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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르슬라 Jan 07. 2022

Almost Famous (2000)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음악 또는 소녀

감독 : 카메론 크로우

출연 : 패트릭 후짓, 케이트 허드슨, 빌리 크루덥, 프란시스 맥도맨드,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


BBC 선정 21세기 위대한 영화 79위에 랭크된 <Almost famous>를 보았다. 카메론 크로우 감독의 이름도 이 영화를 보면서 알게 되었다. 영화는 미국의 70년대 초, 락음악이 열풍이던 시절을 배경으로 한다. 영화는 15세 똘똘한 소년 윌리엄(패트릭 후짓)이 좋게 말하면 아이들을 위한다는 신념을 가진 헌신적인 엄마이고,  까놓고 말하면 애들 숨통이 턱턱 막히게끔 아이들의 인생에 간여하는 엄마 엘레인 밀러 (프란시스 맥도맨드) 벗어나 세상을 경험하고 성장하는 스토리이다. 그리고 성장의 재료로 록큰롤을 가져다 쓴다.

그 다음이 어떻게 될까 흥미진진하게 몰입하게 되는 영화는 아니지만 성장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잘 담고 있는 재미있고 잘 만든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좋은 영화 한 편과 영화 잘 만드는 사람 또 한 명 추가요!


락음악을 사랑하고, 그 음악에 대해 글을 써오던 윌리엄은 유명한 음악평론가 레스터 뱅스(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와 만나게 되고, 그것을 계기로 유명 밴드 블랙 사바스의 인터뷰를 해보기로 한다. 그리고 그들을 만나기 위한 공연장에서 소위 그루피(밴드와 친해지기 위해 자는 사람들) 무리를 만나게 되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미모가 돋보이는 페니 레인(케이트 허드슨)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은 그루피가 아니라고, 정말 이 밴드의 음악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들의 공연장을 찾는 밴드 에이드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그리고 페니가 좋아하는 밴드는 almost famous인 그러니까 아직 뜨지는 않은, 거의 유명한 신진 밴드 스틸워터이다. 공연장에서 그들의 음악을 듣고서 색다른 매력을 느끼고, 여차저차해서 엄마를 억지로 설득한 후 윌리엄은 그들의 공연투어에 따라나서게 된다. 무려 롤링스톤지의 기자의 역할로 말이다. 



그러나 자신을 밴드 에이드라고 소개했던 것과 달리 페니 레인은 스틸워터의 기타리스트 러셀과 그렇고 그런 사이인 그루피에 불과하다. 러셀은 뉴욕에 오래 사귄 애인이 있는데도 페니를 데리고 다니면서 자신의 잠자리 상대로 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페니의 진짜 이름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페니의 친구들은 그저 밴드의 공연 투어에 함께 다니면서 그들과 어울려 놀고, 자면서 자신들도 almost famous라고, 자신들은 스틸워터의 진짜 애인이라고 믿는다. 그들을 보는 윌리엄의 마음은 복잡하다. 엄마가 말하는 졸업 시험을 보고 졸업식에 참여하는 게 그렇게 우스운 일 같지는 않은데 이 사람들은 그런 일을 너무 하찮게 여긴다. 스틸워터의 멤버들도, 투어를 같이 다니는 친구들도 나쁜 사람들 같지는 않고, 그래서 그들을 좋아하게 되었지만 이런 식의 삶이 옳은가? 과연 저들이 나누는 감정이 진짜인가? 에 대해서는 확신을 갖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들 앞에서는 대단한 사명감을 갖고 음악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스틸워터 내에서 누가 더 인기가 많은가 하는 문제로 실상은 서로에 대한 원망이 있다. 그래도 famous가 되기 위해 투어는 계속한다. 그러던 중 같은 공연장에서 인기 밴드 험블 파이를 만나게 되고, 다음 뉴욕 투어에는 버스가 아닌 소형 비행기로 이동하게 될 것이기에 지금까지 동행했던 밴드 에이드와 헤어져야 함을 알게된 스틸워터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들과 함께 했던 친구들(페니 포함)을 험블 파이에게 넘겨 버린다. 그러나 러셀이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고 믿는 페니는 윌리엄을 어린 애 취급하다가 러셀이 자신을 50달러와 맥주 몇 캔에 험블 파이에 팔아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큰 충격을 받지만 여전히 포기하지 못하고 뉴욕에 갔다가 러셀과 러셀의 애인이 함께 있는 자리에서 쫓겨나가는 모욕을 당하고는 수면제를 들이붓는다. 

