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침잠하지만 않는다면 슬픔은 나의 좋은 친구
감독 : 피트 닥터
목소리 출연 : 에이미 포엘러(기쁨), 필리스 스미스(슬픔), 민디 캘링(까칠), 빌 헤이더(소심), 루이스 블랙(버럭), 케이틀린 디아스(라일리)
BBC 선정 21세기 위대한 영화 41위에 랭크된 피트 닥터 감독의 <인사이드 아웃>을 보았다. 사실 영화의 내용은 대체로 내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이어서 신선하거나 놀라울 게 없었지만 정신분석학의 기본 개념을 이렇게 훌륭하게 시각화해낸 성과는 정말로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심리학 입문용으로도 재밌는 시청각 교재가 되리라고 생각한다.
라일리는 엄마, 아빠의 사랑의 결실로 태어난 외동딸이다. 신생아 때부터 아기는 핵심 기억을 만들어간다. 아빠가 번쩍 안아주며 얼러줄 때, 배고프거나, 응가를 했을 때 으앙으앙 울면 엄마든, 아빠든 금세 문제를 해결해준다. 그렇게 아이는 보살핌 받고 있구나, 사랑받고 있구나 하는 감정들을 느끼며 아이의 마음을 아름다운 기억들로 채워간다.
조금 자라서는 하키를 시작하고, 어려서부터 같이 자란 동네 친구들과 우정을 나누며 아이의 자존감은 그린 라이트를 받고 쭉쭉 자라난다.
그런데 아이를 둘러싼 환경에 변화가 생긴다. 아빠의 직장 때문에 정들었던 고향 미네소타를 떠나 샌프란시스코로 이사를 온 것.
좋은 추억을 쌓고, 안정감을 느꼈던 장소를 떠나 낯선 곳에서 홀로 지내게 된 라일리. 엄마, 아빠는 곁에 계시고 변함없는 사랑을 주시지만 익숙했던 동네, 친구들, 학교.. 모든 것이 그립기만 하다.
라일리의 심경에 큰 변화가 생긴 것을 자각한 라일리의 감정들은 라일리가 다시 안정감을 찾고 예전에 밝고 쾌활했던 라일리로 돌아가게 하기 위해 바쁘게 일하기 시작한다. 기쁨, 슬픔, 까칠, 소심, 버럭이. 5명의 감정 친구들은 그동안 서로 협력하며 라일리의 마음이 건강하게 자라도록 애써왔는데, 라일리의 불안과 우울이 감지되면서 이제 기쁨이가 감정 컨트롤 본부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을 결정하며 주도권을 쥐게 된다.
라일리는 마음에 가족 섬, 우정 섬, 하키 섬, 엉뚱 섬의 네 가지의 성격 형성 섬을 가지고 있는데, 미네소타에 살 때까지만 해도 네 가지 섬에 조명이 환하게 들어와 오색찬란하게 빛났다. 그런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면서 라일리의 성격 섬들이 하나하나 빛을 잃고 무너진다.
한편 기쁨은 라일리의 행복을 위해 슬픔의 역할을 없애버리려 한다. 작은 원을 그려놓고 그 안에서 나오지 말라고, 그래야 라일리가 행복할 수 있다고. 그러다가 기쁨이와 슬픔이가 한바탕 실랑이를 벌이고 둘은 감정 컨트롤 본부에서 이탈하게 된다.
그리고 영화는 이탈한 기쁨과 슬픔이 라일리의 행복을 위해 다시 감정 컨트롤 본부로 돌아가기 위한 여정을 모험 가득하게 그린다.
라일리의 부모님은 라일리가 미네소타에서 살 때처럼 하키도 하고 친구들과 즐겁게 행복하게 지내도록 최선을 다하지만, 기쁨이와 슬픔이가 없는 상황에서 소심이, 까칠이, 버럭이가 주도해가는 감정 컨트롤은 조금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다. 달라진 말투와 행동에 엄마와 아빠는 당황하고, 화가 나기도 한다.
