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단식원에는 가끔씩 요가와 명상의 고수들이 찾아와 며칠씩 머물곤 했다. 단식원에는 방이 여러 개 있었고, 성수기인 여름을 제외하면 늘 한두 개 방은 비어 있었다. 위치가 서울 중심가에 있다 보니 지방에서 올라온 요가인이나 명상 수행자들이 들르기에도 편했다. 무엇보다 B원장님이 늘 문을 열어두고, 지인들이 부담 없이 묵을 수 있도록 배려했기 때문이다.
그 시절 손님 가운데 기억에 남는 분이 J선생님이다. 나이로는 원장님과 나의 중간쯤 되었다. 오랜만에 들리면 원장님 방에 모여 이야기꽃을 피웠다. 평소 단식원에는 요가와 명상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가 오갔지만, 이날만큼은 달랐다. 원장님과 J선생님은 나이차가 크지 않아 친구처럼 대화를 주고받았다. 덕분에 나도 끼여서 농담과 웃음을 나눌 수 있었다.
당시 단식원에는 여강사인 Y선생님도 있었다. 원래 단식을 하러 왔다가 요가에 매료되어 강사까지 되었다. 넷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요즘 말로 하면 아재 개그를 하며 모두 배를 잡고 웃었다. 지금도 그때의 웃음소리와 장면이 떠오른다. 아마 원장님과 선생님들이 그렇게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처음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참 얘기를 나누고 나면 밤늦은 시간이 되어서야 각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J선생님과 함께 잤다. 다음 날,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잠을 깨어 옆을 쳐다보고는 눈이 휘동그래졌다. 새벽 여섯 시, J선생님은 눈 뜨자마자 곧장 아사나 수련을 하고 있었다. 전날 밤의 화기애애했던 모습은 사라지고, 수행자로서 집중하고 있었다. 곧이어 요가의 가장 어려운 동작 중 하나인 전갈자세를 완벽하게 했다. 몸을 엎드린 채 다리를 곧게 들어 올려 머리 위로 넘기고, 발끝을 귀 옆까지 가져가는 동작이었다. 방해하지 않기 위해 누워서 곁눈질로 살짝 보고 있었지만 마음속으로는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요가책에서만 보던 동작을 그것도 잠에서 막 깨어난 굳은 몸으로 해내는 모습을 그 새벽에 보고 있었다. “고수는 다르구나.” 싶었다. 이전에 보던 요가 고수는 대부분 마른 체형이었는데, J선생님은 어깨와 흉곽이 발달한 체형이면서도 놀라울 만큼 유연했다. 유연성과 근력을 동시에 가진 말 그대로 축복받은 체형이었다.
이후 요가단식원을 사직하고 나서 J선생님과는 소식이 끊겼다. 소식을 다시 접하게 된 것은 J선생님이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요가 지도자 중 한 분이 되었을 때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유명 연예인의 요가 선생님으로도 이름을 알렸다. 오랜 세월이 흘러 만나지는 못했지만, 가끔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그 시절의 단식원은 마치 겨울밤 사랑방 같았다. 수행의 길 한가운데에도 그렇게 미소와 웃음을 나누는 순간이 있었다. 그 시간도 내겐 요가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