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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르슬라 Nov 15. 2021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2000)

-나는 무엇을 줍고 있는가.

감독 : 아녜스 바르다

출연 : 아녜스 바르다 외


BBC 선정 21세기 위대한 영화 100편 중 99위에 랭크된 아녜스 바르다 감독의 2000년작 작품이다. 아녜스 바르다 감독을 알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는데 2019년에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을 보고서야 알게 된 것이다. 그 영화도 굉장히 좋았는데, 바르다 감독의 영화는 '예술과 예술성'에 대해 생각하게 하고 영감을 주는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번 영화도 좋았다는.

영화는 그 유명한 밀레의 <이삭 줍는 사람들>에서 출발한다. 왜 이삭을 줍는가? 그 당시에는 왜 이삭을 주웠는가? 왜 지금은 줍지 않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서 '줍는 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찾아가 그들의 삶을 엿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줍는다는 것은 '버려진 것'을 줍는다는 것이다. 버려진다는 것은 '필요 없는 것들이 많다'라는 것이다. 감자를 생산한다. 시중에 유통되는 감자는 품질이나 크기가 정해져 있다. 그 기준에 못 미치는 것들은 그냥 버려진다. 시중에 유통되지만, 그런 것들을 쉽게 구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버려진 감자를 줍는다. 사과를 줍고, 포도를 줍는다. 그저 버려진 것도 있지만 사유지에서 수확하다 남은 것들도 있다. 구입해서 먹을 수도 있지만 거저 얻을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줍는다. 양식굴을 줍는다. 양식장 반경 몇 m라는 기준선이 있지만 공짜로 가질 수 있는 기쁨 때문에 그걸 어기고 줍는다. 

버리는 사람들 속에서 버리지 않는 사람도 있다. 식재료를 남김없이 사용해서 음식을 만드는 미슐랭 레스토랑 셰프가 있다. 이제는 적극적으로 쓰레기통을 뒤져서 줍는다. 쓰레기통에서 주식 재료를 얻어 사는 사람들이 있다. 직업이 없어서,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 어쩔 수 없기도 하지만 그런 삶 자체를 그다지 싫어하지 않는다. 대형 마트의 기물을 파괴하고 별 일 아니라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이 있다. 석사 공부를 마치고 유동인구가 많은 길거리에서 학습교재를 팔면서 밤에는 무급으로 이민자의 언어 공부를 돕는 사람이 있다. 그는 시장에서 팔다 남은 것을 주워 먹으며 끼니를 연명한다. 멀쩡한 직업이 있지만 사명감으로 하나의 철학을 가진 행위예술로 쓰레기통을 뒤지는 사람이 있다. 세상에는 수많은 다양한 삶이 존재하고, 감독은 그들 모두를 이해하고자 한다.



버려진 것을 줍는 사람들 사이에 '나'가 있다. 

머리를 빗으며 거울을 보다가 하얗게 새어버린 머리카락을 보며 푸념하고, 쭈글거리는 손을 보며 세월을 한탄하는 내가 있다. 그러나 나는 그 모든 것을 필름에 저장한다. 줍는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모든 길 위에 내가 있다. 그들을 찾아가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을 다큐영화에 담고, 그들을 이해하고자 하는 내가 있다. 그 사람들과 '나'가 있다. 

주워서 재활용하고, 주워서 예술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보며 감독도 바늘 없는 시계를 주워온다. 그것은 꽤 근사한 느낌을 주는 인테리어 소품이 된다. 

'줍는 행위'에 역사와 법적 근거로 정당성을 부여하는 사람들이 있다. 누군가 버리기를 기다리며 경쟁하듯 주워가는 사람들, 쓰레기통을 뒤지는 사람들에 대한 인식은 부정적이기 쉽다. 그러나 꼭 그렇게 생각할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줍는다'라는 행위 하나에 영감을 받아서 '줍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삶을 편견 없이 받아들이고 이해하려는 '나'는 그 자체로 예술가다.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에서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얻어 하나의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일. 그 일에 사람과 사람에 대한 애정이 있다는 것 역시 그녀가 한 일에 대한 품격을 높여준다. 


세상에는 이해받아 마땅한 사람들이 있고, 나 역시 그들 중 한 사람으로 살아간다. 그리고 나는 그들과 나를 한 데 모아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라는 영화를 만든다. 아녜스 바르다는 그들과, 그들의 삶에서 얻은 영감과 나를 주워 지금껏 내가 해온 일을, 나의 일을 한다. 


나는, 뭘 주우면서 살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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