기쁨이와 슬픔이는 장기기억 저장소에서 라일리의 최초의 친구 '빙봉'을 만난다. '빙봉'은 라일리가 유아기 때 상상 속에서 만들어 낸 가상의 존재로 분홍 코끼리를 닮았다. 학교에 다니는 라일리에겐 이젠 거의 잊혀진 존재다.
기쁨이와 슬픔이는 빙봉의 도움으로 생각의 기차를 타고 본부로 돌아가려고 하지만, 기차를 타러 가는 데에 장애물이 참 많기도 하다.
빙봉을 따라 지름길로 가다가 추상화방에 잘못 들어가서 추상화가 되기도 하고, 상상의 나라의 무시무시한 용암강을 지나기도 하고, 저 밑에 묻어둔 기억을 모아놓은 잠재의식의 감옥에까지 갇히게 된다.
슬픔과 기쁨이가 자리를 비운 사이, 라일리는 하키부 테스트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골을 넣지 못해 화가 머리끝까지 나고 (이때 버럭이가 열일함), 학교에 가서는 이미 삼삼오오 모여서 밥 먹는 친구들을 보며 주눅이 들어 구석에 있는 벤치에서 혼자 밥을 먹는다.
빙봉이 짝꿍이었던 무지개 로켓을 잃어 슬픔에 빠졌을 때, 빙봉을 달래려고 기쁨이는 슬픈 생각을 잊게 하려고 애쓰지만, 빙봉은 위로받지 못한다. 그때 슬픔이가 빙봉의 슬픈 마음을 있는 그대로 이해해주고, 공감해주자 빙봉은 위로를 받는다. 슬픔이가 라일리의 행복에 방해만 될 거라고 생각했던 기쁨이는 그 모습을 보고 의아하지만 아직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회상 튜브를 타면 본부로 돌아갈 수 있겠구나 했는데, 기쁨이는 라일리의 행복을 위해 슬픔이를 두고 혼자 떠나겠다고 한다. 그러다가 튜브가 깨지는 바람에 기쁨은 기억이 소멸되는 가장 깊은 곳에 떨어지고, 그때 빙봉도 함께 떨어진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올라갈 수 없는 깊이다.
그곳에서 기쁨이는 기쁨과 슬픔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미네소타에서 라일리 소속팀인 들개팀은 플레이오프에서 지는데, 이유는 라일리가 결승골을 성공시키지 못해서였다. 그 때 축 쳐져 있는 라일리를 감싸 안고 함께 슬퍼해준 엄마 아빠, 라일리가 슬퍼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위로하러 찾아와 준 친구들. 위로를 받고 다시 행복해진 라일리.
여기서 기쁨이는 라일리의 행복을 위해선 슬픔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슬픔이를 본부로 데려가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이곳을 탈출하려는 기쁨이.
그때 버려진 무지개 로켓이 떠오르고, 로켓을 타고 탈출하려는데.
빙봉은 이미 자신은 소멸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둘이 함께 탈출하려고 로켓을 함께 타서는 탈출이 불가능하겠다고 판단. 기쁨이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속을 붙여 속도를 높일 때까지만 같이 타고 홀로 떨어져 기쁨이를 기억 위로 올려 보낸다. (이 때는 눈물 났다 ㅠ.ㅠ)
무사히 탈출한 기쁨이는 슬픔이를 찾아 기차를 타는데.
아직 본부에 둘이 도착하지 못한 사이, 라일리의 우울은 점점 심해져서 급기야 가출을 감행한다. 그것도 엄마 지갑에서 돈을 훔쳐서 말이다. 학교도 빠지고 터미널에서 티켓을 사서 미네소타행 버스에 올라탄 라일리. 그런데 그때 본부는 난리도 아니다. 왜냐하면 라일리의 행복한 기억은 모두 미네소타에서 만들어진 것이므로, 다시 그곳으로 보내자고 버럭이, 소심이, 까칠이가 결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라일리의 가출을 보면서 뭔가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점점 들기 시작하는 소심, 까칠, 버럭.
