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명상을 하는 시간이 차츰 늘어났다.
근무를 하면서도 하루 6~7시간씩 수행을 이어갔다.
새벽에 2~3시간, 저녁 먹고 자기 전 2~3시간, 근무 중 쉬는 시간에 틈틈이 1시간가량을 수련하는 루틴이 생활화되었다.
일 년쯤 지나 수련에 더 집중하기 위해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여름과 겨울에는 집중적으로 수행하고, 봄과 가을에는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방식으로 생활했다.
지방에 정착하면서 예전 지인들과도 다시 연락을 주고받았다.
친구와 후배들에게 내가 하고 있는 요가와 명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중 몇 명이 명상에 관심을 보였다. 특히 가톨릭 신학을 깊이 공부한 한 후배는 종교적 선입견 없이 명상의 본질에 대해 궁금해했다. '마음이 고요해진다'는 상태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실제 체험을 통해 알고 싶어 했다.
하루는 시간을 내어 여행도 하고, 큰스님도 뵐 겸 영주 부석사를 가기로 했다.
부석사의 무량수전은 고려시대 목조건축의 정수로, 정제된 아름다움과 함께 무량수불(阿彌陀佛)의 자비를 담고 있는 성스러운 공간으로 알려져 있었다. ‘떠 있는 돌’이라는 뜻을 지닌 ‘부석’의 전설도 유명해서, 언젠가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서울 법회에서 몇 차례 뵈었던 부석사 선방의 큰스님을 지인들에게 소개하자 사찰로 직접 찾아뵙고 싶어했다.
친구의 차에 다섯 명이 함께 몸을 실었다. 고속도로를 따라 한참을 달리고, 다시 구불구불한 국도로 접어들자 길가의 풍경이 점차 달라졌다. 논과 밭, 조용한 마을들이 지나가고, 멀리 푸른 산등성이가 이어지며 진입로의 숲길이 열렸다. 드문드문 고목이 서 있는 길을 따라 올라가니, 어느새 산사의 기운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차에서 내려 부석사 입구인 일주문을 지나 오르막 돌계단을 밟기 시작했다. 길게 이어진 계단은 산사의 고요함을 향해 나아가는 수행자의 길 같았다. 계단을 오르다 고개를 들면 저 멀리 무량수전의 지붕선이 보였다. 양옆으로는 울창한 소나무 숲이 펼쳐졌고, 바람에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마저도 명상처럼 느껴졌다. 산수의 조화로움과 자연이 주는 고요한 에너지가 우리 모두를 감싸는 듯했다. 다들 말없이 풍광을 바라보며 감탄하였다.
무량수전에 도착하니, 단아한 기둥들과 고려시대 특유의 기단 위 목조건축이 전하는 품격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건물 안쪽에는 아미타불이 모셔져 있었고, 맑은 향 냄새가 은은하게 감돌았다. 무량수전 뒤편에는 ‘부석’이라 불리는 떠 있는 바위가 실제로 남아 있었다. 이 바위가 설화의 전설을 품고 있다는 사실이 장소에 대한 경외심을 들게 했다.
큰스님을 뵙기 위해 종무소에 들러 문의를 했다. 미리 연락하고 온 것이 아니기에 뵙지 못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다행히 큰스님이 절에 계셨고, 스님께서는 “멀리서 젊은이 다섯이 정성을 다해 찾아왔다니 만나보자” 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선방으로 안내받아 들어가자, 소박한 응접실에 차분한 기운이 감돌았다. 벽 한쪽엔 서적들과 고승들의 선어록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창밖으론 소나무와 푸른 하늘이 보였다. 잠시 후 큰스님께서 들어오셨고, 따뜻한 미소로 우리를 맞아주셨다. 나는 먼저 서울 법회에서 뵌 인연을 말씀드렸다. 약간은 긴장하며 앉아있는 친구와 후배들을 돌아보며 차례로 소개했다.
스님께서는 일행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나이와 직업, 그리고 명상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를 물으셨다. 친구들과 후배들이 선명상에 끌린 이유는 마음의 불안함과 고단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고요함은 어떤 상태인지, 직접 겪어보고 싶은 간절함이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스님께서는 젊은이들이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말씀을 시작하셨다.
“그래, 언제가 제일 마음이 편하던가?”
누군가는 가족과 함께 웃고 있을 때라고 했고, 또 다른 이는 음악을 들을 때라고 했다.
신학을 전공한 후배는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있을 때’라고 했다.
스님은 ‘껄껄’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그래, 아무 생각이 없을 때 사람이 편안하지.
그런데 그 아무 생각 없이 있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줄 아냐?
그걸 공부하는 것이 바로 선공부야.”
무심(無心), 무념(無念)의 상태에 대해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이야기해 주셨다.
수행을 처음 접하는 사람도 스님의 말씀이 쉽고도 편하게 와닿는 듯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다들 마음이 차분해지고,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감돌고 있었다.
한 시간의 대화를 마치고, 스님의 권유로 공양간에서 저녁공양을 함께 하였다.
정갈한 나물 반찬과 된장국, 조용히 오가는 말들 속에서 감사와 평안함이 깃든 시간이었다.
우리는 흔히 “아무 생각 없다”는 말을 실수했거나 개념이 없다는 뜻으로 쓴다.
하지만 수행의 맥락에서 ‘아무 생각이 없다’는 말은 ‘무심’, ‘무념’의 상태로 연결될 수 있다.
물론 이 말은 이해를 돕기 위한 비유적인 표현이기도 하지만, 수행을 해보지 않은 이들에게는 오히려 신선한 관점이 되지 않을까 싶다.
사람들은 생각이 많고 마음이 복잡할 때, 생각이 사라지기를 바라기도 한다.
그럴 땐 억지로 멈추려 애쓰기보다는 평소에 고요함에 젖어드는 연습을 해두는 것이 필요하다.
꾸준히 이어온 수련은, 그런 순간에 자신을 조용하고 단단하게 지켜주는 힘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