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르슬라 Feb 11. 2022

인히어런트 바이스 (2014)

- 시작의 목적이 증발해도 끝까지 간다

감독 : 폴 토마스 앤더슨

출연 : 호아킨 피닉스. 조슈 브롤린, 오웬 윌슨, 베니치오 델 토로, 캐서린 워터스턴, 에릭 로버츠


BBC 선정 21세기 위대한 영화 75위에 랭크된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인히어런트 바이스>를 보았다. 설 긴 연휴를 잘 보내고, 늘어져 있던 컨디션을 다시 끌어올려야지 하면서 본 영화인데 리뷰를 쓰기가 쉽지 않아 얼마간 또 시간을 보냈다. 네임드 감독 중에 내가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감독 중에 한 명이 이 사람 폴 토마스 앤더슨인데, 그의 영화는 (내가 본 영화 중에) <마스터>, <데어 윌 비 블러드>, <팬텀 스레드> 같은 주객이 전도되는 것을 주제로 삼는 영화와, 보다 낭만적인 <매그놀리아>, 그리고 이 영화 <인히어런트 바이스>로 크게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앞의 세 작품은 내게는 그다지 쇼킹하게 다가오지 않아서 (인간성에 대한 기대가 없고, 이미 그렇다고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라서) 사람들이 극찬하는 만큼 대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차라리 <매그놀리아>가 나에겐 더 좋다. 

원제와 똑같이 우리나라에서도 <인히어런트 바이스>라는 제목을 썼는데, 단어 그대로 번역하면 '타고난 악덕' 정도로 볼 수 있다. 영화를 다 보았지만 이 '타고난 악덕'이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지, 우리가 살아가는 이 현실 세계 자체를 말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해하기 어려운 영화라서 (등장인물도 너무 많다) 등장인물을 네가지 부류로 나눠보았다. 

닥(호아킨 피닉스), 빅풋(조슈 브롤린), 산초(베니치오 델 토로) - 일어난 사건을 파헤치고, 악의 반대편에 서고자 하는 사람 / 샤스타(캐서린 워터스턴), 제이드(홍 차우), 울프만(에릭 로버츠), 자포니카(사샤 피에터즈) 등- 선과 악의 경계에서 닥에게 사건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인물들 / 루디 박사, 크로커(마틴 도노반), 골든팽(사람은 아니고 악으로 상징되는 선박 이름) - 악, 악의 편에 선 사람들, 악에 물든 사람들 / 코이(오웬 윌슨) - 악의 희생양이 된 선한 인물. 

이렇게 구분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의 시작은 그렇다. (시대는 닉슨 대통령 재임시기 : 1970년대 초) 약쟁이 히피 사립탐정 닥에게 전여친 샤스타가 찾아와 자신이 지금 만나고 있는 남자가 돈 많은 유부남인데 그의 아내가 그를 정신병원에 보내려고 하는데 나한테 도와달라고 한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느냐. 


"지금 그게 옳은 행동인지 여부를 고민하고 있는 거야?"

"더 심각한 문제. 내가 얼마나 충실해야 하는지 말야."


자신과 만날 때는 별다른 감정의 동요를 보이지 않던 그녀가 복잡한 감정에 사로잡힌 얼굴을 하고 있는 걸 본 닥은 이 사건에 뛰어들기로 한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울프만도 샤스타도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고, 이 모든 악행의 근원에 '골든팽'이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골든팽은 선박의 이름으로 부와 범죄의 거대 카르텔이라는 것도, 인도차이나에서 마약을 들여와서 그것을 먹고, 팔고 광란의 파티를 벌이고.. 그리고 여기에 가담한 사람들은 부와 명예를 다 손에 쥐고 있는 사람들이며, 뒷배를 봐주는 이들은 다름 아닌 경찰과 FBI라는 사실도 알게 된다. 

빅풋은 불의의 사고로 동료를 잃은 후 괴팍해진 경찰로 위악적인 인물이다. 겉보기에는 닥을 괴롭히는 것 같지만(일면 그런 부분이 있다) 닥의 탐정 능력을 신뢰하고 그와 공조해 악의 무리를 처단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코이'를 만나게 되는데, 그는 어떻게 하다 보니 잘못 엮여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 가족과 떨어져서 그들이 하라는대로 여기저기 끌려다니는 사람이다. 그는 여러 번 닥과 마주치면서 그에게 단서를 제공하고, 닥은 그에게서 단서만 얻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 연민을 느끼게 된다. 그러다가 영화 중후반부쯤 이르러 이 사건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는 미키 울프만을 찾게 되는데, 샤스타가 그를 생각하며 울먹였던 모습과 연결지어 생각하기에는 너무 먼 모습으로, 음란한 성 중독자에 가난한 사람들 등골을 빼먹고, 여느 정신병원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요양하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여기에서 닥이 이 사건의 여정을 시작하게 된 목적은 사라지게 된 것이다. 


영화는 닥에게 샤스타가 찾아오면서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으로 출발한다. 그리고 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다니는 곳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어떤 단서들을 얻으며 문제의 본질에 다가간다. 그러나 어떤 지점에 다다라서는 그토록 찾고자 했던 울프만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시작의 목적이 연기처럼 사라진다. 그리고 사라졌던 샤스타가 그에게 다시 찾아와서 그를 유혹하며 하는 말들에 '도대체 이건 뭐지?' 가 되어버린다. 

하지만 우리의 주인공 닥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끝까지 간다. 본인 스스로 100% 원해서는 아니지만 (빅풋이 그렇게 만든다) 결국 닥은 골든팽의 대리인 자포니카의 아빠 거대악의 변호사인 크로커와 마주 앉아 협상을 진행하게 되는 것이다. 


닥의 요구조건은 돈도, 명예도, 평화도 아니었다. 코이의 삶을 되돌려달라는 것. 그로 하여금 그가 원하는 대로 그의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크로커는 닥이 입수한 엄청난 양의 마약과 코이의 삶을 맞바꾼다. 코이는 무사히 그의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다. 




'히피, 히피' 거리며 사람들이 무시하던 그 '닥'이 FBI도, 대단한 국가 권력도 아닌 그가 거대악과 맞서서 결국에는 한 인간을 구원해낸다는 아주 아주 낭만적이고 감상적인 이야기. 세상은 썩었고, 소위 가진 놈들의 삶이란 타락 그 자체이고, 국가권력도 부패하여 믿을 수 없는데, 약쟁이 히피 사립 탐정이 전여친에 대한 연민으로 시작한 수사를 통해 사회에 만연한 악이 드러나고, 괴팍해서 고독한 경찰 하나가 그 사립 탐정을 믿어서 공조하며 거대악의 희생양이 되어 버린 선한 개인 하나를 구원해낸다는 그런 이야기인 것이다.


폴 토마스 앤더슨의 작품에선 '힘'을 가지고 있는 한 사람이 등장한다. 그런데 그 힘의 근원이 너무나 부실하고, 그 힘이란 거짓으로 만들어온 것이라서 겉보기엔 약하디 약한 어떤 인간 하나에 의해 한 순간에 전도되며, 무너지기도 한다. 이 영화에서도 모든 약함의 조건을 가진 한 남자가 부패한 힘과 맞서서 결국 원하는 것을 얻어낸다.  내게는 익숙한 통찰이고 또 어떨 때는 지나치게 낭만적인데 썩 재밌지도 않은 영화를 만드는 사람. 


그의 영화를 보고 나서 다른 이에게 추천해 본 적이 나는 한 번도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더 울프 오브 월 스트리트(201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