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시기를 보내며-
그렇다면 이런 상실감에서 오는 마음의 고통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 아끼던 물건을 잃어버렸을 때 오는 상실감은 그냥 훌훌 털고 잊으면 된다. 잃어버린 물건과의 인연이 여기까지라고 여기며, ‘잘 가’라고 작별 인사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사람을 상실했을 때 오는 고통은 그렇게 쉽게 잊을 수가 없다. 어쩌면 평생 가슴안에 응어리로 남아 있어 종종 고통을 재생산해 낼 수도 있다. 내가 생각해 볼 수 있는 상실의 고통 감소법은 ‘애도(哀悼)하기(condolences)’이다. condolences라는 말속에는 고통(dolere)을 함께(con) 나눈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고통과 슬픔은 함께 나눌 때 위로가 되고 가벼워진다. 부모, 배우자, 자식과의 이별에서 오는 상실감과 그 고통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애도 기간을 통과하며 마음에서 슬픔을 흘려 내보내는 일이 필요하다. 그 애도 기간이 너무 짧거나 너무 길면 그것 또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애도 기간이 너무 짧으면 고통의 무게는 가벼워지겠지만 몰인정한 사람이라고 타인으로부터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길면 슬픔과 고통에 사로잡혀 헤어나기 어려울 것이고 남은 날의 삶을 망가뜨릴 수도 있다. 적절한 애도의 방법을 찾는 일도 고통을 줄이기 위해서는 중요하다. 애도의 방법은 사람마다 각기 다를 수 있다. 자신에게 맞는 애도 방법을 찾는 일에 퀴블러 로스의 5단계(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와 같이 많이 알려진 방법도 참고해 볼만하다.
고통의 또 다른 원인은 집착(執着)에 있다. 상실의 경우처럼 집착의 대상도 물건, 사람, 인연이 대부분이다. 집착을 고통의 구조적 원인으로 보는 가장 탁월한 견해는 불교에서 발견된다. 고(苦), 집(集), 멸(滅), 도(道)라는 사성제(四聖諦)는 불교의 핵심 가르침이다. 삶은 고통의 바다(苦海)를 건너는 것과 같고 그 고통의 원인은 집착이라 했다. 물건에 집착한다는 것은 얻을 수 없는 것을 구하려는 고통(求不得苦)을 낳는다. 반대로 소유한 물건을 움켜쥐고 놓지 않으려고 애쓰는 데서도 고통이 생긴다. 돈에 대한 집착이 노년에 이른 사람에게는 특히 고통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돈이 없어서 겪는 고통만큼 돈이 많이 있어서 겪는 고통이 더 클 수 있는 이유는 더 강하게 집착하기 때문이다. 유년기 아이들이 집착하는 패티쉬(fetish)가 자신의 손안에 있지 않을 때 보이는 불안감은 참기 어려운 고통으로 전이된다.
사람과 인연에 집착한다는 것도 그 대상에 마음이 붙들려 포위가 되어 있는 상태이다. 집착(obsession)의 어원은 obsidere인데 이는 점령, 포위를 의미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데서 오는 고통(愛別離苦)도 많은 부분 집착에 뿌리하고 있다. 소위 스토커(stalker)라는 사람도 상대에 대한 집착이 광기와 결합될 때 고통은 증폭되고 그 역치(閾値)를 넘었을 때 얼마나 위험한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다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라는 이조년의 다정가(多情歌)도 어찌 보면 그리워하는 마음의 집착이 불면의 밤을 불러오는 고통의 원인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런 집착에서 오는 마음의 고통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을까? 불교에서는 집착을 내려놓음으로써 마음의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이것을 방하착(放下著)이라고 한다. 욕심을 내려놓고 마음을 비우는 일은 집착에서 벗어나고 고통에서 해방되는 길이기는 하지만 말처럼 그리 쉽지 않다. 방하착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되지만 여기서는 한 가지 방법만을 제안하고자 한다. 많이 알려진 라틴어 경구, “memento mori(죽음을 기억하라)”의 진정한 의미를 묵상해 보라는 것이다. 죽음 자체를 생각하라는 말이 아니다. 죽음을 통해 삶의 문제를 물어보라는 의미가 더 크다. 이 경구와 비슷한 뜻으로 쓰이는 속담에는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Shroud has no pockets)”가 있다. 사람이 죽을 때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으니 욕심, 미련, 애착을 살아 있는 동안, 특히 노년기에는 버리라는 말이다. 만약 수의에 주머니가 있다면 무엇을 가져갈 것인지 죽는 순간까지 걱정하는 고통에서 못 벗어날 것이다. 움켜쥔 손안에 있는 것들을 버리려면 손을 펴는 길밖에 없다. 손을 펴는 일은 손에 힘을 빼는 일이고 그러면 손가락 사이로 욕심, 집착, 미련 같은 것들이 빠져나갈 것이다. 그러면 노년의 고통에서 많이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