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시기를 보내며-
2. 바오로의 가시와 하느님의 확성기
“내가 자만하지 않도록 하느님께서 내 몸에 가시를 주셨습니다.” 바오로의 가시로 유명한 구절이다. 이 가시가 무엇인지를 두고 설왕설래하지만 가장 편하게 해석하자면 바오로가 앓고 있던 몸의 병 때문에 겪고 있는 신체적 고통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느님께 세 번씩이나 몸의 고통을 없애달라는 청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하느님은 바오로가 겪는 고통을 자신이 넉넉히 준 은총으로 이해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바오로도 그렇게 받아들이고 고통을 달갑게 여긴다고 고백하고 있다.
바오로의 이 말은 명나라 묘협 스님의 보왕삼매론에 있는 첫 번째 가르침과 그대로 일치한다. “마음에 병 없기를 바라지 말라. 몸에 병이 없으면 탐욕이 생기기 쉽나니, 그래서 성인이 말씀하시되 ‘병고(病苦)로써 양약(良藥)을 삼으라’ 하셨느니라.” 몸과 마음을 찔러대는 가시(병고)를 한두 개씩 지니고 있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리고 가시에 찔려 상처가 나고 곪아서 점점 커진 고통에 괴로워하는 사람은 자만해지지도 않고 탐욕에 사로잡히지도 않는다. 그러니 고통을 양약으로 삼으라는 묘협 스님이나 고통을 자만하지 말라는 하느님의 은총이라 말하는 바오로의 가르침은 같아 보인다. 누구나 살면서 피할 수 없이 겪는 고통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고통이 몸과 마음에 해로울 수도 있고 반대로 정신적인 승화(昇化)와 고양(高揚)의 도구가 될 수도 있다.
“고통은 귀머거리에게 들려주는 하느님의 확성기이다.” C.S. Lewis의 이 말처럼 고통의 의미를 그리스도교 신앙의 관점에서 가슴 찡하게 해 주는 말은 드물다. 최고선이며 인간을 무한히 사랑한다는 하느님은 왜 악을 이 세상에 생기게 하고 인간에게 고통을 주었는가? 이 설명하기 어려운 문제에 루이스의 말은 귀가 번쩍 뜨이는 해답처럼 들린다. 고통은 하느님이 인간에게 가하는 징벌이 아니다. 오히려 고통은 하느님 자신으로부터 멀어진 인간을 자신에게 돌아오게 만드는 깨우침의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다. 바오로의 가시처럼 고통이라는 하느님의 확성기는 영혼의 성장과 신앙의 회복을 위해 하느님이 준비한 선물로 이해할 수 있다. 여러 종류의 고통을 겪고 난 신자들이 그 고통의 시간을 어떻게 견디어 왔고 그 고통에서 어떤 의미를 찾게 되었는지를 고백하는 수기(手記)들을 보면 거기서 흥미로운 것을 발견하게 된다. 대부분 귀머거리에게 들려주는 하느님의 확성기(고통) 소리를 듣고 변모한 자신을 발견했다는 고백을 듣게 된다. 나에게만 닥친 고통이라 생각하여 신을 원망과 분노의 대상으로 삼던 초라한 모습에서 설명할 수 없는 신의 은총을 발견하고 성숙한 영혼의 소유자로 변모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해주는 것은 신앙의 신비일 뿐이다.
3. 희망을 잉태한 고통
사순 시기를 영어로 표현하면 lent라고 하는데 이 말은 앵글로 색슨어 lenchen에서 나온 말이고 그 뜻은 봄을 의미한다. 지금도 영국 대학에서는 봄 학기를 lent term이라 부르고 그 기간은 사순 시기에 맞추어져 있다. 봄 학기(사순 시기)가 끝나면 부활절 방학으로 이어진다. 그리스도의 수난과 십자가의 고통을 일 년 중 가장 많이 생각하는 이 사순 시기가 봄이라는 말에서 나왔다는 것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고통을 묵상하는 시기에 희망을 담아내는 적절한 말이 봄이 아닌가 생각된다. 봄에 싹을 틔우기 위해 추운 겨울 땅속에서 인고의 시간을 기다리는 봄꽃처럼, 수난과 고통 그리고 죽음으로 가는 사순 시기의 의미는 부활을 희망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사순 시기는 고통만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전례가 있다. 사순 4주일에 사제의 제의 색깔은 그리스도의 수난과 고통 그리고 회개와 보속을 상징하는 보라색에서 기쁨과 희망을 나타내는 분홍 장미색으로 바뀐다. 머지않아 찾아올 부활을 희망하며 지금의 고통을 견디어 낼 수 있는 힘과 용기를 미리 보여주려는 것이리라. 우리 말에 고진감래(苦盡甘來), ‘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달다’라는 말도 모두 고통 안에 희망이 잉태되어 있음을 보내는 메시지라 할 수 있다. 희망을 잉태한 사순 시기가 되도록 기대하며 묵상해 보면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