이때 소심이가 열심히 일하기 시작한다. 라일리를 돌려보내기 위해서. 라일리는 엄마, 아빠, 그리고 집이 있는 곳과 점점 멀어지자 겁이 나기 시작하고. 버스를 세우고 내려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본부로 돌아가는 생각 기차 안에서 기쁨이는 라일리의 행복을 위해서는 슬픔이가 꼭 일을 해줘야 한다며, 핵심 기억을 만지게 한다. 집으로 돌아온 라일리는 엄마, 아빠 앞에서 펑펑 울면서 그동안 힘들었던 얘기를 털어놓고, 엄마, 아빠도 함께 슬퍼하며 라일리를 위로한다.
그리고 그렇게 솔직한 감정을 터어놓고 가족과 함께 운 라일리는 다시 행복해지기 시작한다.
우리는 슬픔을 느끼고 표현하면 무능력하다고 판단받는 시대를 살고 있다. 어떤 어려움이 와도, 슬픔이 와도 꿋꿋이 버티고 긍정적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여야 성공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넘쳐나는 세상을 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연인과 이별했을 때조차 그 슬픔과 아픔을 느끼지 않기 위해 금세 새로운 이성을 찾고 만난다. 슬퍼하지 않는 것이 쿨한 것이고, 금방 새 연인이 생기면 능력 있는 것이 된다.
시험에 떨어지거나, 취업에 실패한다면. '울지 마! 힘내!' '다시 도전해봐!' 이런 몇 마디 말들로 위로하려고 한다. 아픈 기억을 잊기 위해 계속 무언가를 하고 또 한다. 공허할 뿐인 만남들로 인생의 시간을 채워간다.
제대로 된 위로를 받은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제대로 된 위로를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래서 SNS상의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과 서로 '좋아요' 품앗이를 하며 나는 잘 살고 있다고 스스로를 속인다. 그럴수록 마음의 병은 깊어진다.
슬픔은 행복의 반대말이 아니다.
슬픔은 우리의 행복에 걸림돌이 아니다.
슬플 때 슬퍼할 수 있고, 기쁠 때 함께 기뻐할 수 있고, 화가 날 때는 화도 내고, 때로는 소심하게 나를 지키면서, 때로는 까칠하게 거절도 하면서 내 감정에 솔직하게 반응하고, 다른 사람의 감정도 있는 그대로 받아줄 때, 우리는 진짜 위로를 받을 수도, 할 수도 있다.
무한 긍정주의 사회에 필요한 것은 '애도의 시간'이다.
이별했으면 아픈 것이 당연하다. 아플 만큼 아파야 새 살이 돋는다.
개인적으로 나의 '빙봉'은 무엇이었을까? 생각이 든다.
지금의 내가 그래도 지금의 삶도 '괜찮다.' '나쁘지 않다.'라는 생각이 들도록 기여한 내 잊힌 유년의 추억들. 지금은 잊혀져서, 소멸된 상태지만, 그런 지워진 예쁜 기억들이 나의 행복을 위해 희생되었다는 생각을 하니, 그 기억들도, 또 행복하게 살겠다고 그런 기억들을 희생시킨 '나' 자신도 왠지 짠하게 느껴진다. 그래도 어떻게든 잘 살아보겠다고 발버둥 치고 애쓴 것 같아서.
인사이드 아웃.
보이지 않는, 안에 있는 것들은 숨긴다고 해서 숨겨지지 않는다.
결국은 다 드러난다. 우리가 아무리 가장하고 감추려고 해도 결국은 드러난다. 그러니까 우리가 신경 써야 할 것은 아웃이 아니라, 인사이드다.
나의 내면아, 안녕하니?