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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르슬라 Nov 08. 2021

레퀴엠(Requiem for a dream 2000)

- 끊임없이 고통을 회피하다 맞닥뜨리게 된 파멸

연출 : 대런 아로노프스키

출연 : 엘런 버스틴, 자레드 레토, 제니퍼 코넬리, 마론 웨이언스


BBC 선정 '21세기 위대한 영화 100편'에서 100위로 선정된 영화 세 편이 있는데 그중 한 편이 이 영화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의 <레퀴엠 (Requiem for a dream)이다. 한국으로 들여오면서 제목을 '레퀴엠'으로 줄였는데, 원제를 살렸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감독의 다른 영화 <블랙 스완>도 개봉 당시 극장에서 보았는데, 꽤 괜찮았었던 기억이 있다. 이 영화는 내 노트북에 오랫동안 저장되어 있었지만 제목에서부터 다크함이 느껴져서 쉽게 플레이 버튼이 안 눌렸는데. 이 리스트에 있는 영화들을 최대한 다 보는 것이 목표라서 마음을 먹고 봤다. 


영화를 보면서 같은 리스트 74위에 랭크된 <스프링 브레이커스>가 떠올랐다. 그저 본능에 몸을 맡기고 앞뒤는 1도 생각 않는 청춘군상들을 그린 영화인데, 이 영화와 비교하면 <레퀴엠>이 더 극단적이고, 청춘과 노년의 삶을 모두 다루고 있다는 차이점이 있다. 


주인공 해리(자레트 레토), 친구 타이론(마론 웨이언스), 해리의 여자 친구 마리온(제니퍼 코넬리)은 젊은 마약중독자들이다. 이 영화는 왜? 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없다. 이미 현상이 되어버린 그들의 삶을 보여줄 뿐이다. 가끔, 이들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모습이 삽입되지만 '향수'의 용도이지 현재를 설명하는 배경으로는 쓰이지 않는다. 해리의 엄마 사라 골드팝(엘런 버스틴)은 TV쇼 출연 제안을 받고 해리의 고등학교 졸업식 때 입었던 레드 드레스를 입기 위해 다이어트를 시작한다. 안 먹는 게 너무 힘든 사라는 이웃의 얘기를 듣고 불법 다이어트 약을 복용하다가 중독의 길로 들어선다. 

해리는 주사 염증으로 한쪽 팔을 절단하고, 타이론은 감옥에 가서 사회봉사를 하면서 어린 시절 그를 따뜻하게 품어줬던 엄마를 생각하며 운다. 약을 구하는 게 어려워지자 마리온은 몸을 팔아서 약을 구하고, 사라는 답이 오지 않는 방송국에 찾아갔다가 그들(방송국 직원들)에 의해 병원으로 이송되어 중독 치료를 받으나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될 뿐이다. 


왜 마약을 하는가?

단 번에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배고픔의 고통 없이 체중이 감량되기 때문이다. 

인생에는 희로애락이 있고, 불교에서는 생즉고(삶은 고통의 연속)라고 한다. 삶은 본질상 '고통'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힘이 들어도 반드시 견뎌야 하는 고통이 있다. 일부러 나를 고통 속에 던져 넣을 필요는 없지만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그 과정 중에 힘이 듦, 고통을 견뎌 내고 통과해야 하는 과정이 필연적인 것이다. 


팔이 썩어 들어가는 것을 보면서도 주사 바늘을 꽂고, 육체를 파는 변태 행위임을 알면서도 끌려다닌다. 해리와 타이론은 애초에 다른 일을 할 생각이 없고, 마리온은 의상 관련 일을 하고 싶다면서도 자신의 꿈을 이뤘을 때 얻을 수 있는 행복감 대신 지금 당장 약에 취해 뿅 가는 기분을 선택한다. 사라는 TV에만 출연하면 고독한 자신의 인생이 모든 이의 부러움을 사는 행복한 인생이 될 거라고 망상에 빠져 약을 계속 털어 넣는다. 


이들이 원하는 것이 '약' 그 자체는 아닐 것이다. 다만 행복해지고 싶고, 그 행복으로 인해 기분이 좋아지는 것. 그것을 원했을 것이다.  삶의 원리는 단순하고도 진부하다. 그것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방식의 다양성이야 존재하겠지만 그 원리 자체는 이미 오래전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던 것들이다. 


그것은 바로 이렇다.

'귀한 것은 쉽게 얻어지지 않아.'

'건강한 삶이란 기쁨과 고통을 모두 받아들이는 것이지.'

'행복은 고통을 견디고 통과한 자들에게서 더 빛을 발해.'


내용도, 표현도 내가 좋아할 만한 타입은 아니다. 영상미는 왕가위 감독 작품도 떠오르고, 내용이나 주제의식도 진부하다.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영화임. 그러나 비록 마약 중독자로 나오지만 2000년의 자레드 레토와 제니퍼 코넬리는 얼굴에서 빛이 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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