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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르슬라 Dec 09. 2021

예언자(2009)

-새로운 보스가 출현하는 과정

감독 : 자크 오디아르

출연 : 타하르 라힘, 닐스 아르스트럽


BBC 선정 21세기 위대한 영화 85위에 랭크된 자크 오디아르 감독의 <예언자>를 보았다. 이 영화 역시 감독의 영화로는 처음 접하는 작품이다. 보면서도 그랬고 보고 나서도 굉장히 잘 만든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범죄물을 좋아하는 편인데 '예언자'라는 제목을 보고서 이 영화가 '범죄물'이라는 것을 어떻게 예상할 수 있단 말인가, 제목처럼 '예언자', '예언'이 영화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독특하게 연결 지어 하나의 탁월한 작품을 만들었다고 평가하고 싶다.

갓 성인이 된 말리크는 경범죄를 짓고 6년형을 선고받는다. 아랍어를 할 수 있다는 이유로 갱의 중간 보스 루치아니의 눈에 들게 된 말리크는 그의 협박에 못 이겨 처음으로 살인을 하게 된다. 어떻게든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실패하고 결국 레예브를 죽인 그는 그 대가로 감옥에서 여러 가지 편의를 누리게 된다. 이후 법이 개정되면서 루치아니와 함께 들어왔던 그의 부하들이 출소하게 되고, 이제 루치아니는 말리크에 의지하여 여러 가지 일들을 처리할 수밖에 없다. 

감옥 생활 중 말리크는 읽지도 쓰지도 못하던 문맹인 자신 곁에서 다정하게 언어를 가르쳐주는 리야드와 호형호제하게 되고, 마약꾼 조르디를 만나 루치아니 몰래 자신만의 사업을 시작한다. 그리고 자신이 죽였던 레예브의 망령이 밤이면 그에게 나타나 말을 건다. 레예브는 창밖을 내려다보는 말리크에게 이제 곧 누가 팔 굽혀 펴기를 할 것이다, 누가 멋지게 골을 넣을 것이다(농구 경기) 등등을 (1분 안에 일어날 일들) 예언하는데 그것이 맞아떨어진다. 이후 자기가 만든 인연 안에서 사업을 시작했던 말리크는 루치아니의 심부름이라는 명목으로 외출한 틈을 타 이제 루치아니의 인맥을 이용해서 세를 키운다. 

처음에는 물건을 주고받는 단순한 심부름을 시킨 것뿐이었다. 그러나 이제 루치아니는 조직의 개편을 협상하기 위해서 말리크를 비행기에 태워 마르세유로 보내기에 이른다. 이 외출에서 말리크는 라트라쉬(루치아니가 만나라고 한 사람)의 눈에 드는데, 동물이 출몰하는 지역이라는 표지판을 보고 '짐승이 나타날 거예요!'라고 말했을 뿐인데 정말로 동물이 나타나자 "너 뭐하는 놈이야? 예언자야?" 이런 상황이 된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동료(레예브)를 죽였다는 것이 이제는 흠이 아니라 훈장이 된다. 이 에피소드에서 말리크의 - 공항에 도착해서부터 비행기를 타고 마르세유에 도착해 예언자가 되기까지의 과정 - 표정과 행동이 매우 인상 깊다. 배우 타하르 라힘의 연기가 훌륭해서 보는 맛이 있다. (어디서 본 얼굴이다 했더니 아쉬가르 파르하디 감독의 '아무도 머물지 않았다'의 사미르였다!) 감옥에 자신만 홀로 남았고, 바깥 돌아가는 상황도 심상치 않음을 느낀 루치아니는 자신의 보스 마르카지를 치기로 결심하고 이 일 역시 말리크에게 맡으라고 한다. 지금까지 하던 일과는 차원이 다른 스케일의 일이기에 말리크는 쉽게 결심하지 못하지만 리야드가 암이 재발해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며 아내와 아들에게 한몫 남겨주고 싶다고 하면서 말리크를 설득하고 말리크는 이 일을 맡기로 한다. 그러나 일이 계획했던 대로 진행되지 않자 말리크는 리야드와 둘이서 이 일을 처리하기로 한다. (어느새 배짱이 이렇게 두둑해졌다)

그리고 말리크의 선택은? 루치아니의 대장을 살리고 루치아니를 버리는 것이었다. 마르카지를 사로잡고 죽일 수 있음에도 살려둠으로 루치아니를 배반하고 더 강하고 튼튼한 줄을 붙잡은 것이다. 루치아니는 감옥 안에서의 편의를 봐줄 수 있는 수준이었으나 마르카지는 말리크를 감옥 밖으로 빼낸다. 협박에 못 이겨 심부름을 하던 소년이 이제 그를 마중하러 나온, suv 3대에 나눠 탄 부하들을 거느리고 감옥 밖을 천천히 걸어 나오는 것이다.


레예브의 망령의 출현은 협박에 못 이긴, 자신의 삶에 전혀 계획에 없었던 첫 살인에 대한 충격의 발로였을 것이다. 그러나 말리크는 그 망령 때문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거나, 우울해진다거나, 정신적 이상을 보이는 대신 아무렇지도 않게 그와 대화하며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신비한 기운을 그로부터 얻는다. 여기에서부터 말리크는 일종의 남다름을 보이는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져 가고, 성장(범죄계의 거물로서)해 가는 것이기도 하고, 그가 갖고 있는 '타고난 자질'이 그의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영화가 이러쿵저러쿵 설명하지 않아서 좋고, 인물에게 지나치게 사연을 부여하지 않아서 깔끔하다. 거기에 '예언자'라는 설정은 정말 독창적이지 않은가!! 말하고자 하는 한 가지에 집중해서 밀도 있게 표현한 점도 높이 평가한다. 보고 나서 굉장히 마음에 들어서 자크 오디아르 감독과, 주연 타하르 라힘에 대해서 한참을 검색해, 보고 싶은 작품들 몇 개를 찜해두었다. 이 리스트로 영화 보는 게 쉽지 않구나 했었는데 최근에 본 3편의 작품이 다 괜찮아서 또 괜찮아졌다는. ㅎㅎ


세상에 잘 만든 영화가, 내가 모르는 훌륭한 아티스트가 참 많기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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