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어려운 사람은 아이들

by 솔내

누구에게나 어려운 사람이 있다.

하지만 ‘어렵다’는 감정은 주관적이기 때문에 사람마다 그 대상은 다를 것이다.

나에게 가장 어려운 분은 수련의 스승님이다.

스승님을 뵐 때는 늘 좋으면서도 어려움이 함께 따른다.


빛과 기운으로 전해지는 따뜻함과 사랑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감사하지만, 그 안에는 근접하기 어려운 무게감 같은 것이 함께 있다. 아마 경외심일 것이다. 내 안에서 느낄 수 있는 가장 깊은 감사함과 어려움이 동시에 존재하는 감정이다.


그런데, 이와는 전혀 다른 결의 어려움이 있다. 너무 편하기 때문에 생기는 어려움이다.

수련을 어느 정도 지속한 후부터, 나는 감정적으로 이전보다 고요하고 안정된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람을 대할 때 쉽게 흥분하거나 화를 내는 일이 없었고, 섭섭하거나 서운한 감정도 크게 일어나지 않았다.

가끔 올라올 때도 있지만, 표출하지 않고 흘려보낼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 사람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마음으로 바라보는 태도가 어느 정도는 몸에 배이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안정감이 가끔씩 흔들리는 때가 있다.

바로 아이들을 대할 때이다. 아이들에게 나름의 합리적인 기준을 정하여 먼저 설명해 주며 "이건 지켜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아이들이 그 기준을 넘는 행동을 했을 때에도, 처음부터 야단치지 않고 여러 차례 조심하라고 말했다.


이후에 계속 같은 상황이 되풀이되면, ‘이제는 혼을 내야 할 때다’라고 판단하고 단호하게 훈계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런 훈계의 이면에 내 감정이 섞여 있음을 자각하게 되었다.

‘정한 기준을 넘었으니까 혼냈다’고 생각했지만, 나의 잠재된 화가 표출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나 자신에게 물었다.

‘만약 가족이 아닌 사람이라면 나는 어떻게 대했을까?’

분명 더 예의를 갖추어 말했을 것이고, 지금처럼 큰소리를 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 깨달음 이후, 아이들을 대하는 것이 오히려 더 어려워졌다.

‘아이들은 이 세상에서 자신의 영적 성장을 위해 살아가는 귀한 존재인데, 나는 부모로서 그에 맞게 대해 왔는가?’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그만큼 실천하지 못했다.


그때 느꼈다.

‘아이들은 가장 편하기에 가장 어려운 사람이구나.’

‘가르치는 것을 당연시할수록 예의가 약해지는구나.’

자각은 있었어도 당장 크게 바뀌지는 않았다.

마음을 자주 성찰하고 조심하려 노력했지만 몇 번의 훈계가 쌓이다 보면 감정이 올라오기도 했고,

횟수는 줄었지만 화를 내기도 했다.


‘훈계는 필요하다’와 ‘내 감정이 섞을 수 있다’ 사이를 오가며 살피는 시간이 반복되었다.

시간이 지나 이 고민이 어느 날부터 더 이상 무겁지 않게 느껴졌다.

더 깊은 성찰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특별히 상황이 변한 것도 아니었다.

바뀐 것은 수련의 경지였다.

나를 좀 더 깊이 알게 되고 내면의 고요함과 충만함이 커졌다.

'아이들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귀히다’라는 사실이 이성이나 관념이 아닌 있는 그대로 다가왔다.

그만큼 더 존중하게 되었고, 아이들에게도 자연스럽게 예의가 깃든 태도로 대하게 되었다.

그즈음의 어느 날, 수련을 마친 후 거실에서 눈을 뜨고 가구와 나무, 주변 사물을 바라보는데

그 모든 것이 너무나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마치 예쁜 아기들을 바라보는 듯했다.

부드러운 미소가 절로 지어지며, 그 순간 내가 조금은 달라졌음을 알게 되었다.

‘모든 생명과 만물이 귀하다.’ 그 말이 단지 머릿속 개념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껴지고 빛으로 새겨지는 것 같았다.

이제는 아이들을 대할 때도 그토록 바랐던 예의와 존중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공부는 멀리 있지 않았다.

가장 흔한 것의 소중함을 알고 가장 편한 사람의 귀함을 아는 것, 이를 자신의 몸과 마음으로 체득하는 것이었다.

‘수련은 소중함을 배우는 길이구나.’

지금 이 작은 깨달음을 되새겨본다.

월, 목 연재
이전 16화겨울 명상, 동안거(冬安居)와 찰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