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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르슬라 Dec 01. 2021

엘 시크레토 : 비밀의 눈동자(2009)

-책임져야 할 것들에 눈 감고 현재를 날려버린 사랑지상주의

감독 : 후안 호세 캄파넬라

출연 : 리카르도 다린, 솔레다드 빌라밀, 파블로 라고, 길예르모 프란셀라


BBC 선정 21세기 위대한 영화 91위에 랭크된 아르헨티나 영화다. 사실 이 리뷰는 오래 전 EBS에서 방영해 줄 때 보고 나서 쓴 것인데 별로 좋아하는 영화가 아니라 다시 보기 대신 나름 정성껏 쓴 리뷰를 옮겨오는 것을 선택했다. 


이 영화는 결국 사랑을 말하는 영화다. 법정 드라마이면서, 범인을 찾아가는 스릴러이면서, 부정부패가 판치는 범죄 장르이면서,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사랑이 최고다! 란 말을 하기 위해 그런 갖가지 스토리들을 믹스한 영화인 것이다.

벤자민 에스포지토(리카르도 다린)은 법원에서 일하는 수사관이다. 그리고 아이비에서 학위를 따가지고 온 젊고 아리따운 여성 검사 이렌느(솔레다드 빌라밀)가 부임해오자, 그녀와 함께 일하게 되는데, 벤자민은 이렌느에게 한 눈에 반하지만 마음을 숨길 수 밖에 없다. 파블로 산도발(길예르모 프란셀라)은 벤자민과 함께 일하는 수사관이자 벤자민의 친구다.


어느날 한 젊은 여성의 강간 살해 사건이 발생하고, 그 사건을 이렌느팀이 맡게 된다. 수사를 진행하는 중에, 벤자민은 피해자의 남편 모랄레스가 보여준 사진 앨범 속에서 살해된 그의 아내(릴리아나)의 결혼 전 사진들을 보게 되고, 어떤 사진에서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한 남자를 보고 그가 범인임을 직감한다. 그러나 그는 이미 일하던 곳에서도 잠적을 했고, 그(고메즈)가 어디에 있는지 도저히 찾을 수가 없다. 상부에서는 증거 불충분으로 사건을 빠르게 종결시켜 버리지만, 벤자민은 종결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남편 모랄레스가 매일 퇴근 후, 기차역에서 고메즈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진을 치는 모습을 보고, '진정한 사랑을 하는 사람이구나.' 하고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렌느는 사건에 집착하는 벤자민이 잘 이해가 되지 않으면서도, 끝까지 범인을 잡으려는 그의 모습에 매력을 느낀다.  이 때 산도발이 기지를 발휘하여 고메즈가 있을 만한 곳을 추리해낸다.

'열정!' 영화에서는 '열정'으로 번역되었지만, 이 단어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집착, 일종의 중독을 뜻하는 말이다. 고메즈가 일했다던 곳에 찾아가 동료들을 만나 수사를 하던 중, 그가 한  축구팀의 광팬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산도발은 어떤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축구장에 그가 나타날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리고 그의 예상은 적중해 우여곡절 끝에 고메즈를 잡는 데 성공한다. 그럴듯한 변명으로 거짓말하는 고메즈 때문에 심문에 고전하는 벤자민을 보다 못한 이렌느는 지원 사격을 하러 들어갔다가 자신을 바라보는 고메즈의 눈빛(눈동자)을 보고 그가 범인임을 확신한다. 그리고 일부러 고메즈를 도발하며, 비하하고 그는 범인일리가 없다고 얘기한다. 그 수에 말려든 고메즈는 화가 나 자백을 하게 되고, 그는 종신형을 선고 받는다.


고메즈가 종신형을 받기를 가장 바랐던 모랄레스는 어느 날 TV를 보다가 고메즈가 풀려나 정치인의 경호원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고, 어이가 없는 이렌느와 벤자민은 이런 일을 저지를 법한 사람(얼마전까지만 해도 이렌느의 옆 방에서 수사관 노릇을 하던 로마노)을 찾아가 호통을 치지만, 정치하시는 분들이 꼭 처리해야할 더러운 일들을 대신 해준 댓가로 종신형을 받은 살인범은 힘 있는 분들을 등 뒤에 두고, 오히려 벤자민을 압박해 온다. (영화는 현재와 25년전을 왔다갔다 하는데, 25년전은 1970년대 아르헨티나의 군부독재 시절이다) 그렇게 무기력하게 범인을 내 준 벤자민은 의기소침해지고, 자신을 좋아해 아껴주었던 벤자민이 그 이후로 자기에게 개인적인 접촉을 끊자, 이렌느는 벤자민에게 숨겨왔던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다. 명망있는 가문의 잘 나가는 정혼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러나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행복해하던 것도 잠시, 둘은 끔찍한 소식을 듣게 된다. 산도발을 벤자민으로 착각한 고메즈의 수하가 산도발을 무참히 살해한 것이다. (후에 벤자민의 추리 장면에 등장한 산도발은 벤자민을 위해 자신이 벤자민인냥 행세해 희생당한다) 죽음의 공포 앞에서 이제 막 연인이 된 두 사람은 눈물의 이별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렇게 25년의 세월이 흐른다.

