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가 좋아요

by 솔내

초등학교 때 합창단 활동을 했다.

웅변대회에서 상을 받은 적도 있다.

중학교 시절에는 밴드를 하며 기타와 서브 보컬을 맡았고, 어느 정도 노래도 하는 편이었다.


내 목소리가 큰 편이라는 사실을 자각한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

창원에서 열린 전국체전에 응원단으로 참여하면서 큰 목청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학생이 되어 학생운동을 할 때는 그 목청을 십분 활용하였다.

돌이켜보면, 학창 시절 내내 목소리를 쓰는 일이 이어졌다.


반면 ‘목소리가 좋다’는 말을 처음 들은 것은 요가 수련 이후였다.

학생운동 중 다친 몸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요가가 큰 도움이 되었다.

몇 년간 고생하던 몸과 마음이 요가와 치유단식을 통해 회복되었고, 그 변화는 극적이었다.

요가를 통해 몸 쓰는 법, 숨 쉬는 법, 마음 다스리는 법을 배웠다.


그에 따라 외형과 내면 모두 변화하였다.

체형도 예전보다 많이 마르게 되었고, 얼굴의 상도 달라졌다.

6개월이 지난 후, 아플 때의 경직된 몸과 마음을 비교해 보면서, 목소리 또한 함께 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목소리가 이전보다 차분하게 들렸다. 그 이유를 곰곰이 살펴보았다.

호흡이 깊어졌고, 마음은 이전보다 조용해져 있었다.

아직 본격적인 명상 수련을 하지는 않았지만, 요가 자세가 움직이는 명상이었기에 몸과 마음이 함께 차분해졌다고 느꼈다.

통증에 익숙했던 표정은 펴졌고 주변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여유가 생겼다.


졸업 후 서울에서 요가 강사 생활을 시작하면서 ‘목소리가 좋다’는 이야기를 더 자주 듣게 되었다.

내가 처음 근무했던 요가원의 B원장님도 목소리가 부드럽고 깊은 분이었다.

오랜 기간 ‘사랑의 전화’ 상담을 하셨고, 대학 시절에는 전국 웅변대회에서도 상을 받았다고 했다.

원장님의 목소리는 상황에 따라 달랐다.


부드러움과 단호함을 오갔고, 특히 전화 상담을 할 때의 목소리는 듣는 이의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는 힘이 있었다.

아마도 원장님의 말투와 발성을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배웠던 것 같다.


어느 날 원장님의 부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내가 “여보세요”라고 받자마자 사모님도 “여보” 하고 답하였다.

목소리만 듣고 원장님으로 착각한 것이다. 그 이야기를 나누며 원장님과 한참 웃었다.


재미있었던 점은 B원장님도 강사 시절 다녔던 요가원의 K원장님 목소리가 좋아 자신도 모르게 배운 것이다.

다른 사람이 전화를 걸면 K원장님으로 착각할 정도였다고 했다.

나는 나중에 K원장님을 직접 만나 목소리를 들았다.

K원장님, B원장님, 나.

3대의 목소리가 비슷한 것을 귀로 확인하며 고개를 끄떡였다.

이후로도 가끔 가게에 가서 물건을 살 때 “목소리가 참 좋으시네요”라는 말을 종종 듣기도 했다.

모르는 사람에게 듣는 칭잔이 다소 어색했지만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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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로 덕을 가장 크게 본 것은 그 이후였다.

친구의 소개로 만나 결혼한 아내가 나중에 해준 말을 통해 알게 되었다.

아내는 나를 처음 만날 때 농담반 진담반 하나만 보았다고 했다.

목소리가 좋은 것.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조금은 애매하다.


후일 또 한 번 목소리가 달라진 시기가 있었다.

단전호흡 수련을 본격적으로 하면서부터다.

이전의 목소리가 맑고 깨끗했다면, 이 시기부터는 좀 더 묵직하고 진중해졌다.

호흡이 깊어지고 기운이 안정되면서 목소리 자체에 무게감이 더해졌다.


그때 목소리는 단순한 발성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의 기운과 마음의 상태가 실리는 통로였다.

원래 목소리에 수련의 진중함이 더해지니, 사람들이 대하기 어려워한다는 얘기를 가끔 전해 들었다.

그래서 수련 후에는 어느 정도 기운을 갈무리하고 사람들을 편하게 대하려 했다.


하루는 아내가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나의 이야기가 나왔다고 했다.

그 자리에 활달한 성격에 영업직으로 대인관계에 능숙한 친구 L이 있었다.

L은 “원장님을 보면 절로 얌전하게 인사하게 된다”라고 했다. 주변 친구들은 '재미를 위해 유난을 떤다'고 했다.

L은 ‘아니라며 너네도 한번 만나봐라' 고 했단다.

그 시기 난 요가원을 운영하고 있었기에 아내 친구들은 나를 '원장님'이라 불렀다.

아내에게 그날의 에피소드를 들으며 나의 착각이 깨졌다.

이젠 무게감을 어느 정도 내려놓고 사람들에게 편하게 대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아직은 그렇게 편하지만은 않았던 것 같았다.

'부드럽고 따뜻한 빛과 기운으로 사람들을 대하자’는 마음은 실천하기가 쉽지 않았다.


수행자의 공부는 감춰지지 않는 것 같다.

말투, 눈빛, 표정, 그리고 목소리에서 은연중 드러난다.

명상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도 가끔 말한다.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알고 싶다면, 자신의 목소리, 말투, 눈빛, 표정을 보세요.”

이는 나 자신에게도 하는 말이다.

나의 특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부드럽고 따뜻한 변화를 이어간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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