페니가 걱정되어 뒤쫓았던 윌리엄이 페니를 구하고, 페니가 정신이 없는 사이 윌리엄도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고백한다. 널 사랑하고 있다고. 이 일을 계기로 페니는 정신을 차리고 (그리고 윌리엄은 그녀의 진짜 이름도 알게 된다) 샌디에이고로 돌아가는데, 롤링스톤지에 보내야 할 원고 때문에 고민인 윌리엄은 레스터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레스터는 그들을 정말 아끼고 사랑한다면 쓴 소리도 해줘야 한다고 윌리엄을 설득한다. 윌리엄 앞에서 모든 치부를 들켜버린 스틸워터. 러셀은 윌리엄에게 있는 그대로 써도 좋다고 하지만, 롤링스톤지와의 확인 과정에서 윌리엄이 쓴 기사를 거의 대부분 부정한다. 말 그대로 윌리엄은 현타가....



집으로 돌아가는 공항에서 망연자실 앉아 있는 윌리엄에게 누군가 아는 척을 한다. 일찌감치 집을 떠나 독립해 살면서 스튜어디스로 일하고 있는 누나 아니타가 윌리엄을 알아본 것이다. 오랜만에 만난 동생이 얼빠진 꼴로 앉아 있는 게 맘이 걸려 오늘 하루를 널 위해 쓰겠다고 한 아니타는 윌리엄의 손에 이끌려서 몇 년만에 집으로 돌아온다. 변한 것 같지만 여전하기도 한 모녀가 상봉한다. 

폭풍처럼 휘몰아쳤던 몇 주간의 시간 뒤에 남은 것이라곤 믿었던 친구들의 배신, 그로 인해 거짓말쟁이가 되어버린 나, 결국 졸업식에도 참석하지 못하고 허무함에 몸부림치며 집 안에서 뒹굴거리던 윌리엄에게 손님이 찾아온다. (페니에게 사과하고자 전화했던 러셀에게 페니가 윌리엄의 집 주소를 알려줬던 것 - 자신의 집인양)

그동안 인터뷰를 하기 위해 같은 질문을 여러 번 던졌지만 늘 두루뭉술하고 알아듣기 힘든, 겉멋에 잔뜩 든 말만 하던 러셀은 이제서야 단순한 진실을 얘기한다.


"음악의 어떤 점을 좋아하죠?"

"우선.. 전부."


성장과 가장 가까이 닿아있는 말은 '진실'이 아닐까.

물론 성장의 계기로 떠남이 있었고, 친구같은 선생님(레스터)을 만났고, 새로운 인연을 만났고, 다시 돌아왔지만 스틸워터와 러셀이, 그리고 페니와 윌리엄이 정신을 바짝 차릴 수 있었던 것은 '진실' 그것도 '뼈아픈 진실' 때문이었다. 영화를 보고 나서는 여느 영화처럼 -예를 들어 <레이디 버드>, <브루클린>, <리턴>- 처럼 떠남과 복귀에 초첨을 맞춰서 리뷰를 쓰려고 했다. 그러나 이 영화 <almost famous>에서 등장인물을 성장시키는 주된 요인은 바로 '진실'이다. '밴드 에이드'란 말로 그럴싸하게 포장하긴 했지만 한낮 '그루피'에 불과했다는 것, '음악이 아닌 인기에 연연했다는 것.' '자신의 편의와 욕망 해소를 위해 자신을 좋아하는 사람을 아무렇지 않게 이용했다는 것.' '사실 우리는 그렇게 친하지 않다는 것.' '쉽게 사귄 친구는 날 쉽게 배신할 수도 있다는 것.'   이 사실들이 이들을 각성케 하고 한 단계 성장하게 한 것이다. 


살면 살수록 느끼는 것인데, 사람들은 진실에 관심이 없고, 심지어 진실을 싫어한다. '팩트폭력'이란 말이 등장하게 된 것도 '팩트'를 '폭력'으로 인식하기 때문일 것이다. 저마다 믿고 싶은 '것'이 있고, 그것이 아니면 사실이라도 배척한다. 믿고 싶은대로 믿고, 생각하고 싶은대로 생각하는 것이다. 거북하게 들릴지 몰라도 이렇게 사실을 외면하고 직면을 거부하는 사람들 중 의미 있는 성장을 한 사람을 나는 여태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말하는 것이 뭘 말하는 것인지조차 모르면서 내뱉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내면의 성장 따위 필요 없다면 평생 진실을 외면하고 산다 한들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진정으로 성장하고 싶다면 나는 나의 밑바닥을 봐야 한다. 나를 싸고 있는 포장지를 걷어내야 한다. 나를 둘러싼 세상의 잔인함과 거짓됨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어떤지 이상화하지 말고 봐야한다. 양심이라는 게 있어서 자정의 역할을 할 뿐 인간은 본질적으로 이기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것 맞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한다. 아픔은 경험 그 자체에서 기인할 수도 있으나 더 중요한 것은 경험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이다. 그 해석이 진실에 가까울수록 나는 고통스러울 것이다. 그래서 나는 또 그렇게 성장하게 된다. 성숙한 사람은 이렇게 진실을 보고 받아들인 사람들이고, 그만큼 진실의 효용을 알기 때문에 더욱 더 진실을 사랑하게 된다. 


진실은 아프지만, 선하다. 부디 진실을 밀어내지 않는 내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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