이렌느는 정혼자와 결혼해 자식도 두었고, 이제는 어엿한 베테랑 검사가 되었다. 이렌느와 그렇게 이별한 후 애정 없는 짧은 결혼 생활에 실패한 벤자민은 아직 자기의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는 모랄레스 사건을 모티브로 소설을 쓰려고 한다. 벤자민이 그 사건을 놓을 수 없었던 이유는  생애 유일한 사랑이었던 이렌느와 그 사건을 따로 생각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수소문 끝에 찾아간 현재의 모랄레스와의 만남에서 그는 '진정한 사랑'에 대해 다시 환기하며 그녀를 다시는 놓치고 싶지 않다고 다짐하게 된다.


실은 실종된 고메즈는 모랄레스가 잡아서 자기 집에 감옥을 만들어 놓고 가두어 두었던 것이다. 25년간.

그 모습을 보게 된 벤자민은 모랄레스의 아내를 향한 사랑이 남다름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정말 사랑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느끼게 되었다는 얘기.


그리고 이렌느 역시 남은 생은 사랑하는 벤자민과 보내기로 결심한다.

25년전부터 말썽이었던 타자기, (A자가 잘 안 눌리던) 그러나 벤자민이 사용하던 것이라 남겨 두었던 그 타자기를 이렌느는 그에게 전해주고 벤자민은 소설을 시작하자마자 떠오른 단어 TEMO (두렵다) 사이에 A를 끼워넣는다. 그러자 TEMO는 TEAMO (사랑한다)로 변한다. 이 장면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다.



사랑은 왜 아름다운 것일까?

왜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과 인생을 함께 하고 싶은걸까?


그것은 사랑이 나의 인생을 더욱 풍요롭고 아름답게 만들어주기 때문일거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만으로 우리 몸에선 아드레날린이 마구 샘솟는다. 누군가 든든한 내 편이 있다는 것, 누군가에게 마음껏 내 사랑을 표현할 수 있고, 또 어떤 한 사람이 그렇게 날 아껴주고 내 옆에서 손을 꼭 잡아 주고 있다는 그 사실이 우리의 삶을 더 활기차고 풍요롭고 만족할만하게 만들어준다.

그래서 사랑은 좋은 것이고, 우리는 사랑을 늘 꿈 꾸고, 기다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을 같이 보내기로 결심하기도 한다. 그런데 '사랑'이 낳는 결과가 파괴적일 때, 누구의 행복이나 성장에도 도움을 주지 못할 때 나는 그 사랑에 회의적일 수 밖에 없다.


모랄레스 경우처럼 사회가 죄인을 응징하기를 포기하고 정의보다 편의를 추구할 때 당사자의 심경은 말로 할 수 없이 괴로울 것이다.  그래서 그는 직접 죄인을 응징한다. 그러나 모랄레스의 25년은 오직 고메즈를 응징하는 데에 쏟아부어졌다. 그는 자신의 인생에서 다른 의미를 찾지 못한다. 오직 아내를 죽인 그놈을 응징하는 것만이 그에게 의미가 있다. 아내를 향한 그의 사랑은 그의 인생을 더 풍요롭게 하지 못할 뿐 아니라, 고메즈를 가둬두고, 그를 괴롭히는 것이 목표가 된 인생을 살게 한다.

그에게 감동을 받은 벤자민의 사랑 역시 내가 보기엔 한 없이 이기적이다.

이렌느와 남은 생을 함께 하기 위해선, 현재 이렌느의 남편과 자식들에게 큰 상처를 줄 수 밖에 없다. 또 애정 없는 결혼을 한 것도 벤자민의 선택이었고, 그 결혼의 실패 역시 그 선택에 따른 그의 책임이다. 그리고 그런 선택은 상대방에게 매우 무례한 것이었고, 결국 큰 아픔을 주었다. 그런데 그런 과거의 삶이 오히려 이렌느를 향한 절절한 사랑을 돋보이게 하는 장치라니. 나는 거기에는 동의할 수가 없다. 어쨌든 가정을 깨는 사랑은 불륜이고, 내 사랑을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상처주는 것이 과연 '사랑'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이렌느를 정말 사랑했다면, 그녀를 지울 자신이 없었다면, 벤자민은 혼자 살았어야 했다.

그리고 진정한 사랑은 한 사람을 성장시킨다고 나는 믿는다. 더 멋진 사람이 되고픈 생각이 들게 만드는 것이 사랑이고, 그게 사랑의 힘이다. 그러나 25년의 벤자민의 삶 역시, 진정한 사랑을 품은 사람의 삶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버석거리고 거칠게 느껴진다. 무책임한 선택과 그에 따른 결과에 대한 진정한 반성이 없는 인생, 뒤늦게 깨달은 사랑을 되찾겠다고 하는 무모한 선택. 내 눈에 그는 25년 간 아무 것도 한 게 없는 철부지일 뿐이다.


사랑에도 성패가 있어서,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고, 또 하루아침에 님에서 남이 될 수도 있는 것이 사랑이라 얼마나 연약한지 잘 안다. 그러나 사랑에 실패한 것이 내 인생에 대한 변명이 될 수는 없다.

사랑에 실패했어도, 나는 오늘을 살아가야 하고, 나로서 살아가야 하고, 잘 살아가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또 사랑에 실패했어도,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사랑했던 사람이 아니어도 오랫동안 내 곁을 지켜준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고 그와 함께 행복을 가꾸어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살고 있습니까?' 같은 '사랑지상주의'는 배격한다.

그런 사랑은 진짜 '사랑'이라고 불리울만한 사랑의 명예를 훼손시킨다.


사랑이 아름다운 이유, 사랑이 가치있는 이유는 나의 인생을 더 아름답게 해주고 가치있게 해주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모두 아름다운 사랑 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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