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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르슬라 Nov 29. 2021

렛미인(Let the right one in 2008)

-들어오라고 해야 들어갈 수 있어.

감독 : 토마스 알프레드슨

출연 : 카레 헤레브란트, 리나 레안데르손


BBC 선정 21세기 위대한 영화 94위, 스웨덴 영화다. 미성년을 내세운 19금 영화, 보긴 봤지만 보기가 참 괴로운 영화다. 그치만 브런치를 시작하고 본 영화 중 가장 재미있게 보기는 했다. BBC 리스트에 있어서 리뷰를 위해 본 것이지, 뱀파이어물, 공포 영화는 안 볼 수 있으면 안 본다. 그래도 과하게 잔인하고, 귀신 나오는 공포 영화는 아니어서 초반 살인 장면을 빼고는 눈을 돌린 장면은 없었다. 

뱀파이어와 인간의 사랑 이야기는 참신한 소재는 아니다. 그러나 어린 소년, 소녀가 그 주인공들이라는 점에서 더 마음을 잡아끄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랑이란 '내가 외로울 때', 그리고 '동질감'이 강력한 계기가 된다. 내게 일어나고 있는 일을 아무도 모르고,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외로운 12살 소년 오스칼과, 캄캄한 밤, 단도로 나무를 긁어대며 혼잣말을 하고 있는 그에게 강한 동질감을 느끼는 오랫동안 12살에 머물러 있는 뱀파이어 소녀 이엘리가 그렇다. 


여기서 영화의 제목 'Let me in' 이 등장한다. "날 들어가게 해 줘. 들어오라고 말해줘."

이엘리가 호칸(같이 살던 노인)에게 소리를 지르며 "도와달라고 했잖아!"라고는 했지만 일대일의 관계로 존중하고 존중받고 싶은 존재는 오스칼이 유일하다. 오스칼에게만큼은 대등한 존재로써 하나의 인격체로서 존중받고 싶은 것이다. 


동갑 소녀인 줄만 알았던 이엘리가 사람의 피를 먹는 모습을 본 오스칼은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와 다른 너를 거부하는 대신 오스칼은 묻는다.

 "넌 도대체 누구야?"

그리고 오랫동안 자신을 위해 희생한 호칸에게도 주지 않았던 애정을 왜 오스칼에게 주는지 이엘리가 밝힌다.

"난 너랑 같아."


어쩔 수 없이 누군가를 죽여야 하는 나는, 할 수만 있다면 어떤 아이를 죽이고 싶은 너를 본능적으로 알아챈다.  우리는 '죽음'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호칸이 끔찍하게 죽는 모습을 이미 목격한 우리는 이엘리의 진심이 과연 본능을 이길 수 있을 것인가 의심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나는 보면서 오스칼이 이엘리를 지키기 위해 과연 호칸처럼 살인을 저지를 것인가를 궁금해하며 마음을 졸였다. 그러나 이엘리는 자신을 위해, 오스칼을 위해 그의 곁을 떠나고 오스칼은 그녀를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을 죽음에 내몰지만 직접 손에 피를 묻히지는 않는다. 그런 면에서 극단적으로 치닫지 않은 부분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오스칼은 이엘리라는 현실과, 학교 내에서 폭력에 시달린다는 현실에 갇혀 있다. 같이 사는 엄마도 따로 사는 아빠도 오스칼의 현실에 무지하다. 이엘리 외에는 자신의 현실을 이야기할 사람이 없다. 그러니 자신의 현실에 대한 조언도 이엘리에게서 듣는 것이 전부다. 12살 소년은 한 번 저항하는 것으로 승리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악은 그렇게 간단하게 물러서지 않는다. 오스칼을 괴롭히다 오스칼이 휘두른 막대기에 귀가 다친 코니는 형의 힘을 빌려 오스칼에게 복수하려고 한다. 오스칼보다 두 배나 덩치가 큰 코니의 형은 동생보다도 훨씬 무자비하다. 그리고 오스칼을 돕겠다고 약속했던,  오스칼을 지키기 위해 그의 곁을 떠났던 이엘리가 나타나 격정에 못 이겨 말할 수 없는 무자비함으로 오스칼을 구해낸다.

오스칼이 앞으로의 삶을 함께 하기로 선택한 사람(?)은 엄마도 아빠도 아닌 이엘리다. 오스칼을 구한 사람은 그의 부모도 선생님도 다른 어떤 어른도 아니고 바로 이엘리이기 때문에 소년 오스칼의 결정이 납득이 된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엘리와 호칸의 시작도 이와 같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어쩔 수가 없다. 그러나 그 둘은 기차를 타고 어딘가를 향한다. 그들이 만나 서로를 좋아하게 되고, '네가 누구인지' 알게 된 그곳을 떠난다. 


이엘리에게 물려 뱀파이어화 된 버지니아는 자신이 이상해진 것을 알고 햇빛을 보고 불에 타 죽는다. 죽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이엘리는 자신이 비록 사람의 피를 먹으며 연명한다고 해도 그렇게라도 살기를 선택한다. 오스칼도 다른 사람들이 아닌 이엘리를 살리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고. 

사랑하는 너를 살리기 위해 나는 다른 사람을 물어뜯는다. 사랑하는 너를 살리기 위해 나는 다른 사람의 죽음을 방조한다.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나는 너와 함께 하는 것을 선택한다. 너무 잔혹한 현실이지만 오스칼과 이엘리가 각자 갈망하는 감정이 무엇인지 알 수밖에 없어서 마냥 손가락질만 할 수는 없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지금 어떤 상황인지 알아줘.

그리고 이런 나를 네 안에 들어가게 해 줘.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줘.


필연적으로 죽음과 공존할 수밖에 없는 사랑.

나는 왜 너를 사랑하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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