 1:1로 하다가 차츰 날숨을 길게 하여 1:2로 했다. 초를 세어가며 연습했다. 그러다가 들숨 후에 멈추는 호흡을 넣어 1:1:2로 했다. 익숙해지면서 1:3:2로 멈추는 시간을 늘려갔다. 이런 연습을 했었기에 들숨이 긴 호흡은 되다가 안되다가를 반복했다.


나름 좌충우돌하는 죄식 수련이 두 달 정도를 지났을 때 새롭게 느낀 기감(氣感)이 있었다. 들숨이 길어질 때 단전에서 끌어당기는 힘과 공간감이 커지면서 마치 숨이 멈춘 듯이 되었다. 공기가 가득찬 풍선에 계속 숨을 불어넣을 때, 풍선의 내부공간 전체가 빵빵하게 느껴지는 것과 비슷한 감각이 아랫배에서 느껴졌다. 숨이 아래 단전 쪽으로 내려가는데 기운이 꽉 찬 느낌과 함께 공간감이 형성된 것이다. 마치 진공상태에 든 듯했다.

요가에서 말하는 멈추는 호흡, 쿰바카가 이런 것이 아닐까 싶었다. 요가 호흡뿐만 아니라 기존의 단전호흡수련에서도 지식 즉 멈추는 호흡을 중요하게 여긴다. 멈추는 호흡이 길어질수록 수련의 경지가 높다고 여기기도 한다.

그런데 원래 지식의 어원인 쿰바카는 ‘멈춘다’가 아니라. ‘단지(그릇), 보유하다’란 뜻이다. 지금 느낌이 딱 이랬다. 풍선에 공기가 찬 것처럼 가득하면서 숨쉬는 것 같았다. 의식은 들이쉬고 내쉬는 행위보다 단전에 온전히 집중되었다. 순간적으로 다른 모든 것을 잊었다. ‘들숨과 날숨이 사라진다’는 옛 문헌의 표현은 이런 것이 아닐까.


이를 통해 요가의 들숨과 날숨에 대한 이해도 일부 바뀌었다. 1:2:2의 들숨: 멈춤: 날숨 비율에서 들숨과 들숨 후 멈춤이 하나로 연결되면 3:2로 결국 들숨의 비중이 높아지는 것이다. 결국 날숨보다 들숨이 길어지게 된다.

아직은 호흡의 길이와 리듬은 들쑥날쑥하지만 무언가 호흡의 본질에 좀 더 깊이 접근한 것 같았다. ‘숨이 무엇인지, 기가 무엇인지, 몰입이 어떤 상태인지 앞으로 깊이 체득할 것 같은 기대감이 올라왔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