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이 나를 깨우다.

by 솔내

운동이나 예술에 1:1 지도가 있듯이 명상에도 1:1 개인지도 수련이 있다.

일종의 특별 수련이라 할 수 있다.

나는 명상 수행의 선배들에게 이러한 수련을 많이 받아보았다. 이후 받은 만큼 후배들에게 자주 해주기도 했다.

지금은 특별한 수련으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특별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내용만큼은 여전히 특별하다.


1:1 수련에서는 수련자의 평소 일상, 마음의 흐름, 의식 상태까지 살피며 안내한다.

이는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

수련의 심득(心得)이 일상 속에 어떻게 실현되는지를 파악하고,

반대로 일상의 마음이 명상의 몰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고 안내하기 위해서이다.


한 번은 몇 년 정도 수련한 숙련자를 지도할 때다.

수련자는 몸전체에 의식을 두고 온몸의 에너지를 느끼는 명상 단계였다.

수련이 어렵다고 했다. 무엇이 어려운지 물으니, 집중이 잘 안 된다고 했다.

대화를 하며 어떻게 집중했는지 흐름을 살펴보니 수련자가 생각하는 집중이 있었다.


집중이란 의식을 모으는 것이다.

수련자는 이전까지 아랫배, 호흡경로, 깐다(단전) 등 신체의 작은 부위에 집중했다. 그러다가 이제 몸전체에 의식을 두려니 이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좁고 선명하게 의식을 쓰던 습관이 틀이 된 것이다.

수련에서는 넓게 보는 집중도 있다고 알려주었다.

비유로 책의 한 글자를 보는 것도 집중이고, 멀리 있는 산을 넓게 보는 것도 집중이라고 했다.

몸 전체에 의식을 두어 보라고 했다. 이럴 때는 '집중이라는 말 대신 의식을 두다'라고 안내하기도 한다.

수련자가 가지고 있는 의식을 모으려는 경향을 내려놓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개인지도는 수련자의 상황에 맞추어 좀 더 세밀하게 지도할 수 있다.


한 번은 내가 가진 생각의 틀을 깨는 계기가 있었다.

"자신을 알려면, 자신이 다른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보면 됩니다."

당시 나를 1:1 지도하던 분이 해준 말이었다.

'왜 이런 말씀을 하시나' 하고 찬찬히 성찰하니 '내가 다른 사람을 어떻게 보는지'가 인식되었다.


사람들을 관찰하며 은연중에 평가하거나 내려보는 듯한 마음이 있었다.

조금 더 수련을 많이 했고 에너지를 느끼는 감각이 좋다는 이유로 부지불식간에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나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이를 자각하고 부끄러움을 느꼈지만, 그만큼 스스로 변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사람은 각자 고유한 빛과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고, 존재하는 그 자체로 귀하다'는 사실이 머리가 아니라 마음에 새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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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 수련을 지도받다 보면 때론 나의 속을 들킨 것처럼 부끄러울 때가 있다.

처음에는 나와의 깊은 대면이 어려웠다.

이후 달라지는 나 자신을 보고 수용의 여유가 생겼다.

변화하는 재미를 느끼기도 했다.

또 하나 달라진 점은 부끄러움을 느꼈을 때 과거에는 반성과 자책이 따랐다면,

지금은 자연스럽게 인정하고 포용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부끄러움도 마음공부의 자양분이 될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인정하고 다시 변화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이렇게 1:1 수련은 일상의 말과 행동을 변화시키며 명상을 좀 더 깊이 있게 만들어 준다.

그래서 수련은 다양한 형태로 하는 게 좋다. 다수도 좋고 소수도 좋다.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혼자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명상 수련의 목표 중 하나는 독존(獨尊)이기 때문이다.

즉 '스스로 온전하고 완전한 존재가 되어가는 과정'이다.

이러한 상태를 요가수뜨라에서는 '까이발야(Kaivalya)'라고 한다.

다른 누군가나 무엇인가에 의지하지 않고 자신을 채우는 것이다.


그런데 수련은 참 묘하다.

스스로 온전하게 설 때,

언제나 함께 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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