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르슬라 Jan 04. 2022

스포트라이트 (2015)

-요란하지 않은 프로페셔널의 진수

감독 : 토마스 맥카시

출연 : 마크 러팔로, 레이첼 맥아담스, 마이클 키튼, 리브 슈라이버


BBC 선정 21세기 위대한 영화 88위에 랭크된 <스포트라이트>를 보았다. 이 영화는 개봉 당시 아무 정보 없이 극장에서 봤었는데 너무 재밌게 봤어서 나중에 한 번 더 보았다. 이 리스트에 선정된 102편의 영화 중에서 내가 특별히 좋아하고 아끼는 영화다. 


내용 자체는 특별할 것이 없다. 보스턴이라는 보수적인 도시에 오랫동안 뿌리 내린 카톨릭이란 종교의 사제들의 성추행을 폭로하기 위해 한 언론사의 '스포트라이트' 라는 팀의 취재 과정을 그린다.

개인적으로는 내가 모르는 직업 세계를 사실적으로 다룬 작품에 매우 흥미를 느끼는 것 같다. 드라마든 영화든 책이든, 내가 모르는 세계를 알게 되는 즐거움이 꽤 크다. 게다가 영화이기에 꼭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극적인 요소가 없이, 정말 그냥 그 팀의 기자들이 취재하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듯한 연출이 내 성향과 잘 맞았다. 배우들의 호연도 빼놓을 수 없는 큰 볼거리 중 하나이다. <조디악>이나 이 영화 <스포트라이트>의 마크 러팔로의 연기를 진심 사랑한다. 마이클 키튼의 연기도 정말 훌륭하고 배우들의 연기 합이 잘 맞아서 연기만으로도 눈호강하는 영화이다. 

 

종교인이 되려는 사람들, 또는 이미 종교인이 된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믿는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실제로 그렇게 신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많아 보이지 않았다. 종교인이 되고자 하는 심리적 배경을 살펴보면 바닥난 자신의 존재감을 '가르치는 사람'의 자리에 서서 만회해 보고자 하는 깊은 열등감이 거의 대부분 발견되었다.

'신부님', '목사님', 등등..그래도 '님' 자를 붙여서 불러주는 그 호칭. 나이가 어려도 존대받을 수 있는 위치. 그리고 가르치는 역할.  그런 것들로 나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자 하는 게 아닐까? 우려되고 의심되는 사람들이 솔직히 내 눈에는 더 많아 보였다.


이 영화 <스포트라이트>에서도 왜 카톨릭 사제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그런 짓을 해야하는지 심리적으로 분석하는 사람이 있다. 영화 내에서 비중이 크지는 않았지만 내가 관심 있는 쪽이라 귀 기울여 들었다. 게다가 카톨릭 신부들은 결혼을 하지 않고, 독신으로 신도들을 섬긴다. 인간의 본능을 극한의 경지에서 절제하고 다스릴 수 있어야만 제대로 감당할 수 있는 직책이다. 그런데 그게 쉬울 리 없으니, 억눌린 본능과 앞서 말한 낮은 존재감 등이 결합해 저질러서는 안될 죄를 저지른다. 일회성이 아니라 반복적으로. (중독이니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정신병을 기저로 한 범죄이기 때문에)

영화는 사제 개인의 성추행 사건으로 포커스를 맞추지 않고, 그것을 묵과한 카톨릭 교계와 지역, 법조인 단체가 얽히고 섥혀 있어서 오랫동안 방조될 수 밖에 없었던 원인을 캐내고 그것을 뿌리 뽑으려는 데에 초점을 맞춘다. 새로 온 편집장 마티 배런의 입을 빌려 '폭로가 목적이 아닌, 변화에 이르는 보도'를 할 수 있는 언론의 역할에 중심을 싣는다.


이 과정에서 갈등도 있지만, 결국엔 완벽에 가까운 팀웍으로 취재를 마무리하고 기사를 작성해서 보스턴 사회에 변화의 물꼬를 튼다.


마이크(마크 러팔로)는 현재 아내와 아이들이 그의 곁을 떠나 있지만 (아내가 삐진 것으로 보인다. 이유는 분명하지 않지만 마이크가 일에 미쳐있어서이지 않을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최재를 한다. 게다가 가장 취재하기 어려운 상대인 게러비디언 변호사를 맡아 고역을 치루지만 결국 그를 통해 원하는 정보를 얻어낸다.

샤샤(레이첼 맥아담스)는 할머니와 함께 종종 성당에 가서 미사를 드린다. 할머니는 주중에 3-4번을 성당에 가시는 열혈 신도이시다. 그런 할머니를 사랑하고, 그래서 할머니가 충격 받으실 줄 알지만 그래도 끝까지 취재를 한다.

은 취재 도중 바로 자기가 사는 집 근처에 성추행 했던 사제가 사는 것을 발견한다. 아이들에게 절대 그 근처에 가지 말라고 주의를 주고, 불안함에 떨면서도 자기의 역할을 완수하려고 애쓴다.


스포트라이트팀의 팀장 월터는 자기의 오랜 친구가 바로 그 사제들의 변호를 맡아 온 것을 안다. 그 친구에게 진실을 말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변호사 윤리와 강령에 어긋날 뿐더러 둘의 오랜 우정이 끝날 수도 있는 것임을 알지만 포기하지 않고 그를 찾아가 설득한다. 자신들의 반대편에 서 있다고 생각했던 맥클러시 변호사가 실은 오래전에 자기에게 진실을 알리려고 했었던 사실과, 그 사실을 묵과한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고 뼈저린 반성을 통해 보도를 완수한다.


스포트라이트팀 개개인의 프로정신과 멋진 팀하모니가 이 취재의 성공의 8할을 차지한다면, 나머지 2할은 각 분야에서 진실을 위해 힘써온 소수의 사람들의 도움일 것이다. 어쩌면 2할보다 더 높은 수치를 차지할지도 모르겠다. 피해자 모임을 이끌어 온 사람들, 용기를 내서 증언을 해준 피해자들, 법조계에서 진실을 밝히기 위해 고군분투해 온 변호사, 치료를 위해 찾아온 사제들을 남몰래 관찰하며 그들의 정신질병과, 수치적 통계를 연구해 온 의사. 그들이 없었다면 스포트라이트팀은 결코 이번 취재에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번 취재를 요란하게, 난리 법석치며 쇼맨쉽을 덧 입혀 연출하지 않은 감독님께 박수를 세번 쳐드리고 싶다. 스포트라이트팀은 이번 취재 전에도 항상 그런 모습으로 자기 일에 매진했을 것이다. 특별한 사건이라 특별하게 취재하지 않고, 늘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해 애쓰고, 진실을 보도하기 위해 머리도 몸도 쥐가 나도록 사용했을 것이다. 그런 모습의 그들의 몸에 배어 있어서 그 모습을 참 보기 좋았다.


그리고 기레기들이 판 치는 (진실 수호와는 전혀 상관 없이 정보를 물질적으로만 소비하려는) 이 나라에 살면서 그래도 진심으로 언론인의 역할을 다하는 사람들이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나에게 적잖이 위로가 되었다. 진심을 가진 프로들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어느 분야에서든지.

매거진의 이전글 Return (200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