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해운대 바닷가가 내려다보이는 큰 절에서 동안거를 지낼 때이다.
이 시기는 라마나 마하리쉬의 마하요가를 공부한 이후였고, "나는 누구인가"를 참구하는 명상을 하던 때였다.
그 과정에서 간화선의 ‘이 뭐꼬’ 화두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며 선명상을 공부하였다.
‘이 뭐꼬’ 화두는 자기 존재를 직접 묻고 꿰뚫어 보는 공부다.
당시 절에는 유명한 큰스님이 계셔서 한 철 동안 머물기로 했다.
절에서 지내면 생활이 단순해진다.
수행, 행선, 불공, 공양이라는 하루 일과가 반복되면서, 묘하게 먹는 것에 대한 관심이 커진다.
절밥이 맛있다고들 하는데, 실제로 그랬다.
다양한 나물 반찬과 담백한 식사는 평소와 다른 입맛을 일깨웠다. 건강하면서도 수행자의 식사를 한다는 실감이 났다
특히 발우공양은 식사시간이자 그 자체로 먹는 명상이었다. 조용히 말한마디 하지 않고 자신에게 집중하여 공양을 했다. 식사 후 설거지를 따로 하지 않고, 자신이 사용한 발우로 먹고 깨끗이 정리하는 방식은 처음 경험하면 약간의 문화적 충격을 주기도 한다.
선방은 두 곳이 운영되었다. 위쪽 선방에는 스님들이 약 30명 정도, 아래쪽 선방에는 재가자들이 약 30명 정도 모여 수련했다. 점심 공양을 마친 뒤에는 대웅전 아래 마당을 거닐곤 했다. 멀리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휴식이 되었다.
때로는 행선(行禪)도 겸하여 바닷가 앞까지 왕복 40분 정도 다녀오기도 했다.
바닷가까지 다녀오면 두 가지 다소 어색한 경험을 하게 된다.
하나는 복장 때문이다.
회색의 법복을 입었고, 3개월 정진을 위해 머리도 짧게 깎은 터라, 해운대의 화려한 거리와 대조적으로 이질적인 모습이었다. 가끔 신기한 눈길로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냥 스쳐 지나갔다. 어쩌면 나 자신이 다른 사람의 평범한 시선을 특별하게 느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또 다른 경험은 한 번씩 길에서 나이 드신 불자님들이 합장하여 인사하는 것이다.
스님으로 착각한 것이다.
함께 다니던 다대포 처사와 나는 공손히 합장으로 답례하였다. 굳이 나서서 상황을 설명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다대포 처사는 나보다 한 살 아래로, 대학교를 휴학하고 잠시 선 공부를 하던 터였다. 집이 부산 다대포여서 붙은 별명이었다. 선방에는 젊은 남자 처사들이 다섯 명 정도 있었다. 그 시기는 선명상(禪瞑想)을 많이 하는 분위기였다.
00사는 큰 절이라 그런지, 먹거리가 풍부했다. 예불에 올린 과일이나 떡 같은 공양 음식들이 늘 풍성하여, 매일 좋은 과일과 나물을 먹을 수 있었다. 특식으로 공양주 보살님이 가끔 찰밥을 해주었다.
찰밥이 나오는 날은 꼭 구운 김이 함께 나왔다.
공양주 보살님은 "찰밥은 김과 함께 먹어야 소화가 잘 된다"고 하였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찰밥은 백미에 비해 전분질이 더 복합적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대부분 아밀로펙틴(amylopectin)으로 이루어져 있어, 소화 속도가 다소 느리고 끈기 있는 특성이 있었다. 이 때문에 먹고 나면 속이 든든한 듯했다.
또 백미에 비해 따뜻한 기운을 가지고 있어, 하루 종일 앉아서 정진하는 수행자에게 양기를 북돋아주는 음식이었다. 김은 소화를 돕고, 찰밥의 끈기를 부드럽게 풀어주는 역할을 하였다. 무엇보다 짭짤하게 간이 되어 맛있었다.
겨울과 여름 정진하는 시기, 절에서는 하루 10시간 이상 참선 명상을 하고, 침묵 수행을 하는 경우가 많다. 수행자들의 식사를 책임지는 공양주는 건강을 세심하게 챙기며 음식을 준비했다.
이 중 누가 큰 깨달음을 얻을지 모르니, 선방의 공양을 맡은 분들은 일종의 사명감을 가지고 일을 했던 것 같다. 지금도 가끔 그때 먹었던 찰밥과 김이 생각난다. 그럴 때는 집에서도 찰밥을 지어 구운 김과 함께 먹곤 한다. 또한 그때 만났던 젋음 수행자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지 떠올려 보기도 한다.
바다를 바라보며 걸었던 젊은 수행자들은 자신의 또 다른 걸음을 걷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