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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르슬라 Nov 24. 2021

지옥(넷플릭스)

-지금 있는 이곳이 가게 될 지옥보다 나은가.

감독 : 연상호

출연 : 유아인, 김현주, 박정민, 양익준, 원진아, 이레


<오징어 게임>, <마이 네임> 하나 안 본 나이지만 이건 왠지 보고 싶었다. 연상호 감독의 <부산행>을 재밌게 보기도 했고 누군가 짧게 올려둔 리뷰에 관심이 생겼는데, 좋아하는 배우인 김현주가 나온다고 해서 미루지 않고 보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체적으로는 썩 잘 만들었다는 생각은 안 든다. 설정 자체가 판타지이지만 그 설정 안에서 납득이 될 만큼 자연스럽게 연결되어야 하는데 인물도 장면도 지나치게 작위적이고 분절되는 느낌이 있다. 그리고 너무 잔인해. 청불이지만 드라마에 미성년들이 나오는데 그들이 겪는 일, 해야 하는 일, 봐야 하는 일이 너무 끔찍해서 보기가 힘들다. (청불 작품에 미성년이 출연하는 것은 과연 인간적인가, 나는 이 부분에서 정말로 '인권'을 논해야 한다고 오래전부터 생각해왔다.)


그래도 드라마가 던지는 질문이 철학적이어서 곱씹어 생각해 볼만 하다. 

제목부터가 '지옥'이다. '지옥'은 사후세계다. 사후세계를 끌어왔다는 것은 '신'을 전면에 내세운다는 것이기도 하다. '신'은 보이지 않기에 그 존재를 믿는 사람들과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 드라마에서 '신의 대리인' 격인 죽음의 사자는 인간 세계에 현현한다. 사랑과 평화로써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심판과 죽음으로써 나타난 신의 대리인은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에게 나타나 '지옥에 갈 것을 고지'하고 정확히 그 시간에 죽음을 실행한다. 이 드라마에선 이것은 현실이다.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다. 

등장하는 인물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새진리회라는 종교단체를 내세워 세상을 자신의 의도대로 만들어가려는 이(정진수)와, 그에 맞서서 그 의도에 이끌려가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변호사협회 - 소도/ 김현주)이다. 

먼저 정진수 부류에 대해 생각해 보자. 이 '고지'라는 것이 '언제 지옥에 갈 것이다'라는 것은 알려주지만, 언제 고지를 받느냐는 사람마다 제각각이다. 불과 3-4일 후에 일어날 것을 고지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몇 년 후의 것을 고지받는 사람도 있고, 새진리회 초대의장 정진수(유아인)는 20년 후에 일어날 일을 고지받는다. 지옥은 고지를 받으면서부터 열리는 것이다. 그러니 정진수가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를 덮치고 있는 공포를 다른 이들도 겪어야 한다. 그러나 공포를 공포로서 내놓으면 환영받을 수 없기에 '정의'라는 그럴싸한 말을 갖다 붙인다. 

정진수가 말하는 '신의 의도'란 이렇다. '네가 지옥에 가는 이유는 정의롭지 못해서이다' 그러므로 '더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과연 신을 만족시킬 만큼의 정의로움이란 어느 정도란 말인가.

겉으로는 정의를 부르짖으면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약자를 골라내어 세뇌시킨 후, 범죄에 가담하게 만들고, 더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일들이 있다며 자기 자신이 신이 되어 사람을 심판하고 죽인다. 그리고 자신이 고지받은 자임을 영원히 숨기기 위해 다른 사람을 겁박하고 이용한다. 그 자가 바로 포스터 속에서 인자하게 웃고 있는 정진수다. 



20년을 이를 갈며 토양을 다져온 정진수를 민혜진(김현주)은 얕잡아 본다. 그래서 엄마를 잃고, 동료를 잃고, 자신도 죽다가 살아난다. 그러나 죽음의 문턱에서 간신히 살아 돌아온 혜진은 공포에 맞선다. 지금은 숨어서 할 수밖에 없지만, 저들이 의도하는 대로 세상이 돌아가게 두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문제는 '죽음'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죽음 후에 '지옥'에 가게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를 '죄인'으로 낙인찍고 '죄인의 가족'도 싸잡아 '죄인'이 된다. 고지를 받고 시연을 당한 자의 가족은 지금까지의 삶을 유지할 수가 없다. 고지도, 시연도 막을 수 없지만 아직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할 사람들을 지키고자 혜진은 새진리회로 대변되는 공포를 팔아먹고 사는 집단주의와 사투를 벌인다. 

'너는 언제 지옥에 간다' 이것이 고지의 내용이고, '언제 죽는다'가 실행되는 것은 막을 수가 없다. 그러나 고지를 전한 자의 말처럼 죽음 후에 그들이 정말 지옥에 가는지는 증명된 바가 없다. 그 이후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그리고 새진리회가 말하는 것처럼 죄를 지은 사람이 고지를 받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갓 태어난 신생아가 '고지'를 받는 것이 새진리회 입장에서는 '도그마'가 뒤틀리는 것이다. 단체의 입지 기반 자체가 흔들리는 것이다. 


드라마를 보면 알 수 있지만, 실제로 새진리회의 사제들은 아무도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말만 그렇게 할 뿐, 실제로는 신도, 도그마도, 행동 강령도 멋대로 만들어서 사람들을 지배하는 독재자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여기서도 보통 사람 = 대중이 있다. 그렇다고 하니까 그런 줄 아는 사람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맹목적인 광신도들'이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하니까 그런 줄 아는 사람들'은 본질적으로 '맹목적인 광신도들'과 같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언제든지, 얼마든지 광신도로 변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드라마는 마지막에 고지를 받은 아이를 부모의 희생으로 살려내고, 공개 시연을 당해 죽은 이를 되살림으로써 제2막의 여지를 활짝 열어 놓았다. 그러나 이런 설정까지도 너무나 한국스러워서 오글거린다.  내가 가장 궁금한 건, 진경훈, 진희정 부녀다. 과연 4년이 지난 지금 그들은 어떻게 변해있을까.

새진리회의 2대 의장을 포함한 간부들, 광신도들, 소도 사람들, 각각의 성격을 나타내는 인물들이 너무 전형적으로 그려져서 촌스러운 감이 없지 않아 있다. 감정을 덜어내고 대사도 좀 은밀해질 필요가 있다.


어느 날 갑자기 괴물은 나타났고, 그들은 지옥행을 고지했으며, 고지받은 이들을 무참히 죽였다. 그러나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목격한 현실은 이것이 전부다. 죽음 이후에 정말 '지옥에 가는지'는 아무도 본 사람이 없다. 증명되지 않은 것으로 사람을 공포에 몰아넣고, '정의'의 이름으로 타인을 조종하며 자기 배만 불리는 사람들. 괴물과 고지와 시연이 없는 이 세상에도 그런 사람들은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그들을 추종하는 이도, 그들과 맞서 싸우는 이도.

우리가 저항할 수 없는 불가항력의 현실, 크나큰 불행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신의 의도라는 거대 담론을 끌어들여 사람들을 정죄하고 목을 죌 것인가. 찾아온 불행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여전히 이 땅에 살아가는 이들을 위해서 관용과 자유가 흐르게 할 것인가. 


가보지 않은 지옥보다, 과연 지금 여기가 더 나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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